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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주 Apr 03. 2021

두 사랑

2030년을 위한 글쓰기

 친구 이치는 아홉  아래인 애인이 있다. 올해는  커플의 나이 ‘앞자리 같은, 10년에   오는 해다. 이치가 그것에 의미를 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속으로  신기하고 기쁘다. ‘올해는  사람이 함께 30대야!’  10  그들이 함께 40대인 어느 날에는 그것을 40개의 초와 함께 축하해주고 싶다는 야심도 있다. 이치는 넓고 깊은 사람이고, 그런 이치가 사랑하는 사람도 넓고 깊을 테니, 그런 2030년을 내심 기대해보는 것도 너무 외람되지는 을 것이다.


쓰고 나서 조금 움찔했다. ‘2030’이라니. 이런 희한한 숫자의 연도가 과연 우리에게 도래할 것인가. 2020도 아직 믿기지 않는데. 내가 꼬마였을 때, 나의 볼을 꼬집으며 놀아주던 친척 언니가 문득 자신과 나의 나이 차를 헤아리다가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었다. “세상에. 1983년에 태어난 사람이 있단 말이야?” 어른들과 웬만한 의사소통이 다 되던 때였는데 그 말만큼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서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머지않아(?) 물론 알게 됐다.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제 나이도 나이지만, ‘연도’를 이해하는 감각이 종종 어리둥절해진다는 것을.


넓고 깊은 이치에게 ‘나이 에피소드’를 듣는 것은 즐겁다. 얼마 전에는 애인이 전화를 걸어 “뭐해?”라고 묻길래 이치가 대답했다고 한다.

“인터넷.”

이치 애인은 즉시 ‘빵 터졌다.’

“혹시 이치 어머님이세요?”

이치는 ‘인터넷을 한다’는 게 왜 이상한지 몰랐다(듣는 나도 물론 몰랐다). 이치 애인은 이어서 말했다.

“넷플릭스를 본다거나 인스타를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인터넷’을 한다고?”


그 지점에서 무슨 말인지 ‘약간’ 감이 왔다. ‘우리 세대’에게는 인터넷과 인터넷이 아닌 것이 분리되던 시절이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익스플로러를 열어, 인터넷을 ‘하던’ 시절.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메일함을 먼저 확인하고, 뉴스 좀 보다가, 가입한 카페에 들어가 글을 읽은 뒤 미니홈피를 꾸미는. 그런 게 ‘인터넷을 하는’ 것이었다. 컴퓨터(데스크톱)를 끄면 이 모든 인터넷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이치 애인이 살아온 세계는 인터넷과 인터넷이 아닌 것의 분리가 어렵다. ‘컴퓨터=인터넷’이 아닌 것이다. ‘지금 인터넷을 하고 있다’는 말은, 뭐랄까, ‘나는 지금 두꺼비집을 통해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던 것 같다. 그 지점에 도달해서야 이치와 나는 함께 폭소할 수 있었다. 아 우리 약간 늙었구나. 이치 애인은 ‘인터넷 하는’ 이치를 한 뼘 더 사랑하게 됐을 게 분명하다. 사랑은 상대의 ‘웃긴’ 모습에 강화되는 법이니까.


 남편은 나와 함께 대학을 다닌 세대라 우리에겐 이치네 같은 에피소드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대신 어릴  이야기를 하다 보면 ‘, 너도?’ ‘맞아, 나도!’ 하는 지점에서 즐거움이 생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장화이야기다. 그때는 여러 종류의 과자가  상자에 담긴 선물 세트가 인생 제일의 기쁨이었다. 커다란 종이 상자에 온갖 봉지 과자부터 초콜릿, 사탕, 젤리,  종류까지 크기별로 다양하게 들어 있어 골라 먹고 아껴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 선물 세트가 빨간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화에 담겨서 나왔던 거 기억나?”

“알지, 알지. 산타클로스 장화. 진짜 신발 모양이었잖아. 약간 돼지저금통 재질로 만든 것 같은.”

“어, 어. 그래서 내가 그 안에 있던 과자들을 다 꺼내놓고 한쪽 발을 넣어봤어.”

“크크크.”

“약간 작긴 했는데 발가락을 조금 구부리니까 신을 만한 거야.”

“크크크크…”



한쪽 발에 플라스틱 장화를 신고 절뚝절뚝  안을 돌아다니던 과거의 남편에게 ‘장화 과자 세트 하나  생긴 날을 그는 생생히 기억한다. 비로소 양쪽에 짝을 맞춘 그는 장화를 신고 밥을 먹고, 장화를 신고 TV 보고, 장화를 신고 숙제를 했다. 장화를 신었으므로 거실에서 방으로, 방에서 거실로 불필요한 걸음을  걸었다. 어기적어기적 팔을 휘저으며. 미소를 참지 못하며.


그러니까 그게 80년대 후반 이야기. 이치의 애인이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남편과 다투고 세상이 잿빛이 될 때마다 ‘우리’가 여전히 한 배를 탄 사람들인지 확인하기 위해 홀로 꺼내보는 이야기다. 구부러지지도 구겨지지도 않는 빨간 장화를 신고 로봇처럼 움직이는 어린 소년을 떠올릴 때 마음 한구석이 탁, 초를 켠 듯 환해지면, 그래서 내가 웃어버리면,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고 믿게 된다. 빨간 장화 이야기를 듣기 전으로 나는 돌아갈 수 없다고 믿게 된다.


인터넷 한다 말로 웃어버리는 사랑과 ‘빨간  장화 기억으로 웃어버리는 사랑. 내가 사는 세계에, 웃어버림으로써 진행되는  종류의 사랑이 있다. 둘에게 다가올 ‘인터넷속편과 ‘장화속편들을 상상하면 나는 그게 무엇일지도 모른  그저  웃어버리게 된다. 웃어버리는 순간들이 돌다리처럼 연결된다면, 2030년이라는 어리둥절한 미래 또한 우리들이 나란히 감당할  있을 거라고도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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