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조은 Oct 28. 2022

하루의 실종

4

아빠와 나 삼촌은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한눈에 보기에도 낡고 초라한 학교였다. 평양 소학교에서처럼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놀면서 깔깔댔다. 평양에서는 이맘때까지 태양절 행사 준비로 매스게임 연습이 한창이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고역을 겪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교정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천천히 걷는 아버지 눈은 더 먼 곳을 응시하는 느낌이었다. 나와 삼촌은 한 걸음 떨어져서 걸었다.


“우리 아바지 학교 다닐 때 어땠시오?”  


생각에 잠겨 있던 삼촌이 피식 웃었다.


“짓궂었어. 완전 장난꾸러기였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삼촌을 쳐다봤다. 


“아바지가요? 내성적이라고 생각했시오. 제가 어릴 때부터 워낙 말이 없으셔서…….”


삼촌 눈에 금세 물기가 차올랐다. 삼촌은 급히 하늘을 보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나는 잠시 뜸 들였다가 다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삼촌은 남조선을 선택했다고 들었시오. 남조선은 어떤 곳이야요?” 


삼촌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한을 선택했다기보다 편의상 남한 국적이 필요했을 뿐이야.”

“그거이 그거 아닌가요?”

“다르지. 난 직업상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해. 비자받기 위해서 선택한 국적에 불과해.”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가 조국에 대해 말할 때 망설이던 순간이 떠올랐다.

 

“기럼 삼촌은 남조선에 대해 어케 생각하는데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해.”

 

남조선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다.


“기렇다면 조국은 뭐야요?”


“글쎄……. 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컸는데 북한 정권도 남한 정권도 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더라고. 북한은 나를 불온한 불순분자로 보고 남한 정권에선 조선총련 간부 아들이라는 이유로 툭하면 간첩 취급이었으니까. 그래서였을 거야 내가 세상을 떠돌게 된 것은” 

 

지도원 동무가 절대로 상종해선 안 된다고 했던 삼촌에 대해서 새삼 궁금해졌다.


“삼촌은 무슨 일 해요?”

“유니세프에서 일해. 언제 기회 되면 자세히 말해 줄게 그러려면 저 감시원부터 따돌려야겠지?” 


삼촌이 어느새 교문 근처를 어슬렁대고 있는 지도원 동무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묻고 싶은 게 더 많았지만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그 후 삼촌과 단둘이 얘기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 안에 도청 장치가 되어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상호 감시와 자아비판에 익숙한 나조차도 짜증이 날 정도로 지도원 동무의 감시는 집요했다. 


다시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할아버지는 산책하러 나가고 싶어 했다.

 

“하루하고 다녀오마.” 


나는 휠체어를 밀고 바닷가로 향했다. 지도원 동지의 감시는 삼촌과 함께 있는 아버지 쪽으로 쏠렸다. 

할아버지는 먼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절벽 쪽 산책길을 택했다. 울타리 너머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서 부서졌다. 물끄러미 수평선을 향한 할아버지 눈은 아슴푸레 더 먼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끔벅였다. 할아버지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진짜 궁금했던 것을 여쭈었다.


“할아바지는 왜 아바지를 북조선에 보낸 기야요?”

“조국이니까.”

“남조선도 있었잖아요.”

“내 고향이 북조선이었디. 게다가 난 가난한 소작농 출신이었거든. 인민 해방을 외친 북조선이 더 낫다고 생각했더란다.”

 

나는 잠시 뜸 들이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아바지도… 원했나요?”


할아버지는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회한이 담긴 숨결이었다.


“그랬디. 네 아비는 용감했으니까. 차별과 상처를 준 이 땅에서 찾지 못한 희망을 얻고 싶었을 게야. 그때는 그랬단다.”


언젠가 잠결에 우연히 엿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울분 섞인 소리로 재일교포 출신으로 겪는 차별에 대해 엄마에게 하소연했었다.

 

“삼촌은 왜 안 보낸 기야요?”

“그 애는 어렸고 네 아비와 달리 여렸거든. 우리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디.”


믿어지지 않았다. 잠깐 본 삼촌은 아버지보다 훨씬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가만히 내 이름을 불렀다.


“하루야,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는 공화국에서의 삶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오빠가 죽은 후로는 더더욱 그래 보였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때의 아버지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도 아버지처럼 갔을 기야요.”

“결과가 지금 이런데도 말이냐?”

“아바지도 부모가 시켜서리 간 것만은 아닐 거라요. 지금 제 생각처럼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싶었겠디요. 결과는 그다음 문제디요.”  


할아버지가 허허하고 쓸쓸하게 웃었다.


“너도 네 아비를 닮아 용감하구나.”

 할아버지는 내 손을 토닥이며 힘없이 말했다. 

 

“할아비는 말이다. 젊어서는 저 바다를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고 네 아비를 보낸 후로는 자식을 그리워했디.”

 

할아버지와 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오래도록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이전 08화 하루의 실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