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를 만나는 이름
또 다른 이름이 주는 힘
창작 수업에 첫날은 새로운 이름을 짓는 것으로 시작한다. 심리 카드를 활용해서 내 마음과 가장 가 닿아 있는 카드를 고르고 저 깊이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왜 그 그림을 선택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면 단어와 단어가 만나 새로운 이름이 탄생한다.
우리는 이 작업을 작가의 탄생이라고 부른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존재의 이유와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지으며 소망을 불어넣는 것은 한 생명을 온전이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이렇듯 아이들 스스로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태도에 세기는 것은 또 다른 나에게 생명을 선물하는 작업이다.
유독 자신의 필명을 자랑스러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솔빈이는 왜 필명을 '빛'이라고 했어?"
"저는 아이디어가 반짝반짝하거든요. 그래서 빛이에요."
"앞으로 빛작가님 이야기 기대합니다!"
새로운 필명 앞에서 해맑게 웃던 솔빈이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고학년 친구들은 조금 더 과감한 필명을 짓는다. 그렇게 자신 안에 있는 넘치는 에너지를 투영시킨다.
'마라맛 칫솔'이라는 필명을 지은 친구가 있었는데 자기는 마라탕을 가장 좋아하는데 먹고 나면 칫솔질을 해야 할 것 같다나? 커다란 이빨이 달린 가방의 그림을 골랐는데 그 그림을 보면서 자기를 닮았다고 했다. 이쯤 해서 이 친구는 여자 친구임을 밝히는 것이 좋겠다.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고 쾌활한지 그 생명력이 고스란히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친구였다. 거침없이 상상하고 써 내려가는 마칫작가님! 긴 필명을 줄여서 '마칫'이라고 불렀는데 처음 이야기 발상 단계에서 자신이 천재라며 기뻐했다가 이야기가 풀리지 않으면 이내 좌절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마법의 이름을 부른다.
"마칫작가님! 힘내셔야지요? 오늘 딱 한 문장만 더 쓰고 갑시다."
"진짜 딱 한 문장이요?"
"응."
그러면 한 문장이 아니라 그다음을 이어 쓰면서 뿌듯해한다.
"선생님, 저는 아무래도 천재가 분명해요!"
"암요, 마치작가님."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된 아이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니 더욱 그립다.
작가라는 태도에 관하여
<라솔서재>에는 최연소 수강생이 있다. 1학년 봄부터 시작한 그래서 지금은 2학년이 된 쌍둥이 남매. 처음 이 아이들의 엄마를 만났던 날이 기억난다. 아직 고사리 같은 손으로 뭘 쓸 수 있을까? 혹시 쓰는 과정이 힘들어서 이야기 자체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한사코 안 된다며 만류했던 나를 쌍둥이 남매의 모친이 설득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저희 아이들과 뭘 하시든 다 좋아요. 쓰는 게 안 되면 수다라도 떨게 해 주세요. 그냥 이 공간에만 머무르게 해 주세요."
응당 수업료를 받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교습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로 힘든 갈림길이었다. 정말로 자신 없이 시작한 수업이었다. 태어나서 내가 이토록 무능력한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첫날부터 쌍둥이 남매가 '작가의 이름'을 얻은 순간 보인 행동이었다. 마냥 아기 같았던 눈빛은 어느새 세상 진지한 작가의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직 손힘이 약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버거운 때지만, 자신의 작품을 위해서라면 참아내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했다.
하루는 얼개를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입으로 잔뜩 떠들었던 말들을 정리해서 쓰려니 머리도 복잡하지만 손은 더 안 따라주는 상황이었다. 사실 아직 한글도 완전하게 떼기 전이라 본인이 적은 글을 다시 읽기란 더 힘든 시기였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좌절스러웠을지 안쓰러운 순간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름하여 라솔서재의 자랑이 된 '대본 쓰기'였다.
아이들이 얼개를 짜고 나면 배역을 정하고 각자의 대사를 말한다. 그러면 내가 바로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타이핑한다. 형식만 바뀌었을 뿐 이 아이들은 여전히 창작의 영역에 있으니까. 그렇게 나온 대본을 읽고 연습하면서 배역에 맞는 그림도 그려 가면을 만들기도 하고 인형극에 사용할 캐릭터를 그린다. 이 작업이 끝나면 직접 멋들어진 연기를 하면서 촬영을 한다. 그렇게 1년쯤 했을 때, 아이들이 스스로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연극대본으로 익혔던 서사의 구조를 그대로 적용해서 쓰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무색하게 쌍둥이 남매는 몰입하며 글을 써 내려가가 시작했다. 제법 작가다운 태가 흐른다.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순간, 그것은 작가의 태도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된다.
하루는 한 껏 들뜬 목소리로 쌍둥이의 엄마가 찾아왔다. 이 이야기만큼은 꼭 해주고 싶었다며 잔뜩 상기된 얼굴로 생글생글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 어제 쌍둥이 친구들이랑 엄마들을 만났어요. 같이 있던 친구 엄마가 도담 동민이한테 뭐 할 때 제일 좋으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쌍둥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기대 가득한 눈으로 대답을 기다렸지만 난 당체 알 수가 없었다.
"글쎄요?"
"도담 동민이가 자기들은 세상에서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어요. 그 얘기 들은 엄마들이 화들짝 놀랐어요. 책만 봐도 기특한 나인데 어떻게 겨우 2학년이 글쓰기가 재밌다고 할 수 있냐며 다들 난리도 아니었어요. 쓰는 즐거움을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따뜻한 커피와 함께 전해져 온 진심이었다.
엄마의 믿음이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이들을 성장시켰다. 꼬마 작가들은 라솔서재에서의 기억을 안고 잠시 더 큰 경험을 위해 잠시 안녕을 고한다. 쌍둥이 남매의 모친은 또 다른 모험을 준비 중이다.
어디에서든 쓰는 사람으로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남매는 같은 공간과 시간을 경험하고 어디서든 함께 하기 때문에 남다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 창작을 배운 이후로 그 시간이 더 풍성해졌다고 했다. 이야기 만들기를 놀이처럼 불러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렴풋한 공상을 나름의 개연성을 가지고 서로가 작가와 편집자의 시점에서 즉석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창작, 즉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되는데 쌍둥이 남매는 다른 것 보다 가장 만족감이 큰 놀이를 즐긴다.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둘만 있으면 오케이다.
<라솔서재>에 다니는 아이들은 한 가지 특이점이 있는데 눈앞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이야기와 연결시키는 작가병에 걸려있다. 이 집 저 집 이야기를 들어보면 뜬금없이 작가처럼 인물의 내면이나 이야기의 구조를 이야기하는데, 그때마다 웃음을 참지 못한다는 거다. 같이 다른 책을 볼 때는 인물의 결핍을 이야기하고 허구한 날 캐릭터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는 말을 전해 듣곤 한다. 어떤 때는 한참 동안 어떤 친구 이야기를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요즘 라솔서재에서 쓰고 있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하면서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는 엄마들도 있는데 목소리에 신기함이 가득하다.
이야기를 만들고 완성하는 재미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자기 효능감이다. 지치는 순간이 찾아올 때 꺼내 먹을 수 있는 알사탕처럼 그 달콤함이 오래도록 감돌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