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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별 Nov 26. 2024

당신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오늘일 수도 내일일 수도...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병이든 사고든 죽음을 직면한 또는 직면했던 사람들은 일반인들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알기 때문에 그 급박함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가진 공포와 위압감은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반대로 ‘희망’과 ‘생기’를 불어 넣어 강력한 변화의 동기도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간암 판정을 받았을 때, 그때를 생각하면....      


당시 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남편과 아빠의 부재가 그들의 앞날에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었다.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로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렸다.     


식단 관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일과 다른 사람들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불안함은 사라졌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빠 엄마와 함께하는 즐거운 추억을. 추억은 시간이 지나도 언제든 다시 떠오르니까.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는 어려서부터 발달이 빨랐다. 태어나서 걷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도 금방 배워 혼자 탔었고 축구, 태권도를 좋아했다. 힘든 훈련도 잘 참아내 검은띠까지 땄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는 첫째에 비해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좀 더뎠다. 그래서 여태 두발자전거도 타지 못했다. 늘 보조바퀴가 있는 상태로 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오기가 생겼다. 오늘은 기필코 둘째가 두발자전거를 타는 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없더라도... 스스로 두발자전거를 타는 추억 속에 아빠를 잊지 않도록 꼭 넣어 주고 싶었다. 그길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밖으로 나왔다.     


둘째는 아직 보조바퀴를 떼고 타는 게 무섭다고 머뭇거렸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아이를 자전거에 앉힌 뒤 눈은 앞을 보고 다리에 힘을 주고 페달을 힘껏 밟으라고 요령을 알려줬다. 하지만 둘째는 힘들어했다. 내가 뒤에서 잡아줘도 몇 미터를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 난 시골에서 자라 자전거 타기는 일상이었다. 언제 처음 자전거를 탔는지도 기억이 안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이들과 놀 때도 마찬가지였고.     


내 마음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둘째가 답답했지만 더 오기가 생겼다. 계속 자전거에 앉히고 페달을 밟도록 연습을 시켰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가 앞으로 쭉 나가는 게 아닌가. 난 아이를 뒤에서 밀어주다가 혼자 길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내와 첫째는 걱정 반 웃음 반 표정으로 날 지켜봤고 길바닥에서 나뒹굴었던 나도 머쓱한 마음에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혼자서 페달을 굴려 앞으로 나아간 둘째는 성공했다는 기쁨에 저만치 가서야 멈춰 섰다. 그러고선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를 바라보는 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5월의 어느날 둘째는 두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덤으로 그날의 추억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 그날의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뒤로 둘째는 시간이 날 때면 형과 늘 자전거를 탄다. 이젠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날도 있을 것 같다. 그때가 기다려진다.     


간암으로 인해 죽음이 내게 찾아왔지만 내겐 즐거운 일들이 더 많다.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으려면 5년, 그동안 재발을 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완치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평생 관리를 해야 한다.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너무 걱정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무엇보다 난 우리 아이들과 아내와 오래도록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건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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