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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은 Oct 28. 2022

하루의 실종

3

“이럴 수가… 옛날 그대로야.”


잠깐 같이 둘러본 그 방에서 내 또래의 아버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작은 책상과 한 칸짜리 옷장, 벽에 걸린 옷가지까지. 삼십 년 가까이 주인 잃은 방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책가방도, 교복조차 그대로…….”


아버지는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살그머니 방문을 닫고 나왔다. 

방문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옆의 손님방도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지 고즈넉했다. 침대 위에 내가 입을 옷가지가 잘 포개어져 있었다. 자잘한 꽃무늬가 새겨진 광목 원피스였는데 실내복으로 입기엔 고급스러워 보였다. 밑단 장식 역시 광목천으로 주름잡아 만든 레이스였다. 촉감이 부드러웠다. 


옷을 갈아입고서 나는 우선 창문부터 열어젖혔다.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상쾌했다. 이 층까지 솟아오른 목련이 창틀까지 가지를 뻗고 있었다. 잔가지 끝에 맺혀있던 솜털 봉우리를 보다가 조금 떨어진 이 층 집에서 망원경으로 이쪽을 살피는 지도원 동무를 발견했다. 나는 짐짓 못 본 척 자연스럽게 창문을 도로 닫았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삼촌과 할머니는 식탁에 음식을 차리느라 분주했다. 능숙하게 요리하는 삼촌이 인상적이었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네 아버지 식성대로 차렸는데…….”

할머니가 말끝을 흐리며 미안해했다.

“괜찮아요, 저도 아버지와 같아 서리…….”

 

말하다 보니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은 북한에서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가 좋아했다던 낯선 음식들. 나는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울 겸 일부러 명랑하게 말했다.

 

“다. 맛있갔시요.”


할머니가 흰 도자기 주전자를 들고 와서 아버지 앞에 있던 작은 잔을 채웠다. 


“네가 가끔 몰래 친구들과 즐겨 마셨던 걸 알고 있었어.”


아버지 얼굴이 소년처럼 붉게 물들었다. 단숨에 들이켠 아버지 목소리가 떨렸다.


“이 사케 맛이 얼마나 그립던지.”


감회 어린 눈빛으로 집안 곳곳을 더듬던 아버지 눈동자가 커졌다.


 “저 전축이 아직도 있어?”

 “전축만? 음반도 그대로야. 형이 떠난 후 어머니의 시간은 멈췄어.”


삼촌이 쓸쓸한 웃음과 함께 대꾸했다. 삼촌이 일어나 전축에 음반을 걸었다. 음반이 돌아가며 잔잔하고 나른한 일본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즐겼다던 음식과 노래를 맛보았다.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 애잔한 슬픔이 스며들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찍 서둘렀다. 할아버지가 계신 곳은 작은 항구 근처에 있는 호젓하고 외진 요양병원이었다. 굳이 고집부려서 휠체어에 앉아 우리를 맞은 거라고 간병인이 귀띔했다. 조금 떨어져 쫓아온 지도원 동무가 병실 밖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삼촌 눈빛에 움찔해서는 마지못해 고개를 돌렸다. 성큼성큼 걸어간 삼촌이 병실 문을 쾅 닫아 버렸다. 


할아버지는 사진과 달리 마르고 수척한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몸을 낮추어 할아버지 무릎에 얼굴을 묻고는 한동안 흐느꼈다. 이곳에 도착한 후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아버지는 벌써 세 번째 눈물을 보였다. 


공화국에 있을 때 아버지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 같았다. 오빠가 죽었을 때 외에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가까이 오라는 것 같아 다가가서 손을 잡아 드렸다. 바짝 마른 나뭇잎이 연상되는 손이었다. 금방이라도 바삭하고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앙상한 가지처럼 뻗은 손가락들이 내 얼굴을 더듬었다. 


“불쌍한 것. 네 오라비가 예서 치료받을 수만 있었어도…….”


멀쩡한 할아버지 말투에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는 왜 손 말을 익히게 한 것일까? 할아버지는 가늘게 뜬 실눈으로 내 얼굴에서 오빠 얼굴을 찾는 것 같았다. 녹이 슨 쇳소리 같은 음성이 이어졌다. 

 

“죽기 전에 너라도 봐서 다행이구나.”


이곳에 왔으면 살았을 오빠. 어릴 때부터 잦은 병치레를 했던 오빠에 대한 기억은 불안과 안타까운 슬픔으로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쏟아붓다시피 공들인 혜택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셈이었다. 느려 터진 행정절차를 밟는 동안 오빠는 저세상으로 떠났고 할아버지는 오늘, 내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접견실에서 우리를 맞았던 할아버지는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호흡곤란 증세가 왔다. 서둘러 병실로 옮기고 응급 처치했다. 우리는 할아버지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보고 병원 문을 나섰다. 집에 거의 도착할 때 즈음 운전하던 삼촌이 침묵을 깼다.


“여기까지 왔는데 형 친구들도 안 보고 갈 거야?”


아버지가 뒤쫓아 오는 차를 힐끗 돌아봤다. 삼촌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사람 만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것은 뭐라고 못하겠지.”


삼촌이 핸들을 꺾고 차를 돌리자 우리를 쫓아오던 차도 방향을 틀었다. 삼촌이 차를 세운 곳은 소학교 앞이었다. 어스름이 짙게 깔린 운동장에는 아이들 몇 명만 겨우 남아있었다. 삼촌은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뒷좌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 들으라는 듯 옆에 앉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네 아버지가 다니던 학교 궁금하지 않니? 같이 둘러보자.”


내가 뒤를 돌아보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렸다. 뒤쫓아 온 차에서 지도원 동무도 내렸다. 그가 우리를 따라나서려 하자 삼촌이 막아섰다. 그러자 지도원 동무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나라고 이러고 싶은 줄 아네? 이거이 내 임무인 걸 어쩌네?”


할머니가 다가가서 핸드백을 열고 담배 한 갑을 꺼내어 건넸다.


“그러지 말고 담배나 한 대 피우면서 나랑 얘기 좀 해요.”


지도원 동무는 못 이기는 척 담배를 받아 들고는 근처 벤치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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