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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은 Oct 28. 2022

고스트 연애 조작단

2

짧은 통증과 함께 목덜미가 얼얼했다. 인공지능이 나의 뇌에 접속해 온 순간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찌릿찌릿한 전류가 목뼈와 척추뼈를 타고 내려와 뼈마디 구석구석을 긁고 지나갔다. 이어서 차가운 뱀이 피부를 샅샅이 훑는 것 같은 느낌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소름이 돋았다. 저도 모르게 덜덜덜 떨며 이를 부딪칠 만큼 기분 나쁜 냉기였다. 마치 죽은 후 일어난다는 사후강직을 고스란히 체험하는 느낌이랄까? 몸은 물론 입속의 혓바닥마저 굳어버린 것 같은 공포 속에서 꼼짝 못 한 채 눈동자만 또록또록 굴렸다. 육신의 감옥에 갇힌 영혼이 오직 눈을 통해서만 세상 밖을 내다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대로 살아있는 미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을 때 뭔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느껴졌다.


-괜찮아?


말소리가 들렸다. 의사 선생님도, 그 자리에 있던 연구원 목소리도 아니었다. 아니, 그건 목소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인간의 소리와는 확실히 달랐으니까. 딱히 뭐라 표현하기 힘든데, 분명히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천천히 손끝을 움직여 봐.


나는 시키는 대로 손끝에다 신경을 집중했다. 손가락이 꿈틀 움직여졌다. 동시에 꽁꽁 결박되었던 것이 풀리듯 근육이 이완되면서 몸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다. 몸이 아주 가뿐하고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을 쳐다보자 미소 지으며 손끝으로 일어나 보라는 신호를 했다. 설마, 하며 휠체어에 의지했던 다리에 힘을 줘 봤다. 누군가 위에서 쑥 잡아끄는 것처럼 단숨에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수술 전까지 공기 빠진 풍선같이 느껴졌던 팔다리에도 팽팽하게 힘이 솟았다. 


“말소리가 들렸는데, 선생님도 들리나요?”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스마트 기기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지. 인공지능은 서아양에게 운동감각과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서아양에게서는 인간의 감정과 사고방식을 배우게 될 거예요.” 

 

“그럼…….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감각을 인공지능도 똑같이 느낀다는 건가요?”


“아니, 서아양과 인공지능은 각각 다른 별개의 존재예요. 인공지능은 서아양을 통해 간접 체험할 뿐이죠. 그래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서아양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그 아이는 사악한 존재가 될 수도 있어요.”

 

-잘 부탁해.


“얜 선생님 말을 듣는 것 같은데요?”

 

나는 인공지능인지 뭔지가 하는 말을 무시한 채 의사 선생님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그럴 테죠. 서아양의 청각기관을 통해서 외부 소리를 들을 테니까.”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결국, 난 인공지능에 머릿속을 점령당한 채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누군가한테 감시당하는 기분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로 우울해졌다. 그렇다고 휠체어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친구처럼 지내면서 서아양이 잘 가르쳐야 해요.”


의사 선생님이 타이르듯 말했다. 형체도 없고 보이지 않는 친구라니. 난감했다.

 

“원하는 게 뭐야?”

 

마지못해 내가 인공지능에게 말을 걸자 의사 선생님과 연구원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름, 이름을 지어 줘. 인간이 태어나면 제일 먼저 이름부터 지어 준다며?


“넌 인간이 아니잖아.”

 

내 말에 인공지능이 잠시 침묵했다. 나를 지켜보던 의사 선생님이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충고했다.


“그 애와 마치 한 몸처럼 교감하는 수준까지 이르러야 해요. 말했지만 서아양 몸의 기능은 그 아이가 관리하는 셈이니까.”


졸지에 귀신한테 내 몸을 고스란히 내어준 느낌이었다. 


“고스트. 네 이름 고스트라고 부를게.”

 

고스트는 내가 붙여준 이름을 영어가 아닌 한국식으로 이해했다. 


-네 이름은‘김서아’니까 ‘고스트’ 면 성이 '고' 이름이 '스트'? 뭔가 좀 특이한테?

 

인간도 아니면서 이름에 성을 붙인다는 발상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특이한 게 아니고 특별한 거야.”


내가 빈정대듯 대꾸하자 의사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기왕이면 좀 성의 있게 지어 주지 그래요?”

“이보다 딱 맞는 게 뭐가 있다고요? 귀신이라고 하지 않은 게 어딘데요.”


내 말에 옆에 있던 연구원이 쿡쿡 웃었다. 의사 선생님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밖에서 고스트와 이야기할 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요. 누가 보면 정말 귀신에 홀린 줄 알 테니까요.”


그렇게 해서 나와 고스트의 기묘한 공생이 시작되었다. 부작용은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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