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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천협회 윤범사 Mar 28. 2019

드라켄스버그 #2

하룻밤, 클라렌스

용이 굽이굽이 산맥처럼 뻗어있고 거인의 창이 하늘을 찌르는 남성성의 상징 드라켄스버그에도 한 구석에는 수줍게 숨겨놓은 아리따운 여인이 있으니 그녀의 이름을 클라렌스라고 하였다. 1912년에 남아공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이후 해가 갈수록 청초함을 더해가는 그곳에는 드라켄스버그의 요새에 도전하는 숱한 장정들이 하룻밤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오늘도 북적인다.  


와인 한 잔 들고 가세요

정오 즈음 클라렌스에 도착하여 숙소의 여주인이 추천하는 식당 클레멘타인을 찾아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골든게이트로 향했다. 세 시간 정도 지났을까. 벅찬 감동을 안고 클라렌스에 돌아오니 이 마을이 더욱 아름다웠다. 거리며 골목마다 즐비한 갤러리와 정갈한 맛으로 소문난 맛집이 한집 걸러 교차하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소박한 세련미로 여행객의 마음을 유혹하였다. 결코 넓지 않은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느라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보아둔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시는 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오소서
마을에 들어서면 둥근 광장이 반긴다
여행객에게 알찬 정보를 드려요
부동산조차 감각적
화려한 갤러리
시간이 못쓰게 했어도 살아있는 한 기억할게
삽으로 창을 내겠소
펌프용 풍차
갤러리 앞에서 식사하세요
우체국 앞 사거리에서 만나
클라렌스 75주년 기념 식수
길을 묻는다
애들은 어디에
보라색 풍차와 양파
동네 뒷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레소토 고원까지 19킬로의 수로를 뚫어주신 신, 구 커터
동네 노는 언니들
이제 저녁은 어디서


사기꾼 나빠요

사진에서 느낄 수 있듯이 마을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다. 아직 열려있는 곳들도 서둘러 문을 닫았고 중앙 광장 한쪽에서는 여러 사람의 큰 목소리가 오갔다. 퇴근 무렵의 일상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둘러보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도 개점할 생각이 없는 식당들을 의아해하며 어느새 점심을 해결했던 클레멘타인에 와 있었다. 여느 곳과 다르지 않게 닫힌 문에는 무언가 메시지가 걸려있었고 가까이 가 읽어본 메시지는 '금일 휴업'이란 말뿐.


버스 정류장을 개조해 식당이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내일 뵙는 걸로 해요


외식하러 나온 마을 노부부와 자녀의 추천으로 외지에서 오신 분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식당 앞을 서성이다 각각 헤어졌다. 차를 타고 마을 바깥으로 나가볼까 하던 찰나에 숙소의 여주인께서 전화를 주었다. 돈가스를 준비했으니 방황하지 말고 들어오라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마을 의회의 유명한 사람이 거짓으로 부동산을 매매하고 계약금과 함께 사라져서 여럿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시위가 다소 폭력적으로 번져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고. 사기꾼은 나쁘지만 따뜻한 돈가스와 함께 클라렌스의 정이 별처럼 빛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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