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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은 Oct 28. 2022

하루의 실종

6

결국, 아버지는 할아버지 유해를 바다에 뿌리고 혼자서 북조선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의 유언이었다. 할아버지는 타국 땅도, 고국에도 묻히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나는 삼촌과 함께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뜻밖에도 불청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총련계 사람들과 함께 북한에서부터 따라붙었던 지도원 동지 얼굴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삼촌이 나를 슬쩍 밀어내며 속삭였다.


“자연스럽게 먼저 탑승구로 가 있어.”

 

모자를 눌러쓴 채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나를 지도원 동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온통 내 또래 여자아이들만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만일을 대비해 삼촌이 일러둔 데로 안내 데스크로 갔다. 손 말로 미성년자임을 밝히고 탑승구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뒤에서 삼촌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배웅까지 해 줄 줄은 몰랐는데요?”

 

삼촌의 빈정거림에 지도원 동무가 짜증 섞인 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그거이 동무 조카가 아직 발견되지 않아서리 그런 거 아니 갔어?”

 “뭐라고요?”


날 선 대화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함께 온 조선총련계 사람들이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 자. 진정하기요. 돌아가신 동무 아버님을 봐서 배웅 나온 것임메.” 

“난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요. 북조선이던, 조선총련이던 관심 끄시죠.”


삼촌은 면박을 줘서 그들을 내치고는 탑승구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승무원에게 좌석을 안내받아 자리 잡고 앉자 얼마 안 있어 삼촌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나는 나직이 속삭였다. 


“이제 말해도 돼요?”

“응, 이제 괜찮아.”


삼촌이 내 안전띠를 매어 주었다. 나는 오빠 이름과 사진이 붙어 있는 여권을 물끄러미 보았다. 삼촌은 등을 좌석에 붙이고 눈 감으며 말했다.


“우선, 이름 먼저 생각해 둬. 새로운 신분증을 만들어야 하니까. 앞으로 네가 선택할 것이 그것뿐만은 아닐 테지만.”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 크기와 수많은 인파에 놀랐다. 유리로 되어있는 건물 벽면과 실내장식은 외계행성에나 있을법한 거대한 우주선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껏 이렇게 많은 외국인을 직접 본 것도 처음이었다. 동남아인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앞을 우르르 지나쳤다.

 

“넌 저 사람들이 여기에 왜 온 것 같니?”

표정이며 차림새, 들고 있는 짐이 여느 관광객들과 달라 보였다. 내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자 삼촌이 말해 주었다.

 

“당장은 일자리를 찾아왔지만, 저들 중 상당수는 앞으로 한국인으로 살게 될 거야.”


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삼촌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삼촌은 말을 돌렸다.


“우리는 남한에 잠깐 머물다가 네 신분증이 만들어지는 대로 이곳을 뜰 거야. 특별히 가보고 싶은 나라 있으면 말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여기에서 사는 것이 아니야요?”

“남한에서 난…….”


삼촌은 잠시 말을 끊고 허탈하게 웃었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경계 일 순위지. 감시는 북조선만 하는 게 아니야. 남한도 마찬가지야.”


남한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동경을 가졌던 나로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삼촌은 내가 선택할 것이 이름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기럼 나는 이제 누구로 살아가야 하는 기야요?”

“누구로 살긴… 너로 살아야지. 바뀌는 건 이름과 신분증뿐인걸.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던 자부심을 잃지 않으면 돼. 나라 없이 떠돌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오랜 세월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것도 자긍심 덕분이었어.”


삼촌은 하하 웃으며 내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겁나니?”

“겁나긴요, 한 번 죽어도 본 난데 뭐이 두렵갔시오? 뭐이가 됐든 일단 부딪쳐 보는 거디요.” 


당차게 답하고 나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위험한 사상에 물든 불온한 불순분자.' 


지도원 동무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나는 당과 최고 존엄, 인민의 나라에서 살아왔다. 그렇게 믿었던 조국이 전부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오래전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아들을 기꺼이 이역만리로 떠나보낸 할아버지가 아니던가. 그런 할아버지가 나에게 선물한 선택의 자유, 비록 가족으로서 접하고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오랜 고뇌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등에 멘 배낭을 고쳐맨 후 성큼 발을 내디뎠다. 삼촌과 함께 아까 그 동남아인들의 무리에 섞여서 공항 문을 나섰다. 따뜻한 기운을 품은 바람이 와락 달려들었다. 밖은 벌써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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