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천협회 윤범사 Jun 08. 2020

취미가 무술이라는 것

기천으로 고수가 되는 법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 16년 차에게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무술이라고 답하면 다들 오오 하며 한번 놀라고, 어떻게 시작했냐는 질문에 대학 때 동아리로 시작했으니 대략 20년 좀 넘었네요,라고 하면 엄청 오래 하셨네요 라는 반응과 함께 위에서 아래로 신체를 스캔하고는 무슨 무술이냐는 삼단 콤보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래도 예전엔 일반적으로 들어봤을 리 만무한 기천이요 하면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있는지 택견 같은 거요? 하고는 억측이 범벅된 질문이 들어오곤 했으나 요즘은 찍어둔 유튜브도 있고 해서 몇 개 보여주곤 하면 이내 심드렁하게 추가 질문이 없다. 그나마 기천3수 영상을 보여주면 고난도 발차기가 있어서인지 한번 더 오오 정도가 나오나 그것도 앞서 보인 심드렁한 반응에서 크게 벗어나는 정도는 아니다. 


종합격투기가 널리 유행하고서 자유대련이 아닌 형 위주의 영상이 주는 불신감 같은 것이 있다고 보는데, 딱 중국 무술을 도장깨기하고 있는 격투기 선수 정도의 인식과 같다. 속 쓰리지만 아주 잘못된 인식도 아닌, 격투기에서 보여지지 않은 무술에 대한 몰이해와 함께 무술, 혹은 무술 고수라는 말은 실체와 실용성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무술로 격투기를 보이는 영상이 더러 있어서 예를 들어 주짓수, 택견의 경우 희화화된 무술의 굴레를 벗어난 듯한데, 상대적으로 기천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불편한 인식의 범주에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기천으로 격투기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나타나면 해소될 일인데, 누군가 적극적으로 격투기 선수가 되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일이라고 본다. 


기천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기천으로 고수가 되는 법을 생각해봤다. 기천 특유의 반탄이 주는 역동적인 몸놀림과 화려한 기천수는 사실 격투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실전적인 느낌을 주기 충분했고 나를 포함해서 그것에 매료되어 기천을 시작한 분들이 많다. 기천수에 빠져 기천을 시작했으니 어느 정도 몸에 익숙한 수준에 이르면 어떨까 싶지만 부족함은 여전하다. 대양진인이 넘치는 끼와 재능으로 기천수를 만든 것이지 기천수를 익혀서 고수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천수를 목표로 수련하는 것이 고수가 되는 길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어떤 고수가 되고 싶은가 하는 것인데, 격투기 선수로서 기천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으면 링 위에서 버틸만한 체력을 만들면 되고, 역동적인 몸놀림을 갖고 싶으면 기천수를 잘하면 된다. 


무술로서 기천의 매력은 맷집과 파워로 단 몇 초에 승부가 결정되는 격투기의 단순미에 있지 않고, 반장을 기본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변화수와 보법이 콤비가 되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예술의 경지에 있다. 아마도 대양진인은 그가 생전에 보여준 몸짓과 직계 제자들의 증언, 남아있는 영상으로 미루어 보건대 본인조차도 평생에 걸쳐 미처 다 선보이지 못했을 만큼 다양한 확장성을 체득한 고수였을 것이고 후대의 범부는 그나마 정형화된 몇 가지 기천수와 수풀이로 그 매력을 짐작해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판단은 가슴이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