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함께 쓰는 든든함
서로의 안부를 묻는 아이들
다정함은 스스로가 편안하지 않으면 흘러나오기 힘든 태도다. 라솔 수업의 방식은 아주 특별한데 같은 시간대에 각기 다른 나이의 아이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레벨도 없기에 그 시간 함께 같은 공간을 누리는 글벗이 곧 친구가 된다. 어떤 날은 초등, 중등, 고등이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쓰는 날도 있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힌 라솔서재만의 반편성이다. 대면 대면 할 줄 알았지만 아이들은 나의 걱정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참 재밌는 건 이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묻는다는 거다. 개인 사정으로 수업이 밀리거나 혹은 한두 주 못 보는 날이 생기면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이야기에만 빠져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하루는 화요반 가장 나이가 많은 고1 형이 초등3학년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선생님, 푸름 작가는 안 와요?"
"응, 오늘 결석한다고 연락 왔어. 왜?"
"아니, 그냥요. 저번에 주인공 위기 안 풀려서 엄청 고민했잖아요. 제가 지난주에 빠져서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요."
"사건을 하나 만들어서 잘 넘겼어. 지금 절정 쓰고 있어."
"아, 절정 들어갔을 때 바짝 써야 되는데."
"너나 잘하세요. 안녕 작가님."
피식 웃으며 던지는 말에 대수롭지 않은 듯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자신의 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공간에서 함께 쓰는 기쁨이 참 아이들을 다정하게 만드는구나 싶은 생각에 흐뭇했다. 가끔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는 모습도 귀엽다. 뭐, 그렇지 않은가. 내 글은 안 풀려도 다른 사람글에는 늘 할 말이 많은 것이 당연하니까. 그 다정한 간섭이 좋은 아이디어로 꼬리를 물 때 마치 전쟁에서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만난 듯 그렇게 아이들은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공간에 함께 머무른다는 것은 단순한 공유를 넘어선 공감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한 배를 탔고 항해를 하며 너도 나도 아는 그 파도를 넘고 있는 동질 감이 또 한 번 끝까지 갈 수 있는 동력이 되니 말이다.
환대라는 안정감
문을 열고 서재에 들어서면 정면에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가 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처음 <라솔서재> 문을 열고 사랑하는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이 문장이 이토록 서재와 찰떡이 될 줄이야.
어찌보면 단순할 법한 교습이라는 공간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이유는 하나다. 환대!
말하지 않아도, 공간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반가움과 기다림에 대한 안녕이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유독 공간을 쓸고 닦고 다듬었던 이유는 머무르고 싶고 , 쉬고 싶고 무장해재 되는 회복의 감정을 안겨주고 싶었서였다. 어릴 적, 엄마는 가끔씩 가구 배치도 새롭게 하고 커튼이며 소파에 놓는 쿠션 커버를 계절에 맞게 꾸미곤 했다. 봄이면 하늘하늘한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바람이 좋았고. 겨울이면 포근한 러그 위에 앉아 각진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에서 군고구마와 손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었던 아늑함이 내 기억 저편에서 안정감을 준다. 그 마음을 고스란히 라솔에 쏟아부었다. 여름이면 시원한 옥수수차를 준비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보리차를 준비한다. 난 그 시간이 좋다. 라솔의 대표 간식은 강냉이, 밤만주 뭐 그렇게 촌스러운 것들이다. 그런데 그걸 좋아해 주는 아이들이 신기하다.
단지 교습만을 위한 장소가 아닌 회복의 공간으로 아이들에게 남길 바라는 마음이 가 닿았을까. 라솔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 공간은 마법 같다고 말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공간. 그래서 이전에 고민하고 힘들었던 기억들을 잊게 된다고. 그래서 라솔에서 글을 쓰는 2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다고. 얼마나 감사한 말인지. 공간을 돌보는 건 그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최고의 애정이 아닐까 싶다. 기다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 말이다.
몰입으로 이끄는 공간의 힘
몰입의 순간에 이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된다. 우리도 한 번씩은 경험해 본 순간이다. 하지만 꼭 즐거워야만 몰입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책임을 다해야 하는 시점에 자신을 통제하고 버티다 보면 어느덧 집중하는 시점에 이르게 된다. 몰입에 진입하면서 그 순간부터 가속도가 붙는데 이 것을 즐거움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부를 하려면 책상에 앉아야 한다. 주변에 방해하는 물건은 최대한 치우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창작을 할 때 몰입에 이르게 하는 중요한 조건은 공간이다.
보통 작가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각자가 몰입하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 되면 모든 감각이 살아난다. 정말 마음먹고 반드시 써야 하는 날은 작은 초를 하나 켜기도 한다. 나만의 의식이다. 평범한 책상이 특별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라솔서재의 공간은 온통 글을 쓰고 싶은 기분으로 채워주고 싶었다. 어디를 보아도 규칙이 없고 자유 분방함 그 자체다. 하지만 자유로움이라는 결이 있다. 마치 동굴 속 나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랄까. 어떤 상상을 해도 받아들여질 것 같은 공간말이다. 어쩌면 나의 간절함을 담았는지도 모른다. 현실로부터 단절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야 말로 아이들의 생각과 입을 열게 한다. 그렇기에 살뜰하게 라솔서재라는 몰입의 공간을 돌보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오늘 하루 나에게 허락된 공간 라솔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