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
남의 편지를 엿보는 일은 꽤나 스릴 있어요. 제3자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편지에 담긴 비밀이라도 발견하듯 한 문장마다 집중하게 되거든요. 마치 소설처럼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상대방의 관심을 이끄는 글재간은 어떠한지, 편지의 답장은 어떻게 쓰여질지와 같은 무한한 상상을 펼쳐보게 됩니다.
기업과 투자자는 재무 관계를 넘어 같은 미래를 지향하는 비즈니스 파트너입니다. 그들은 긴밀한 사업 전략과 투자 철학을 담은 '주주서한(Shareholder Letter)'을 주고 받습니다. 상장사는 홈페이지에 공개 주주서한 형태로 게시하기도 하고요. 대표적으로 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의 CEO 워런 버핏은 자신의 투자 철학을 밝혀 전세계 경영자와 투자자가 바이블로 삼을만한 주주서한을 매년 남깁니다. 또한 아마존 (Amazon)의 CEO 제프 베조스는 1997년부터 매년 20년이 넘도록 아마존 투자자들에게 주주서한을 보내고 있지요. 아마존이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을 기업 철학에 근거하여 남긴 이 모든 편지를 아마존 블로그 : Day One에서 대중이 엿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남기는 공개 주주서한은 수신자가 주주와 기업이라는 특정 타겟이 있지만, 실은 전세계 고객을 포함한 대중에게 알리는 공식 문서와 다름 없습니다. 주주서한인데 비밀스럽지 않은 완전 공개 문서라니, 어떤 전략일까요? 일단 편지라는 수단의 비밀스러운 특성을 잘 활용했습니다. 편지의 타겟인 주주는 파트너 기업으로부터 신뢰와 진정성을 더할 것이며, 남의 편지를 '공개적으로' 엿본 대중은 숨은 편지 의도를 찾으려 들 것입니다. 그럴수록 편지를 통해 발산하는 기업만의 철학은 대중을 매료하기에 더 충분해집니다.
특히 제프 베조스의 주주서한은 아마존의 처음(Day One)과 현재, 미래를 분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입니다. 왜 아마존이 온라인 커머스를 넘어 식료품 마켓 '홀푸드(Whole Foods)’를 인수했는지, 왜 전자책 기기 ‘킨들(Kindle)’을 직접 판매하는지, 왜 세계 최초의 무인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를 운영하는지와 같은 많은 궁금증 해소가 가능한 것입니다.
강남언니는 기업철학 탐구 과정에서 주주서한을 포함한 다양한 기업의 원칙들을 바이블이자 레퍼런스로 삼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 버크셔해서웨이, 넷플릭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구글 등의 기업 사례를 주로 탐구합니다.(참고 : CEO 생각 쫓기) 직접 대표가 나서 책 <베조스레터> 스터디를 진행하는 등 이미 대내외에 선언한 철학마저도 모든 동료들이 함께 재차 들여다 보고 수정하기를 반복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의 가치를 더 '높은 기준'으로 이끌 수 없는지 고민하면서요. 그 중에서 아마존의 주주서한과 리더십 원칙에서 지대한 영감을 받아, 강남언니를 이끌어가는 동료 인재상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Teachable, Domain Specific, Contagious
높은 기준은 선천적으로 타고날까요? 아니면 배울 수 있을까요? (Intrinsic or Teachable?)
높은 기준은 보편적일까요? 아니면 영역 특화적일까요? (Universal or Domain Specific?)
제프 베조스는 높은 기준이란 배울 수 있으며 영역 특화적이라고 설명하는데요. 누군가가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팀에 오면 그와 팀은 상향 평준화되며, 특정 영역마다 높은 기준은 모두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기준'이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Contagious)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겠죠. 팀에 낮은 기준이 만연해지면 개인과 팀의 수준도 쉽게 낮아집니다.
이를테면 A팀과 B팀에 각 새로운 리더가 들어왔다고 가정할게요. A팀 리더는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팀원들이 읽으면 좋을 만한 아티클을 슬랙에 공유합니다. B팀 리더는 수시로 슬랙에서 다른 팀을 험담하거나 '빨리 퇴근하고 싶다' 식의 부정적인 대화를 이끕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A팀은 자연스럽게 리더뿐 아니라 팀원 전체가 인사이트 아티클을 검색하고 공유하는 데 익숙해지고, B팀은 팀원들의 업무 동기가 떨어지거나 리더에 대한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커질 것입니다. 따라서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환경은 '다 같이'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Recognition and Scope
특정 영역에서 높은 기준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높은 기준인지 인식(Recognition)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범위(Scope)를 현실적으로 예측해야 합니다.
