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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FRAU Jul 02. 2021

유럽에서의 두 번째 이사

스위스 일기

(표지 사진 : Lac Léman, Suisse / Photo by. @JOFR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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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독일에서 스위스로 이사를 했다. 그때 남편과 다짐했다. 큰 가구를 살 때는 생각을 한 번 더하자. 우리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굳이 맥시멀 라이프를 지향하지 말자. 한 마디로 짐을 늘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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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이 조금 넘은 후, 2년도 채 안 돼서 우리는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이사 오면서 썼던 택배 박스를 잘 보관해두었던 터라 유용하게 쓰겠다 했는데 결국 우린 택배 박스 10개를 더 샀다. 12개였나? 짐이 몰래 번식을 하는 게 틀림없다.


나라에서 나라로 이사를 했는데 나라 안에서 하는 이사는 껌이지 했던 생각은 이사 준비를 하며 손과 발이 붓기 시작하면서 점차 잊히게 되었다. 안 하던 일을 하니까 하루하루 손이, 발이 붓는 게 느껴졌다. 몸이 지쳐갈수록 실감이 들었다. 이사를 가는구나. 짐은 언제 다 쌀까. 또 짐은 언제 풀까. 차로 2시간 반 - 3시간 걸리는 새로운 집에 가서 다시 짐을 풀 생각을 하니 짐을 싸고 있는 노동이 아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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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일상에 이사라는 큰일이 생기니 몇 주 동안은 이사만 생각하며 지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에서는 이사를 가는 집에 대해 신경이 좀 더 많이 쓰였다면 여기서는 현재 사는 집과 이사 갈 집 두 곳에 모두 아주 많은 신경을 쏟아야 했다. 유럽에서는 현재 사는 집을 비우기 전에 집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삿짐을 싸면서도 청소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할지 남편과 계속 상의했다. 만약 집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보증금에서 관련 비용을 제하거나 청소를 다시 하고 검사를 한번 더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는 이사할 때 비울 집에 대한 집 검사가 일반적이라 여기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방인인 나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일이다. 다행히(?) 2년 전 독일에서 집 검사를 받아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디를 집중적으로 청소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숨이 나왔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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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집 내부는 보통 하얗다.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 갈색 혹은 붉은색의 몰딩은 찾기 어렵다. 요즘은 한국의 집들도 몰딩을 많이 없애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집주인이 리모델링을 해서 색깔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무튼 유럽의 집은 거의 대부분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바닥은 보통 나무 바닥. 충격에 약함 주의.


벽과 천장이 하얀 집에 어떤 가구를 들여놓아도 괜히 예쁘다. 깔끔하다. 집도 커 보인다. '갬성'적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 집에 살 때의 이야기. 나갈 때는 달라진다. 그 하얗고 고왔던 벽과 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에는 얼룩도 좀 있고, 스크래치도 좀 있다. 당연히 처음 봤던 그 모습대로 깨끗하고 하얗게 만들어 놔야 한다. 어떻게? 페인트칠 하기. 혹은 이건 영업비밀인데 매직블록 사용하기. 그리고 천장의 경우는 등*을 달았던 곳에 구멍이 나 있으니 모조리 메워야 한다. 벽이나 천장에 난 구멍을 막는 데 사용되는 큰 치약처럼 생긴 물품이 있다. 짜고, 넣고, 스크래퍼 슥슥, 사포 삭삭. 남편은 이제 도가 텄다.

*TMI : 유럽의 집은 전 세입자와 따로 거래하지 않는 이상 집에 전구, 등이 없다. 알아서 달아야 한다. 독일의 경우는 부엌에 개수대, 오븐 및 가스레인지, 화장실에는 세면대, 변기, 샤워공간(샤워부스 아님 주의)만 있었다.


다음으로는 당연하지만 놓칠 수 있는 청소 포인트. 오븐 친구들.

유럽의 집은 보통 오븐이 빌트인 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없는 집이 없다. 그동안 정들었던 오븐과 그 친구들(오븐 내부 부속품들, 환풍구 등)을 당연히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했다고 하더라도 집 검사를 앞두고 그냥 둔다면 무조건 불합격을 받을 것이다. 오븐 청소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독일에서 고생했던 남편이 그 경험을 토대로 하루 만에 뚝딱 해냈다. 필터만 갈아주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어서 정말 답이 안 나왔던 환풍구 청소도 해냈다. 환풍구 청소를 마치고 나니 궁금했다. 집 검사할 때 환풍구가 통과되면 난 춤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소리를 지른다거나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그럴지 궁금했다. 그만큼 오븐 친구들을 청소하기는 굉장히 어렵고 까다로웠다.


다음 청소 포인트는 청소 검사의 하이라이트이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바로 하수구.

집 안의 온갖 하수구를 찾아내서 모조리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다음 세입자를 위한 청소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부엌 개수대, 식기세척기, 화장실 세면대의 하수구를 모조리 꺼내고 들춰내어 윤이 나도록 닦았다. 물론 세탁기와 건조기의 내부와 필터도 꼼꼼히 청소했다. 업체를 쓰지 않고 남편과 나 둘이 이렇게 해내다니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지인들에게 꼭 알려주자. 이거 모르면 집 검사 때 하수구에서 100% 불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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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까다로웠던 청소를 마치고 나니 발콘부터 방 안을 쓸고 닦는 청소의 기본적인 일은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주말을 반납하고 이틀 동안 이루어졌던 청소에 많이 지쳤지만, 새집처럼 깨끗해진 집을 보니 뿌듯함이 더 컸다. 우리가 잘 지냈던 곳인 만큼 다음 세입자에게도 좋은 곳이 되길 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갈 집에 대해서도 이전 세입자가 잘 지냈던 곳인 만큼 우리에게도 좋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할 곳에 집을 구하는 것부터 이렇게 마지막으로 집 청소까지. 신경 쓰이는 일, 걱정되는 일,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모두 잘 해결되고 이사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청소 검사는 기분 좋게 합격이었다. 환풍구 통과에 나는 소리를 지르진 못했지만 아주 활짝 웃었다. 검사하는 직원분에게는 마스크에 가려져서 잘 안 보였겠지만. 하이파이브를 했으니 그분도 인정한 거 아닐까?


그렇게 두 번째 이사가 마무리되었고, 나는 로잔댁에서 루체른댁이 되었다.



2021.02. 스위스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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