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왜 대부분 여자아이가 진우라는 애한테 관심을 두는 거지?
“멋있잖아.”
즉각 적인 내 답에 고스트가 질문했다.
-키 크고, 잘 생기고, 공부 잘하면 멋있는 거야?
“당연하지. 게다가 진우네 집은 부자이기도 해.”
-그런데도 여자애들은 네 장난에 걸려들어서 곧 다른 남자애들을 사귀었잖아.
고스트는 이젠 아예 대놓고 날 사기꾼 취급이었다. 인공지능은 학습 능력이 워낙 뛰어나 다루기 쉽지 않다는 게 성가신 대목이었다.
“그건 애들이 진짜 진우를 좋아했다기보다 동경한 것에 지나지 않아서야. 사춘기에 접어들어 막 연애하고 싶던 차에 손 닿는 상대가 나타나니 미련 없이 돌아선 거지.”
-그럼 남자애들도 마찬가지겠네? 네 말 대로라면 키 크고, 예쁘고, 공부 잘하고, 부자인 여자애를 좋아하지 않겠어?
씁쓸하지만 듣고 보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부 잘하는 것만 빼면 너랑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네. 넌 키도 작고 얼굴도 뭐, 나름…….개성은 있지만, 결코 예쁜 편이 아니고, 몸매도 별로고, 부자도 아니잖아. 그럼 너도 진우 말고 딴 애를 찾아봐야 하는 거 아냐?
사람도 아닌 게 염장을 지르다니.
“뭐든 예외는 있는 법이야. 인간의 사랑은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게 마련이니까.”
내 말에 고스트는 굳이 쓸데없는 능력을 발휘해서 나를 좌절시켰다.
-내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진우라는 그 애 과학고에 간 여자 선배를 좋아해. 그래서 기를 쓰고 과학고에 가려는 거야. 결국, 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본격인데도?
늘 고분고분 내 손 안에서 놀아나던 고스트가 아니었다. 이젠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나를 약 올렸다.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그런 줄 알았으면 확 떨어진다고 말해 주는 건데……. 후회가 되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까지 불거졌다. 우리가 맺어 준 커플들이 속속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시작한 거다. 수습한다고 애쓸수록 일은 점점 꼬여만 갔다. 골치가 아팠다.
“너 애들 제대로 매칭 한 거 맞아?”
내 추궁에 고스트는 뜻밖의 말을 했다.
-내 정보력은 정확해. SNS 털어서 알아낸 정보 외에 다른 게 더 필요한 건 아닐까 싶어.
“다른 거?”
-인간에겐 운명이라는 게 있다며? 사주나 토정비결, 그런 것도 고려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겠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싶으면서도 AI가 운명 운운하는 게 영 거슬렸다.
“진짜 점쟁이라도 되자는 거야? 그런다고 해결되겠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고스트가 뜬금없이 내 속을 긁었다.
-너희 인간들 마음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아. 너를 봐도 그렇고.
“내가 뭘?”
-좋아하면 곧장 가서 고백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그게 바로 네 한계야. 연애엔 밀당이 필수라는 걸 너 같은 무생물이 어찌 알겠니?”
매몰차게 쏘아붙여 줬지만, 정작 그 말에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는 왜 직진할 수가 없는 걸까?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한데 중간고사가 성적이 발표되던 날 진우가 불안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성적이 떨어졌어. 이대로는 힘들 것 같은데 나 정말 과학고 갈 수 있는 거 맞아?”
순간, 짜증이 확 일었다.
“그보다 네가 과학고에 가려는 이유부터 다시 고민해 보는 게 어때?”
대뜸 쏘아붙이자 진우가 새삼스럽다는 듯 나를 봤다.
“무작정 과학고만 집착할 게 아니라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 보라고.”
내 말에 진우는 한 대 맞은 듯 멍한 표정이더니 갑자기 손목을 낚아채며 소리를 높였다.
“김서아! 인제 와서 그게 무슨 말이야. 나 과학고 갈 수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는 진우 손을 홱 뿌리쳤다. 자신을 믿지 않고 운세 따위에 집착하는 진우가 한심해 보였다. 진우는 내 눈빛에 당황한 얼굴이었다. 진우와 티격태격한 끝에 돌아서자 고스트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어떻게든 엮어 보려고 애쓸 때는 언제고?”
“몰라. 애가 달라진 것 같아.”
먼발치에서 내가 동경해 오던 진우가 아니었다. 원래 그런 아이였던 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만든 걸까? 헷갈렸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간의 사랑은 어떠한 난관도 극복한다며? 그러니 결국 무슨 핑계를 대든 사랑이 깨진 진짜 이유는 사랑이 식어버렸기 때문 아니겠어?”
고스트 말을 듣고 보니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한테 더는 연애 상담을 해 주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뭐야, 너 때문에 사주는 물론 궁합, 토정비결, 타로까지 싹 다 털어서 빅데이터를 구축했는데. 멋대로 그만두면 어떡해?”
고스트는 펄쩍 뛰며 반발했다.
“너야말로 뭐니? 언젠 내가 애들 상대로 사기 치는 거라며? 이제 그런 짓 하기 싫다는 데 왜 말리는 건데?”
-이참에 나는 AI 점술가로 나서 볼 작정이었어. 인간의 운명을 탐구하고 싶어 졌단 말이야.
“난 관심 없어. 더는 남의 일에 함부로 관여하고 싶지 않아.”
고스트는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나를 더 설득하려고 애썼다.
-잘 생각해 봐. 넌 더 주목받을 수 있어. 애들이 어떤 질문을 해 오던 다 커버해 줄게. 내가 널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고. 우린 멋진 연애조작단으로 거듭날 거야.
“됐거든.”
나는 고스트의 말을 한마디로 묵살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가 더 많다. 때론 자신의 마음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을 고스트가 이해할 수 있을까?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나 사랑엔 결코, 빅데이터로 다가설 수가 없는 그 무엇이 있게 마련이다. 미묘한 변수가 작용하기 마련인 오직 인간만의 영역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