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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은 Oct 28. 2022

마녀의 방-4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너 요즘 늦게 자는 것 같더라.”

  

아침 식탁에서 엄마가 내 얼굴을 힐끗 보면서 말했다.

 

“숙제하느라 그래요. 과외에다 수행평가 과제까지 얼마나 치이는데.” 

 

저도 모르게 엄마한테 뾰족하게 대꾸해 버렸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내 말투에 놀랐는지 젖가락질을 멈췄다.

 

“걱정돼서 한마디 한 건데. 그렇게 짜증 낼 일이야? 그러고 보니 너 좀 이상해. 얼굴색도 안 좋고…….”

“걱정은 무슨…… 성적에만 목매면서…….”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리고 숟가락을 탁 놓았다. 의자를 뒤로 빼자 바닥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빠가 정색하면서 내 팔을 잡았다.


“행동이 왜 이렇게 거칠어." 

"너 요새 뭐 하고 다니는 거니?” 


엄마까지 옆에서 거들었다. 나는 아빠 손을 슬며시 뿌리치며 퉁명스레 말했다.


“뭐 하고 다닐 시간이나 있어요?”

 

현관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폭발할 것 같은 불만이 더부룩한 가스처럼 속에 꽉 들어찬 느낌이었다. 역극하고 놀 때만 조금 진정되었다. 


“중간고사 결과 나왔다. 학원도 안 다니는 지원이가 이번에도 1등이네.”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시샘 어린 눈빛들이 온몸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 대신 과외를 받는다. 생활기록부에 올릴 자기 주도형 학습을 인정받기 위해서 몰래 하고 있었다. 엄마는 진학에 좀 더 유리해지려면, 선생님과 아이들한테 들켜서도, 말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무안해진 나는 선생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다가 유미와 눈이 마주쳤다. 유미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른 아이들은 재수 없어라, 하는데…… 정말 속없는 애다.


“내일 수학 쪽지 시험하고 독후감 숙제 있는 거 잊지 마라.”


공지를 끝내고 선생님이 나가자 아이들이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시험도 볼 거면서 독후감 숙제는 왜 내주는지 모르겠어.” 

 “맞아,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다고.”

 “책보다 역극 놀이가 훨씬 재미있는데.” 

 

아이들이 내 쪽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난번 대화방 일 이후로 아이들과 서먹해졌다.

  

세희가 새삼스레 어젯밤 역극 이야기를 꺼냈다.


 “마녀 걔 너무하지 않니?”

 

세희가 내 닉네임을 말하자 아이들 입에서 슈미, 도도, 피오나등 역극에 참여했던 닉네임이 튀어나왔다. 


“세희 네 닉네임, 혹시 피오나니?”

 

누군가 슬쩍 떠보자 세희가 펄쩍 뛰며 아니라고 잡아뗐다. 


“아무리 역극이라도 마녀 걔가 좀 심하다는 거지.”


신데렐라역을 했던 세희 닉네임은 피오나가 맞다. 나랑 같이 언니역을 한 도도는 세희랑 제법 친한 애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닉네임을 숨기며 시치미 떼고 있었다. 


“신데렐라도 어제 얄미웠잖아.” 


세희가 아니라니까 안심됐는지 아이들이 신데렐라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냈다.


“마녀가 안 그랬으면 얼굴만 믿고 끝까지 밉살맞게 굴었을걸.”


일부 아이들이 마녀 편을 드는 것도 나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거다. 

 

“어쩌면 걔 진짜 마녀일지도 몰라.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하나둘이 아니야.”

“이상한 거 뭐?”


세희말에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자기 카페인데도 불구하고 낮에는 도통 댓글을 달지 않잖아.”


세희는 분했는지 엉뚱한 쪽으로 이야기를 몰아갔다.

 

"그럼 우리가 마녀랑 채팅한단 말이야?”

 

장난스럽게 받아치던 아이들은 점점 세희의 말에 빠져들면서 표정이 굳었다.


“밤에만 채팅하는 것도 수상쩍잖아.”


“어휴, 야. 무서워. 팔에 소름이 쫙 끼친다.”


아이들 목소리가 떨렸다. 마녀의 핸드폰에 인터넷이 차단되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겁먹는 것을 보자 왠지 통쾌하고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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