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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은 Oct 28. 2022

마녀의 방-6

아르코 문학 창작기금 선정작

활동을 자제하던 어느 날 우연히 상황극 방을 기웃거리게 됐다. 상황극이면 역할이 따로 없고 누구나 댓글을 달 수 있었다. 이번에 제물이 될 아이는 누굴까?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제안하고 주도하는 몇 명만 알고 있을 테니. 정작 당하는 사람은 모르는 데다 직접 피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참여하는 아이들은 마음껏 짓궂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야말로 마녀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잘난 체하고 얄미운 애가 있어. 주인공을 ‘얄미’로 정하고 골탕 먹이자.


아이디 삐리리몽의 제안에 순식간에 댓글 지원자들이 나섰다. 아이들은 동화 속 인물보다 어딘가에 있는 실재 인물에 더 흥미를 느끼는 법이다. 아는 닉네임들이 많아서 구경하다가 슬쩍 끼어들게 되었다. 유미도 끼어 있어 어떻게 방해할지 궁금했다. 삐리리몽이 먼저 가볍게 상황을 던졌다.

 

↳얄미가 밤길을 가고 있다. 

↳뒤에서 누군가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얄미가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겁에 질려 달아나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땅에서 솟은 시커먼 손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닉네임 피오나가 댓글을 달았다. 세희다. 유치하게 손이 뭐람, 상상력하고는. 나는 혀를 끌끌 차 주고 상황을 바꿔 보기로 했다. 이쯤 해서 적당히 피도 흘려 줘야 아이들이 짜릿한 공포를 느끼는 법이니까. 

 

↳얄미가 가지고 있던 칼로 손목을 댕강 잘라 버렸다. 피가 솟구쳤다.

 

마녀 닉네임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주춤하는 사이 피오나는 제법 그럴듯한 상상력으로 치고 나갔다. 좀 더 쫓기면서 숨기도 하고 들켜야 재밌는데 이 팀은 얄미를 상대로 짓궂은 장난만 쳤다. 내가 누구인가? 마녀가 끼었으니 시시한 이야기는 사절이다. 막 댓글을 달려는 순간, 누군가 선수를 쳤다.

 ↳ 얄미 등에 날개가 돋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어이가 없었다. 내 공격에 황당한 댓글을 단 것은 원더걸이었다. 유미가 유치한 구출 작전을 편 것이다. 날개라니…….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조금 전까지 얄미를 골탕 먹이던 아이들이 태도를 바꾼 거다. 원더걸에 동조해서 마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와줬더니 오히려 날 노려? 다 덤벼! 기꺼이 상대해 주겠어!’


타다닥, 타다닥. 자판 소리가 따발총처럼 이어졌다. 나한테 도전했으니 무시무시한 결말로 응징해 줄 생각이었다. 나는 언젠가 읽은 중세의 마녀사냥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역극에 참여했던 아이들 몇이 벌써 마녀의 활약상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역시 마녀야.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아주 끔찍하게 마무리했어.”

“도대체 어떻게 했는데?”

 

참여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글쎄 막판에 얄미를 꿀통에 빠트리더라고.”

 “그게 그렇게 끔찍한 거야?”

 

누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세희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들어봐. 온몸을 꿀범벅으로 만들어 들판에 묶어 놨어. 처음엔 우리도 뭐 하는 건가 싶었지.”


아이들은 세희의 말에 빨려 들어 집중하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온갖 벌레들을 끌어들여 먹잇감으로 삼은 거였어.”

 

이어진 세희의 말에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서리쳤다. 나는 화장실 가는 척 아이들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며 옆을 지나쳤다. 기분 탓인지 아이들이 나하고 시선도 못 맞추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짜 마녀라도 된 듯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교실 문을 막 나섰을 때 유미 목소리가 들렸다. 

 

“어젯밤 그 얄미캐릭터. 윤지원을 두고 만든거지?”

“쉿! 듣겠어.”


세희가 앙칼지게 말을 막았다. 나는 얼른 복도 쪽 벽면에 몸을 붙였다. 교실 안쪽에서 변명처럼 덧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어.”

“맞아 그냥 장난 좀 치려는 거였다고." 

"마녀 걔가 끼어들어서 휘저어 놓은 거지.”


갑자기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벌레가 기어오르는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쫓기듯 화장실로 달려갔다. 허겁지겁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근 후 변기 뚜껑을 덮고 털썩 주저앉았다. 후들거리는 몸을 양팔로 꽉 감싼 채 웅크렸다. 그런데도 좀처럼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괜찮아, 난 마녀야. 그런 것쯤은…….”

 

하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잠기고 있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머리 위로 수업 시작 알림음인 〈소녀의 기도〉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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