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와 노견] 1부 5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놈은 사라졌고 창고는 텅 비었다. 회사에 와서 현장을 확인하고 어제 접수했던 유기견 신고를 취소했다. 놈이 빠져나간 철문 틈에 놈의 죽은 털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카페 사장은 발을 동동거리며 회사 주변을 더 찾아보자고 했지만 나는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어제까지 계단 하나를 겨우 내려오던 놈이 한 뼘도 안 되는 공간을 억지로 비집고 나갔다. 그 지경인 몸을 움직일 정도라면...... 혹시 동네 어딘가에 찾아갈 집(주인)이 있었던 걸까. 주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주인이 있을 리 없다는 확신에 찔려서 곧장 터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를 살폈다. 치밀한 조사가 아니라 설렁설렁한 드라이브에 가까웠다. 나타날 거면 나타나고 아니면 말라는 심정으로. 맥이 풀렸다. 절박함은 없었고 시간에 의지했다. 내가 놈을 선택했듯 놈도 나를 택할 시간의 여지를 주고 싶었다.
우유(우리집 노견)와 목장에 갔다. 계획은 무너지고 의지는 너덜댔다. 목장으로 향하는 길에 순간 바다 위로 무언가 떠올랐다. 잠시 의아했지만 잠수복을 입은 사람이겠지, 하고 지나쳤다. 한 시간의 목장 산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메시지가 왔다. 계획대로라면 오늘 동물보호센터에 함께 가주기로 했던 선언니였다. "어디야? 우리 지금 네 집 앞에서 돌고래 보고 있어." 바로 선언니와 필오빠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한 시간 전에 정확히 내가 지나친 곳이었다. 정말 돌고래다! 뭍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고래 두 마리가 유영하고 있다.
바닷가 앞에 살면서도 그동안 돌고래를 지척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돌고래를 보는 것은 오랜 나의 소망. 그런데 오늘에야 알았다.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아주 길었던 하루...... 꿈속에 나왔던 영화배우와, 창고에서 사라진 놈과, 돌고래 두 마리와, 그리고 여기 돌고래 장님(나)을 눈뜨게 해준 선언니까지 모두가 귀인이었다. 오늘 만난 돌고래처럼 놈이 언제 와도 놓치지 말자고 맹세했다. 놈은 사라졌지만 바다에는 천진한 돌고래 두 마리가 나를 대신해서 누룽지, 카레, 망고, 자몽, 주스, 생강...... 더 이상 놈을 '놈', 이라고 부르지 않을 노란색 이름들을 바다 위로 길어 올리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회사에 놈이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는 긴급 속보에도 덤덤히 눈을 뜬다.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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