제프 베조스는 높은 기준의 '인식'과 '범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글쓰기 역량이 아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의 범위'를 잘못 예상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는 높은 기준의 글을 쓰는 데 일주일 이상이 걸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루나 이틀, 심지어 몇 시간 안에 쓸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글은 초고를 다듬고, 동료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다른 날 새로운 시각에서 퇴고할 수 있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수일이 걸릴 수 있는 작업이니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무도 알아줄 것 같지 않은 한 줄 표현을 더 잘 쓰기 위해 끊임없이 문장을 고치고 다듬을 때 좋은 글이 나오며, 당연히 이 과정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주일 이상이 걸릴 수 있다는 노력의 '범위'를 제대로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높은 기준의 기업문화가 갖고 있는 미묘한 장점은 모든 회사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지만(Invisible)' 중요한 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일을 잘하는 것은 높은 기준의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얻을 수 있는 보상입니다. 그것은 바로 프로가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높은 기준은 재밌고, 한 번 경험해 보면 되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 2017년 아마존 주주서한 중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계속 그 의견을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헌신하며, 우리가 도전하는 이 일이 최고의 결과를 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나를 설득하는 시간에만 집중했다면 의사결정 과정이 굉장히 느려졌을 거에요" - 2016년 아마존 주주서한 중
항상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불완전한 결정이더라도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격렬하게 의견 대립을 하고, 사실에 근거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Disagree) 일단 우리가 함께 내린 결정이 내려지면 반대했던 사람이나 지지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전적으로 결정에 헌신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Commit) 이 두 가지 태도가 공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특정한 의견 대립 과정에서 내 의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결정되었을 때 '왜 내 의견이 아닌, 그 사람의 의견으로 결정된 걸까'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면, 결국 모든 과정과 결과에 헌신하지 못한 상태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헌신이란 최종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이 충돌하고 치열하게 대립해야만 비로소 가능합니다.
Are Right, A Lot
"리더는 옳은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확실한 판단력과 인사이트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채 자신의 믿음이 틀렸음을 증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Leaders are right a lot. They have strong business judgment and good instincts. They seek diverse perspectives and work to disconfirm their beliefs.)" - 아마존 리더십 원칙 중 네 번째
누군가의 의사결정과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둘 뿐 아니라 틀렸음을 인정할 줄 아는 태도도 중요한데요.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고 전제하는 태도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속하게 실행하게 합니다. 만약 틀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하염없이 논쟁하기만 한다면 고객과 시장에서 배울 수 있는 다음 단계를 시작하지도 못할테니까요. 이른바 '아닐 수도 있고' 정신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가설 검증을 시도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토론할 때 자신의 의견이 이기는 방향보다 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기를 노력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실패로부터도 배울 수 있는 '성공적인 실패'를 겪어야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 태도는 강남언니의 가장 인상적인 인재상입니다. 물론 위 인재상 또한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마존의 주주서한을 탐구하며 강남언니만의 철학을 확립하고, 또 다시 우리의 그것이 누군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내부 구성원이야말로 기업 철학의 대내외 전파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직을 체화하는 과정으로도 작용할 것입니다.
기업 철학을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은 주주서한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채널처럼 기업 블로그 또한 꾸준하게 브랜드가 지향하는 생각을 콘텐츠로 담아내기에 최적의 공간입니다. 외부인의 시각으로 우리 브랜드를 바라보는 미디어와 달리, 자체 채널(Owned Media)은 우리 입으로 직접 원하는 메시지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매년 1월이 되면 기다리는 글이 딱 하나 있습니다. 커플 메신저 '비트윈' 운영사 VCNC 창업자이자 현재 쏘카를 운영하는 박재욱 대표의 블로그 글인데요. 그는 'VCNC, 쏘카의 2019년을 보내며 정리한 10가지 배움'과 같이 직전년도의 사업 운영기와 인사이트를 상세하게 글로 정리해 공개합니다. 흡사 내용은 제프 베조스의 주주서한과도 비슷해서, 364일 동안 게재되지 않는 이 블로그에 전혀 허전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일 년에 글 하나만 올라오는 자신감과 내공에 압도된다랄까요. 어떠한 방법과 노력으로 기업 철학을 발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입니다.
강남언니 오피스의 모든 회의실은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높은 기준', '소신있게 반대하고 헌신한다(소반헌)', '틀릴 수도 있다', '고객 집착', '극도의 투명함' 같은 것들이요. 단순히 문에 적힌 작은 이름들이지만, 우리가 회의실 문에 들어서고 나올 때의 마음가짐을 한 번 더 되새기게 하는 강남언니의 철학들입니다. 모든 단어와 문장이 가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는 오랜 고민의 역사이자 증거가 될 것입니다.
*본 포스팅은 강남언니 기업 블로그에 선 게재 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