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조직, 비즈니스의 상관 관계
하나의 조직, 특히 스타트업이 Zero to One을 만드는 데 자신만의 철학을 성과로 연결 짓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조직과 사회마다 똑같은 모양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기에, 조직을 창조하는 모든 이들을 철학자이자 크리에이터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조직 문화에 관심 많은 저에게 강남언니는 서비스 이름만큼이나(이전 글 참고 : 우리들이 강남언니가 된 이유) 독특한 철학을 가진 곳으로 다가왔답니다. 무엇보다 뻔한 글자로만 머물지 않고 전파와 실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지요.
회사의 커뮤니케이터로서 주로 조직의 모든 것에 대한 관찰과 질문을 습관화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 회사만의 매력을 '발견'하고 '영감'으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특히 CEO의 생각을 쫓기 위해, 그의 사소한 의사결정을 관찰하고 의도적으로 과도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 곳 강남언니의 리더 Aiden(홍승일 대표)와 대화하다 보면, 동료들이 느끼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독서입니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각종 책에서 받은 인사이트가 현재 강남언니 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레퍼런스이자 바이블이 되고 있거든요. 저도 틈틈히 휴식이나 스터디 시간을 활용해 해당 책 모두 읽어보기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언젠가부터 우리를 이야기할 때 필수가 된 책들을 바탕으로, Aiden과 나눈 대화를 기록합니다. 우리의 조직 문화는 어떤 책과 기업 철학으로 영감을 받았고, 궁극적으로 동료와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원칙과 가치는 무엇인지 공유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책 제목은 『』 부호로 표기합니다.
Joanne 문화의 원형(原型)을 만들어가는 일에 꽤나 상당한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는 듯해요. 특히 사내 독서토론 '아카데미아(Academia)', 아마존 철학이 담긴 『베조스 레터』를 탐구하는 조직 문화 스터디 등 책과 연관된 활동도 많습니다. 이러한 실천은 빠르게 변화하는 조직에서 어떤 원동력을 만들까요?
Aiden 예측불가의 상황에서 우리의 지향점에 대해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자는 의도에요. 가속도의 법칙(F=ma)에서 보면, 지속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힘을 가했을 때 무한대에 가까운 속도를 얻을 수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힘의 방향이고, 얼마나 꾸준히 오래도록 힘을 가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해요.
지향점이라고 하니 고정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고요. 우리는 고객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기에, 이들은 마치 끊임없이 움직이는 표적처럼 도저히 예측할 수 없어요.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누구나 누릴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가치를 전달해야 할지, 어떤 타이밍이 최선일지, 고객이 느끼는 가치의 크기는 어떨지 모든 게 다 불확실해요. 심지어 고객에게 한 뼘만 더 좋은 가치를 전달한다면 시장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한 뼘만 뒤쳐지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어요. 이러한 예측불가성의 상황에서,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되 '언젠가는 맞히겠지'하는 막연한 낙관으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가장 유효한 전략이라 여겨집니다.
"자유시장이 작동하는 것은 기술이 뛰어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혹은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 공격적인 시행착오 끝에 행운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의 전략은 간단하다. 최대한 집적거려라.
그리하여 검은 백조가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리라." p.27
"진실로 우리의 심리나 지적인 판단은 시행착오를 좀처럼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거듭되는 작은 실패가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하는 것이다.
(..) 실패를 사랑하라. 어떤 아이디어나 제품도 실패를 거친 결과 확립되고
마침내 '완벽히' 다듬어질 수 있는 것이다" p.336
『블랙스완』 중에서
Joanne 말씀하셨듯 우리는 1) 미션 달성을 위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하면서도 2) 너무나도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어요. 조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개인의 주관과 역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일'일겁니다. 처음 조직을 만들고 필요한 인재를 충원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Aiden 뻔한 말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 '다름'에 대한 열린 마인드를 가지는 거에요. 열린 마인드로 다양성 그 자체를 존중하라는 거죠. 우리가 어릴 때는 유유상종의 집단과 주로 어울리잖아요. 그런데 비즈니스 세계로 오니 다른 가치관의 집단과 협업하거나 경쟁하는 일이 필수더라고요. 다양한 관점과 의견 대립이 필요한 과정에서는 유유상종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너지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나와 달라'가 아니라 '저 사람은 이 영역에서 반드시 필요해!'라는 관점으로 다양성에 기반한 조직을 만들고 있어요.
이를테면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선수는 공격적인 드리블과 속도가 특기에요. 그에게 특기를 살려 더 강력한 공격수가 되자는 코칭과 수비 능력을 공격 능력만큼 끌어올려라는 코칭 중 어떤 방향이 더 현명할지 생각해 보죠. 특정 영역에서 높은 수준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대개 못하는 것을 적당한 수준으로 만드는 일보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노력하는 편이 빠를 때가 많습니다. 각각의 높은 수준에 이른 영역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다름'의 관점입니다.
