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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천협회 윤범사 Apr 06. 2019

드라켄스버그 #4

초원을 질주한다, 드라켄스버그

남아공의 겨울은 몇 개월이고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 9월까지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공기에 익숙하다 10월 이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린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의 장마처럼 내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특정 시간대에 주로 내린다는 점이다. 요하네스버그의 경우 내내 맑다가도 퇴근 무렵인 6시 정도면 멀리서 비와 천둥 번개를 동반한 구름이 샌턴 시내로 접근해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하늘을 흠뻑 적신다. 지역을 다녀보면 이런 패턴이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드라켄스버그는 그 시간대가 조금 이르다. 전날의 낭패로 숙소에서 곰곰 생각하다 질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절대 비 올 리 없는 아침 첫 시간대로 다시 예약을 했다.  


말 좀 타보셨음?

오전 8시 30분으로 예약을 하고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마장으로 떠났다. 드라켄스버그 주변 어느 휴양지에서도 승마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지만 남아공의 친절한 가이드 SA Venue에서 추천하는 노던 호스를 고집했다. 이미 겨울의 드라켄스버그를 질주하신 바 있는 기승청년 애마 이 옹께서 매우 즐거워하셨던 검증된 코스였기 때문에 무척 설레었다.

 

오전 첫 타임이라 혼자 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6인 가족이 리셉션에서 맞아주었다. 이 집 가족 구성이 조금 특이한데, 중동계 24살의 호주 아주머니와 중동계 30살 남아공 아저씨가 1년 반의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고 아주머니의 여동생과 아버지, 그리고 10살 정도의 막내동생아버지의 또 다른 사위가 남아공 휴가철을 맞아 호주에서 오셨다고 한다. 본래 남아공 국민이었다가 호주로 이민을 갔고 부부는 페이스북에서 만나 8개월간의 스카이프 연애로 결혼에 성공했다고.  


아주머니 자매가 예쁘고 말을 처음 탄다고 해서 내심 같이 갔으면 했지만 유경험자와 무경험자가 코스를 달리하는 바람에 이내 가이드와 나만 둘이서 덜렁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2시간 질주의 시작이었다.


형부와 처제와 열 살 막내


질주본능이여 달려라

승마를 체계적으로 배우신 기승청년 이 옹께서는 의 칼럼에서 친절히 속보와 구보, 습보의 차이를 설명하셨지만 죠이는 남아공에서 영어로 승마를 익힌 탓에 구보와 습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또한 구보, 라고 들으면 그것이 캔터인지 갤럽인지 헷갈린다. 가이드가 레디, 하면 냅다 따라 달리고 캔터로 타다가 반동을 받아낼 수 없이 빨라지면 갤럽 자세로 바꿔서 달리고는 했다. 사실 아직도 그것이 갤럽이었는지 좀 빠른 캔터였는지 모른다. 가이드에게 몇 번이고 물어봐도 그 역시 구분을 잘 못했다.


이제 카메라는 가이드의 손에
전날 짧은 캔터 몇 번으로 이미 허리는 뻐근해도 아하하항 즐거워라
경치 참 좋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풀 좀 드삼
보기만 해도 신나. 저기를 달린단 말이지
냇가를 건넌다
우회전 고삐 쥐세요
뭐 이런 경사를
이런 절벽도
내리막은 살살
말도 내리막은 조심스럽게
아하하항 아이 시원해
패션의 완성 승마모자. 덜렁이는 턱끈이 안습이나 꽉 조이는 것이 싫어서
댐 앞에서 한 컷. 자세의 정석
아하하항 아이 신나요
쿨링 다운
어깨 허리 뻐근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마무리는 아쉽구랴


이제 소원성취

모처럼 떠난 여행에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세상사 생각하기 나름이라 같은 값으로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두 번이나 기승한 셈이 되었다. 3일 차 일정이 계획과 달라지기는 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변경이었다. 원래 예정이었던 오전 커씨드럴 피크를 버리고 바로 자이언트 캐슬로 이동하였다. 2시간의 알찬 승마로 피곤해졌을 법도 한데 마음은 너무도 가벼웠다. 11시경 마장을 출발하여 자이언트 캐슬에 도착하니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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