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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FRAU Jun 26. 2021

택배

스위스 일기

(표지 사진 : Photo by. @JOFRAU)


1

2주 동안 신경 쓰이게 했던 EMS 프리미엄 택배가 오늘 도착했다. 한국에서도 스위스에서도 택배는 언제나 반갑다. 특히 이곳에서 한글로 "우체국" 글자가 적힌 박스가 전달되면 괜히 더 반갑다.


2

띠리리리리- 초인종 소리에 “왁 택배다!!!” 하고 한 달음에 달려 나가는 내가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마담, 주소가 잘못 적혔어.”라고 말하는 택배기사에게 나는 “오이런!” 하고 놀라니 “아냐, 아냐. 근데 다음부턴.. ㅇㅋ?” 하는 불어 아닌 영어 아닌 대화를 나누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다행이었다.

택배는, 울엄마의 편지는 무사히 나한테 잘 전달되었으니까.


3

엄마는 나에게 택배를 보내기 전에 필요한 옷들이 있는지 물어보시며 사진을 6장 정도 보내주셨다. 그중에서 나는 3벌 정도 골라서 이것도 같이 보내주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받은 택배에는 옷 말고도 여러 짐들이 한 트럭이다. 내가 부탁드렸던 옷 말고도 선택하지 않았던 그 3벌의 옷들까지.

그럼 왜 물어보신 거죠 엄마?


정갈하게 개어져 있는 옷들을 보니 괜히 울컥했다. 처리 과정에서 생긴 약간의 문제로 2번 거절(?)당했던 택배라 더 그런 걸까. 보내주고 싶은 것들은 너무나도 많은데 안 된다고 하니 울 엄마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챙겨서 보내주고 싶어 하셨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려왔다.


택배 잘 도착했다고 엄마한테 연락을 드리니 아니나 다를까 잘 도착한 건 잘 도착한 거고 결국은 보내지 못한 것들 때문에 속상하다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나는 농담으로 “엄마 너무 고마워요. 근데 이제 더 이상 엄마한테 해줄 리액션이 없오..! 정말 괜찮아요. 엄마도 맘 풀어요.” 했지만 나도 마음 한 구석은 뭐랄까 속상하고 아쉬웠다. 내가 부탁드리지 않았다면, 혹은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울엄마 오늘 한숨 쉬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4

엄마는 택배를 보내실 때마다 항상 편지도 ‘한 통 씩’ 써서 보내신다.

디어 마이 도터, 디어 마이 사위.

편지를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려고 노력하지만 솔직히 어렵다.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거나 고개를 들어 눈을 크게 뜨려고 한다. 


한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 난 엄마한테 부끄러운 딸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 엄마가 날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 나 스스로 나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고, 자존감은 저 멀리 밑바닥에 팽개 쳐진 지 오래였을 때 그때. 그런 내가 슬프기도 또 한심하게 느껴져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께 나 좀 부끄럽다 하는 생각. 부모님께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 모습.


하지만 울엄만 이번 편지에서도 말씀하신다.

누구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이라고.

엄마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사랑한다고.


2020.06. 스위스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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