"차별화란 불균형의 상황을 더욱 불균형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 평준화는 차별화를 이루기 위한, 그리고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최고의 장애물이다." p.61
『디퍼런트』 중에서
Joanne
다양성을 긍정적인 시너지로 퍼뜨릴 수 있는 기둥 같은 존재가 바로 핵심가치(Core Values)라고 할 수 있겠죠? 특히 『**원칙/88』에서 강조한 'Radical Transparency'를 레퍼런스 삼아, 강남언니만의 핵심가치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오랜 구성원들에겐 익숙하지만 처음 우리의 핵심가치를 접하는 이들에게는 '극도의 OOO' 표현이 다소 극단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Aiden 철학은 극도로(Radically) 추구할 정도로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될 때 의미를 가질 수 있어요. '극도의 협업'을 예로 들어볼게요. 우리가 정의한 협업이란 단순히 일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분업, 협력과 같은 수단을 사용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그 자체인데요. 구성원들이 협업의 가치를 어설프게 인식한다면, 기능적으로 나누어 일하는 분업이나 협력으로 타협해버릴 위험성이 생깁니다.
우리는 고객 가치에 집착해야 해요. '집착'이라는 단어가 병적일 정도로 극단적으로 들리죠? 그 정도로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라는 말입니다. 고객 가치에 집착하기 위해서라면 운영 상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뿐, 절대 고객 경험의 후퇴를 선택하지 않을 거에요. CS 문의가 지난 주 100건에서 이번 주 200건으로 늘어났다고 해도, 편한 운영을 위해 고객 응대 퀄리티를 절반으로 줄이면 우리 가치를 위배하는 선택입니다. 즉, 집착한다고 볼 수 없어요. 극도로 추구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들 때 철학, 원칙, 행위의 준칙이 됩니다.
Joanne 저도 어색하게 다가왔던 '극도의' 표현을 이제는 업무와 의사결정 시 더욱 자발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위대한 조직이 철학을 대하는 관점에 대해 우리는 다양한 책이나 아티클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데, 이 실제 사례들에서 어떤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나요? 확고한 원칙, 고객 최우선 사고방식, 리더십 등이 떠오르네요.
Aiden 맞아요. 모두 다양한 조직의 원형을 이루고 있지만 1) 절대 타협하지 않을 고유한 원칙이 있고 2) 각 가치 자체의 의미를 넘어 가치들이 이루는 관계에 주목하는 점도 재밌습니다.
극도의 투명함에서 협업까지의 핵심가치를 살펴보면, 어느 하나도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우리만의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극도의 협업'마저 투명함과 솔직함을 배제해서 설명할 수 없어요. '극도의 솔직함'도 투명함을 배제해서 설명할 수 없고요. 의도와 맥락, 과정이 잘 공유되는 투명함이 전제된다면 동료 간 서로 솔직할 수 있는지 협업의 신뢰가 형성된다고 믿습니다.
"픽사 직원들은 평범한 작품에 안주하지 않고 탁월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브레인트러스트라는 메커니즘을 활용한다. 브레인트러스트 시스템의 근간은 간단하다. 영리하고 열정적인 직원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문제들을 파악하고 해결하라고 맡기고, 서로 솔직하게 의견을 얘기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정직을 요구받는 상황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는 요청을 받으면 조금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 솔직함이 없으면 신뢰도 존재할 수 없다. 신뢰가 없으면 창의적 협업은 불가능하다. p.131
『창의성을 지휘하라』 중에서
"진실을 공개적으로 직접 말하라.
솔직하게 피드백하라.
문제를 덮어두면 고쳐지지 않고, 그 결과가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극도의 솔직함'이 회사 전체로 퍼지게 하라." p.71
『파워풀』 중에서
Joanne 마지막으로 조직의 철학이 실제 비즈니스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철학과 조직 문화가 좋다고 알려진 곳인데 그만큼 비즈니스는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나 보게 됩니다.
Aiden 철학과 비즈니스는 같이 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소수의 몇 명으로만 일할 때는 철학을 선언할 필요성이 적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하는 문화는 서로 암묵적인 합의로 녹아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조직의 규모가 커지며 한계에 봉착하더라고요. 우리 안에 내재하는 가치를 발견, 정의, 선언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비즈니스 환경에 맞는 조직 문화와 철학이 없다면 결국 지향점이 불분명해지거나 도태될 거라 생각해요.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은 분명 그에 걸맞는 나름의 철학이 존재하리라 믿습니다.
단 하나의 시행착오 없는 비즈니스를 향할 수 있는 철학은 아무도 영원히 모르지 않을까요? 모르니까 대충 하자가 아니고, 극도로 핵심가치를 추구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조직 문화를 만드는 과정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