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성격은 낯선 기획 업무를 수행할 땐 치명적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성격이 정말 급해요. 평소에 두 번 생각했다면 일을 할 땐 10번 이상 생각하고 진행하여도 괜찮아요, 그래도 남들보다 빠르니 생각하는 시간을 더 가지세요."
형식적이라 생각했던 심리상담 센터에서 들은 검사 결과이다.
그렇다. 나는 성격이 급하다.
눈앞에 일이 있으면 당장 처리해야 하고 우선순위가 사라지기 전까지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눈앞에 닥친 일을 서둘러 처리하고자 일을 했는데 일이 손에 익었을 땐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집단의 기획 업무는 단순한 업무가 아닌 것들이라 기획자에게 왔다.
그런 즉, 기획자에게 급한 성격이란 낯선 업무를 대충이라도 빨리 처리하려는 욕심이었다.
새 회사로 이직해 적응하는 시기에 팀 내 시니어분이 말씀하셨다.
"성격이 정말 급한 것 같아요. 나도 급한데 나보다 더 빨라."
그러자 내 사수분이 이어서 덧붙인 말이 나에겐 업무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 되었다.
"너무 급해요, 그러면 CS(쉽게 말해 고객불만) 바로 들어와요."
맞다. 단순히 고객 불만뿐 아니라 협업하는 동료들이 번거로워지고 더 나아가선 일을 번복하는 일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급한 성격은 실수를 쉽게 일으키고 그 실수는 단순히 성격 급한 나에게만 피해가 오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 더 나아가선 내가 운영 중인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다.
늘 내 급한 성격을 경계하고 그리 좋은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날 알게 된 지 고작 한, 두 달 된 사람들도 내 성격의 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체질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지금 나는 급하게 무언가를 처리해야 할,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이 안된다.
그렇지만 일은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일은 내 급한 성격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바로 스터디 노트이다.
이 스터디 노트는 대한민국 입시를 치른 사람이라면 낯선 개념은 아니다. 흔히 했던 오답노트와 같이 문제풀이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내가 잘한 부분, 잘못한 부분을 분석해 나가는 연습이다.
업무를 처리할 때 단순히 하나의 현상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 밟은 자취를 하나하나 적어보고 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나름의 결론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시니어분들께 여쭤봤다.
연차가 그리 많지 않은 경력직이 업무 파악하기에도 이 방법이 꽤나 도움이 된다.
서비스 및 회사 히스토리를 하나하나 찾아보며 정리할 수 있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생각의 흐름을 나눠서 정리하다 보니 내가 잘못 접근한 부분이 명확히 보였다.
시니어분들도 이렇게 분절된 내용을 바탕으로 잘못 접근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주셨다.
다들 정말 바쁘심에도 주니어를 키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기에 그 노고에 보답하고자 어서 성장하고 싶어 더 열심히 분석했다.
그렇게 몇 달을 하다 보니 시니어 분이 업무를 처리하는 사고의 흐름과 내가 업무를 처리하는 흐름이 조금씩 맞춰졌고 점차 맡는 업무가 늘어났다.
일이 늘어남에 안도하는 게 아니라 더 브레이크를 잡으며 일하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