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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르바이트 이야기

세탁소 전단지 알바 편




#나의 아르바이트 이야기 (세탁소 전단지 알바 편)




 초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동네 세탁소에서 하는 전단지 아르바이트였다. 세탁소 전단지를 들고, 아파트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층에 내려서 문 앞마다 전단지를 붙이고 내려오는 아르바이트였다. 하루에 아파트 몇 동을 붙이고 내려오는 일이었다. 우선 아파트에 가기 전에, 전단지 뭉치를 한 쪽에 두고 테이블 모서리에 스카치테이프를 뜯어서 쫙 붙여놓는다. 그런 다음에 전단지 가장 가운데에 테이프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전단지, 테이프 자리 위에 다시 테이프 하나, 이런 식으로 테이프를 붙인 전단지 뭉탱이를 만들었다. 그걸 들고 아파트 맨 꼭대기층으로 출동하여, 일명 벽타기를 하면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식사시간이 되면 세탁소를 운영하는 주인장 부부분들이 사주시는 돈까스 정식을 먹곤 했다. 돈까스, 쫄면, 김밥이 같이 나오는 세트였는데 열심히 전단지를 붙이고 노동 후에 먹는 돈까스가 그렇게 맛있었다.   




 지금 커리어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나를 보면, 수강생분들은 과거에 내가 전단지 아르바이트부터 하면서 차근차근 올라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워한다. 지금은 크로마키 배경에 앉아, 커리어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전문가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맨 꼭대기층에서 벽타기를 하면서 전단지를 붙였던 나, 세탁소에서 전단지 하나+테이프 하나 조합으로 전단지 뭉탱이를 만드는 나, 전단지를 붙이는 노동 후에 세탁소 주인부부가 사주시는 돈까스 쫄면 김밥 정식을 먹었던 나는 나만 아는 나의 모습이다.




 가끔씩 우리 수강생분들이 나에게 그렇게 물어본다. “선생님도 그런 적이 있으셨어요?” 당연하다. 나이가 어릴 수록 사회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하는 거다. 그게 뭐가 되었든 말이다. 그 와중에 전단지로 하는 아르바이트도 짤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전단지 뭉탱이를 붙이고 내려오는 게 귀찮아서 몰래 버리는 친구들이었다. 한 마디로 땡보다. 사장님이 보고 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단지 뭉탱이를 매일 몰래 버리고 아르바이트비를 받았던 것이다. 사장님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지만, 더 깊게 생각해본다면 자기 자신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남을 기만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가장 안 좋은 것은 자기 자신에게 영향이 간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선택의 기준이 하나 있다. 내가 어떤 것을 했을 때, 훗날 내가 나의 이 때를 되돌아봤을 때 검은색이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 일을 하지 않는다. 내가 내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일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있거나, 만약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했을 때 세상이 정말 안 좋아진다거나 그러면 나는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이 전단지 뭉태기를 몰래 버릴 때, 나라고 왜 그런 유혹이 들지 않겠는가? 그냥 에라 모르겠다~ 이러면서 전단지를 다 버리고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돈까스 정식을 사주고 함께 일했던 주인장 부부의 얼굴도 지나갈 것이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 할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사실 상상도 못 할 일이기도 하다. 땡보를 치는 건데, 나는 엄청난 성과를 내는 사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 인생에 땡보는 없다는 게 내 신조다. 그냥 묵묵히 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다. 사실 나같은 성향은 전단지를 버릴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잠깐 미쳐가지고 ‘아 힘들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버리고 훨훨 전단지로부터의 자유인이 되고 싶다 ㅠ!’라는 생각이 한 2~3초 지나갈 지라도. 보통 다시 ‘어휴 미쳤어.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냥 닥치고 열심히 빨리 뿌리고 가자.’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전단지를 빨리 뿌리고 온 이들에게 주어지는 건, 주인장 부부와 함께 먹는 꿀맛의 돈까스 정식이다. 그리고 한 번은 주인장 부부분들이 아파트에 불시에 검침(?)을 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이에게 주어진 아파트 동수에서 콜이 안 와서일까? 꼬리가 긴 것은 밟히니까. 가보니까 전단지가 붙어있지 않은 것이다. 땡보를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 체력도 약해서 힘들고, 속도가 느리고 부진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묵묵히 해내고 온 이들에게는 달콤한 보상과 열매가 있다. 돈까스 정식도 있고, 아르바이트비도 받고, 그 돈으로 좋아하는 가수 브로마이드도 살 수 있고, 검은 봉다리에 만화책을 잔뜩 빌려와서 주말에 따뜻한 보일러 방바닥에서 배깔고 누워 만화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아르바이트비로 맛있는 떡볶이, 피자, 치킨, 문구사에서 파는 쫀드기와 라면땅, 밭두렁, 나나콘, 꾀돌이, 맥주사탕, 폴라포, 쮸쮸바 등을 사먹을 수 있는 삶의 소소한 기쁨들이 있다.




 작은 아르바이트를 하나 한 것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삶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남을 속이고 빠르게 가는 길은 절대 없다는 것을. 아무리 약하고 느리고 부진하기까지 해도, 끝까지 뭔가를 해낸 사람에게는 삶의 소소하고도 충만한 기쁨의 열매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이는 학원에 가서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삶의 진리였다.




- written by. 조규림 작가




인스타그램 @jogyurimn


유튜브 조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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