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푸말랑가의 Pilgrim's Rest
숙소로 묵었던 사비에서 북쪽으로 50km쯤 가면 한때 금광마을로 많은 사람이 북적였고 채굴이 끝난 지금은 국립 유적지가 된 필그림스 레스트가 있다. 필그림스 레스트의 역사는 18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아공에서 처음 금광이 발견된 이후 많은 채굴업자가 영국 등지에서 유입되었고 필그림스 레스트는 그렇게 조성된 캠프 중 하나였다. 그때의 건물이 그대로 유지 보존되고 있는 그곳을 다녀왔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마을이 되었지만 1873년말 즈음엔 약 1,500명의 채굴업자들이 4천여 개소의 클레임 (47x47미터 규모)에서 금을 캐는 캠프였다고 한다. 채굴이 한창이던 1930~50년에는 매년 300천 톤을 채굴하다 50년대 이후로는 50천 톤까지 감소했다고. 1972년 마지막 채굴을 끝으로 금광마을로서의 역할은 종료되었으며 1986년 국립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필그림스 레스트의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면 재미있는 포스터를 볼 수 있는데, 채굴업자들이 노동 인력을 모집하기 위해 고안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10대들이여, 부모의 등쌀에 지쳤는가? 바로 지금! 바깥으로 나와 일자리를 구하라! 너의 청구서는 너가 직접 지불하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 바로 실행하라! 내년에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원래 채굴 캠프로서 텐트가 대부분이었으나 1896년 무렵 현재 보존되고 있는 형태의 건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필그림스 레스트에서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묘지가 빠지지 않는다. 1874년 첫 매장 이후 지금도 묘지로서 활용되고 있는데 특히 텐트 절도범의 무덤이 인기다. 다른 무덤들에 비해 수직 방향으로 매장되어 절도범의 무덤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필그림스 레스트에 모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저마다 사고나 전염병 등으로 죽었고 일부는 비석도 없이 매장되어 신원 미상인 무덤도 많다.
금을 찾아 남아프리카로 흘러온 채굴업자가 마침내 정착한 곳, 필그림스 레스트. 요하네스버그처럼 요란하지 않고 매장량도 많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꿈을 향해 열심히 살다 간 흔적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 채굴이 아닌 문화 체험 활동으로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원래의 용도를 잃어버린 유산이라도 활용하기에 따라 충분히 값진 오늘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