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벅의 봄
안녕. 계절을 편애하려는 마음은 없지만 지난겨울은 심하다 싶을 만큼 길었어. 메마른 숨을 쉴 때마다 살갗이 하얗게 부서지는 걸 보면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이 질리도록 파랗다고 생각했어.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욕심이었지.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봄이 빼꼼 고개를 내어미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었거든. 겨울이 조금씩 자리를 양보하면 이렇게 많은 전령들이 저마다 소중히 준비해온 걸 선물처럼 열어주는데. 요하네스버그의 봄은, 색색이 가득한 아프리카의 정취를 데리고 그렇게 왔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노래했던 그곳의 시월은 가을이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었지. 시월은 이름처럼 시린 계절이었는데. 여기서도 그건 마찬가지인 듯해. 봄이라고 알려주던 꽃과 나무가 매일 저녁이면 찾아오는 비바람에 하루가 다르게 시들해져 가고 있었어. 시월의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매서운 비가 내려 자카란다를 모조리 할퀴고 간다던가. 갑자기 조급해진 마음에 웨스트클리프를 찾아갔지만 주말은 예약이 없으면 들여보내 주지도 않더라. 그래서 다시 찾아간 월요일이 시월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어. 자카란다가 모두 지기 전에.
주말을 내내 기다리면서 비가 오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었던지. 다행히 일기예보와 다르게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이 밝았다면 더 좋았을 걸 그랬지. 그랬을까. 웨스트클리프로 가는 길엔 잔디가 넓게 펼쳐진 호수공원이 있고 언덕에 서면 멀리 코끼리를 볼 수 있는 동물원도 있어서 밝은 날이 더 좋았을거야. 너와 함께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언덕에 올라 바라본 그곳의 모습이 운전하며 돌아오는 내내 마음에 남아 떠나질 않았어. 그저 늘 한자리에 있을 뿐인 그곳을 찾아가서 기대하지 않은 위안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건 이국에서 혼자 맞는 생일에 딱 알맞은 기분 좋은 일이었어. 그렇더라도 신비로울 정도로 강렬하게 오래도록 남아있던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돌아오면 챙겨야 하는 많은 일들은 대조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어. 마치 사랑이 마약같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