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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하 멈추기

오늘도 무엇 하나를 완료한 나에게 칭찬샤워를!

#자기비하 멈추기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받다가, 한동안은 못 받다가 했다. 다행히도 상담가의 좋은 기질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친구 덕분에, 그 친구의 지지와 응원과 격려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대학시절부터 상담을 배워보라고 권했었고, 지금은 그녀가 다양한 상담 이론과 기술들을 배워서 정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상담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직장인일 때도 힘든 일이 많았지만, 퇴사 이후 처음부터 모든 것을 나 혼자 해야하는 프리랜서로 살아오면서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상담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내 말에 공감해주면 공감해주는대로 짜증이 나기도 했고, 가르치려고 하는 상황이면 그것대로 짜증이 났다. 내 상황과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을 때, 동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참 까탈스러운 나라서, 아주 오랫동안 상담 유목민으로 살았다. 그러다 작년에 블로그 체험단으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다. 처음에는 그냥 1번 재미삼아 상담을 다시 받아보자라는 생각으로 갔었다. 줌으로 하는 상담이고, 나도 직업이 커리어컨설턴트이니만큼 왠만해선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이지 실력자 상담가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상담가 선생님은 어쩌다 내 생각과 내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셔도 짜증이 나거나 싫지가 않았다. 그만큼 깊은 공감을 해주심에 감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내가 잘 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해주실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항상 부족하다고 여긴다. 강사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유튜브 댓글에는 나를 찐 롤모델로 삼고 싶다는 분들도 계신다. 겉으로 봤을 때는 하는 일도 많고, 곧잘 해내고, 해온 것들이나 커리어적인 이력, 경력들이 괜찮다보니까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내 자신을 비하한 적이 참 많다. 내 머릿 속에 항상 드는 생각은 ‘난 븅신이야’ 였다. 고등학교 때 수시로 인서울 대학을 조기입학했다. 고등학교 2일, 대학교 3일을 동시에 다녔다. 당시 학문적 글쓰기라는 교양과목을 대학생 언니오빠들이랑 같이 수강했다.


사람들이 내가 조기 입학한 고등학생이라는 걸 잘 몰라서, 대학생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학문적 글쓰기라는 교양 수업에서 A+을 받았다. 언어교육원에 가서 토익을 공부하기도 했다.


처음에 인서울 그것도 2호선 라인의 대학을 붙었을 때, 그 기쁨은 3일 정도 갔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아쉬웠다. SKY를 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연대를 써볼걸. 원서비 8만원이 아까워 못 쓴 것이 안타까웠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 기쁨도 한 3일 갔었다. 대기업을 갔어야했다며 대기업에 못 들어간 내 자신을 원망했다. 이베이코리아를 갔어야해. 이 생각이 컸다. 아니면 홈쇼핑이나 백화점을 갔어야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항상 스스로를 븅신이라고 생각하다보니까, 내가 있는 집단도 좋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이 곳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존감이 낮다 보니까, 고작 나 정도가 합격하는 이 학교도 좋은 학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3, 4학년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아직 이 학교를 다니고 있을까? 왜 반수나 재수나 편입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회사에 입사하고서도 이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나보다 좋은 학교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바로 옆자리 오빠가 서울대학교를 나온 오빠였는데, 왜 아직 우리 회사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에, 내가 많은 책을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나는 내 스스로 난독증이라고 표현할만큼 책을 많이 못 읽었다. 활자중독이라고 표현할만큼 이 세상의 모든 텍스트들을 쉴틈없이 읽어대곤 하지만, 생각보다 한 책을 끝까지 끝낸 적은 많이 없었다. 책 1권을 가지고 몇 달씩 읽거나, 앞부분만 읽고 흥미가 떨어져 다른 책으로 넘어간 적이 대부분이라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진 못 했다.


하지만 7~8살 정도까지만 해도 많은 책을 읽었었다. 자기 전에 매일 위인전을 읽었었다. 8살 때 부모님의 이혼 이후, 아빠가 안 계시니 엄마는 바쁘게 일을 하실 수 밖에 없었고 외동인 나는 집에서 오랫동안 혼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다보니 무섭기도 했고, 집에서 가만히 고요히 책을 읽는 활동을 하는 것이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 무서웠다. 특히 밤에 혼자 책을 읽는 것은 더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때부터 TV를 틀어놓고 컴퓨터를 했다. 신화 덕질을 하거나 게임을 했다. 공부하기에도 조용한 환경에서 묵묵히 하기에는 귀신나올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렇다보니까 학업환경도 독서도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활동들이고, 기본적으로 조용한 상태에서 공부에 집중하거나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인데 조용한 상태는 나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이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집은 혼자, 외로움,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움, 위험한 동네에 살아 두려움, 강도가 무서움, 치한이 무서움, TV를 틀어놔야함 이런 생각들로 나에게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나는 집이라는 공간의 우선순위를 완전 뒤로 미뤄놓았다. 그래서 고시원에 살아도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다. 어차피 나는 계속 밖으로 나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게 더 안전하게 느껴지고 편하니까. 집에 혼자 있는 건 무서워서 잠만 잘거니까.


직장인이 되고 집을 원룸, 오피스텔로 넓혔다. 프리랜서, 사업가가 되고 나서는 아파트 월세, 빌라 전세로 넓혀갔다. 대학생 때도 내 달력에는 30일 중 28일이 약속이었다. 술도 못 마시면서 사람들 만나는 약속으로 가득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강연, 강연 뒷풀이, 독서모임, 강의 듣기, 강사/저자분들과의 친목모임, 크리에이터분들과의 모임 뭔가 계속 이런 식으로 사람 만나는 일들로 캘린더가 가득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내가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한 선생님의 질문이 있기 전까지는. 내가 강사로서 큰 무대에 설 일들이 생기니, 퍼스널 스타일리스트 선생님께 이미지 코칭과 퍼스널 쇼핑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물어보셨다. “규림씨 혹시 집에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 하나요?”


처음에는 아니라고 손사래쳤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랬다.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매우 어색하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집에서 가만히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사람을 만나러 다녔다.


친구들은 대학시절 내가 시험 공부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곤 했다. “야 조규림 너 진짜 공부 왜 이렇게 안 해?” 계속 움직이고 산만하고 끊임없이 딴 짓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했다. 진득하니 앉아서 대학교재를 파야하는 공부를 드럽게도 안 하고, 계속 끊임없이 산만한 내 모습을 보니 나 조차도 내가 성인 ADHD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스러웠다.


아직도 그렇다. 내가 몰입하는 순간은 글을 쓸 때, 강의/강연할 때, 컨설팅할 때, 사업할 때. 이 정도다. 해야할 일들을 해야할 때는 몰입을 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공부할 때, 책 읽을 때 이럴 때는 몰입이 매우 어렵다.


몰입이 어렵다보니 완결이 어렵고, 완결이 어렵다보니 내가 한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든 적이 많다. 그래서 그것은 또 낮은 자존감으로 연결이 되는 악순환이었다. 그러면서 이제 또 비하 시작. 나는 븅신이다. 나는 책 1권도 제대로 독파하지 못 하는 븅신이다. 이런 생각들.


이제는 완벽주의 대신 완결을 하고 싶다. 완료를 하고 싶다. 그래도 오늘은 이 글 1편을 완결했고, 완료했다. 그런 내 자신에게 이제는 븅신이 아니라, 잘 하고 있다고 이 정도면 열심히 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인정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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