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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별 Nov 21. 2024

암환자가 버려야 할 것들

암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생존자로 살아가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다. 물론 그로 인해 더 큰 것을 얻었으니, 불평불만은 없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음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다     


그동안 정말 원 없이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부족한 것이 음식이지만 이젠 음식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물론 아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욕심을 내자면 적게 먹어도 건강하고 신선하고 예쁜 음식을 먹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수술후 일년 반 정도 지나고 나니 내 스스로의 약속과 다짐이 약해지긴 한다. 특히 음식 양에 대한 조절이 그렇다. 한창 관리를 할 때는 많아야 밥 반공기 보통 3분의1 정도의 밥을 먹었었는데 이제는 반공기가 참 아쉽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양이 좀 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운동을 하니까 “운동을 하면 돼”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푼 것도 같다. 하지만 항상 ‘절제’라는 단어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지금껏 탄산음료, 라면, 술, 날음식 등을 끊은 채로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이 되니 방울토마토 값이 너무 올랐다. 내 주식인데...     


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다     


작년 6월에 수술을 하고 추석 즈음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한번 이직을 했었지만 새벽같이 집을 나서 밤에나 들어오다 보니 건강에 좋을 것 같지 않아 아내의 만류로 일을 쉬게 됐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약 20여년 동안 휴가 3일 정도를 제외하고는 길게 쉬어 본 적이 없다. 직업 특성상 항상 핸드폰과 노트북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해외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      


성격상 일을 시작하면 내가 다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몸에 무리가 가면 안된다는 생각에 눈 딱 감고 일을 멀리했다. 다행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좋았다. 밤에도 일찍 잘 수 있었다. 잠만 잘 자도 건강하니 참 좋았다.     

그렇게 일년 반이 지나갔다. 암 환자에게 일은 정말 독약같다. 하지만 이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서 일보다 가족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아이들과 놀고 싶었다. 근무시간 이후 미팅이나 약속도 잡지 않았다. 일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다행히 다른 가정에 비해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죽음에 대한 걱정을 버리다     


암판정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진다. 당연하다. 하지만 난 실의와 절망에 빠지길 원치 않았다. 그러기엔 내 남은 시간, 앞으로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무엇 보다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과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내가 할수 있는 일을 했다. 누가 날 바꿔주길 바라지 않았고 병원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암환자의 정신 건강 상태는 상당히 중요하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강하게 붙들고 있으면 쉽게 꺾이지 않는다. 육체적·정신적 습관을 바꾸면 모든 게 바뀐다.      


그리고 내 상태에 따라 가족들도 바뀐다. 내가 웃으면 아이들도 웃고 내가 울면 아이들도 운다. 난 아내와 아이들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머리 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도록 만들었다.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버려라     


암환자가 되는 순간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암과의 전쟁에 나서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주변에서 도와줄 수는 있지만 온몸으로 부딪혀 싸워야 할 사람은 나다.     


적어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순간 만큼은 이기적이어도 된다. 까칠해졌다는 소리를 들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죽음과 사투를 벌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매 순간 매일 같이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타인들은 모른다.     


회사, 학교, 동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 봐라. 내가 뛰어 들어 해결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아니어도 도움을 주고 해결할 사람이 많다. 이젠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해도 된다.     


암환자인 나는 내 몸에만 집중을 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감정을 버려라     


몸이 아프면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암도 마찬가지다. 한없이 우울해 지기도 하고 몸이 말을 잘 안 듣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에 변화가 생겨서 화를 내기도 하고 격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원치 않아도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때그때 내 감정을 풀어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내가 아픈 환자다 보니 주변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산속에 혼자 살수도 없는 노릇이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도록 마음을 컨트롤 하는게 중요하다.     


난 운동으로 해결했다. 걷기, 산에 오르기, 달리기 등 손쉽게 할수 있는 것들이 생각 보다 많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한 행동이나 말에 대한 상대방의 감정이 어떨지 생각하는데 쓸 에너지를 내 몸을 관리하는데 쓰는게 더 낫다.         


누군가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기적이 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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