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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n 25. 2023

삼달리별이 알알이 내려와

[들개와 노견] 1부 7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남원포구에서 루바를 만났다. 어제 동물보호센터에 함께 가기로 했던 선언니가 근무 중이라서 오늘 휴무인 애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틈틈이 상황을 물어오던 선언니도 루바와 같이 있다고 하니 안심을 한다. 포획팀이 작업을 마무리하고 하루 동안 포획한 유기견(묘)들을 일제히 동물보호센터에 인계하는 시간이 오후 4시 반에서 5시 사이라고 했다.



오후 4시 20분경 제주시 용강동에 소재한 동물보호센터에 거의 다다랐다. 굽이굽이 감도는 길 탓에 강원도 오지의 산등을 넘는 기분이다. '이렇게 외진 곳에 있다니......' 입이 벌어진다. 이때 뒤로 익숙한 차량이 보인다. 천막을 씌운 1톤 트럭이라면, 바로 놈이 타고 있는 차다! 차를 길가에 정차하고 트럭을 앞세운다. 트럭을 뒤따라가는 길, 센터와 가까워질수록 개들의 비명이 산속에 퍼진다. 절박한 합창...... 지금쯤 트럭 안에 갇힌 놈도 이 소리에 잔뜩 겁을 먹었겠지.



놈이 타고 있는 트럭이다!






동물보호센터에 들어서니 곧장 사무실 여직원이 방문 목적을 묻는다. 그녀에게 포획 지역과 사연을 말하자 검토한 자료를 통해 내가 최초 신고자이자 입양 희망자인 것을 알아본다. 그리고 15일의 임시보호(유기동물 공고) 기간을 거쳐야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다며 '유기동물 임시보호 신청서'를 내게 건넨다.



눈앞에 오늘 포획한 동물들이 한 마리씩 트럭에서 내린다. 순간 개들의 자지러지는 괴성에 어질해진 루바가 센터 밖으로 나가려다가 이내 자리를 지킨다. 놈처럼 애초부터 떠돌았거나 주인에게 버려진 개(고양이)들이 누군가의 신고로 붙잡혀 온 곳이다. 주인이 찾아오거나 입양이 성사되면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고, 아니면 결국 안락사를 당한다. 당장 스스로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르니 오직 두려운 고함인 것이다.



하얀색 작업복을 입은 수의사가 놈을 안고 나타난다. 놈에게 다가가니 놈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수의사의 양손에 들린 채로 꼼짝 않고 눈은 허공에 박혔다. 놈이 얼마큼 긴장했는지 백배 전해진다. ‘양 앞발의 파행. 교상 흔적이 있음. 확연한 골절 소견은 없음’. 임시보호 신청서에 적힌 놈의 건강 상태다. 엑스레이 상으로 다리 골절은 아니라고 했다. 심장사상충, 파보바이러스 등 기본 질병 검사 결과도 다행히 모두 음성, 덕분에 가계가 무너지는 것은 막았다.



수의사는 놈의 이마와 다리 곳곳에 파인 자국을 가리키며 교상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약해 빠진 놈이라 동네 개들에게 허구한 날 쥐어 터지고 다녔을 거라는 거다. 이의 마모 상태 등 건강상 추정 나이는 3세, 몸무게는 13킬로그램. 근래 사고를 당하고 먹지 못하면서 폭삭 늙어버린 것이다. 이어 센터에서는 종합백신과 광견병 주사를 놓아주었다. 수의사는 당장의 병원 치료보다 집으로 데려가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체력을 키울 것을 권했다. 임시보호 신청서에 수의사가 서명을 하고 그 신청서가 내게 오면서 모든 절차가 끝났다. 앞으로 15일 동안 놈에게 주인이나 입양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놈을 다시 센터에 데리고 와서 입양 절차를 밟을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 루바와 난상을 벌인다. "이제 그만 좀 싸돌아다니고 고정하시라고 ‘픽스(fix)’는 어때? 아니면 털색이 노라니까 누룽지, 망고, 자몽, 주스, 생강은?" 나는 몹시 진지한데 후보를 듣고 웃기만 하는 루바. 꼬박 반나절을 차에서 사투 중인 놈이 뒷좌석 케이지에서 구겨진 몸을 일으킨다.



그런데 젤리처럼 덩어리져서 뚝뚝 떨어지는 놈의 침줄기...... 생애 첫 드라이브가 침범벅이 된 멀미라니. 고민을 끝내야만 이름을 부르며 놈을 달랠 수 있다. 순간 가장 '명랑한' 노란색을 떠올렸다. 그래, 망고로 하자. 넌 오늘부터 망고다! 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이는 망고. "집에 가자, 망고야! 조금만 참아." 루바가 속력을 올린다.



생애 첫 드라이브가 죽을 맛인 망고






집 마당에 케이지를 놓고 망고를 밖으로 유인한다. 스르륵 액체처럼 쏟아져 나오는 망고의 몸은 완전히 녹초다. 오늘의 마지막 미션, 목걸이에 줄을 연결해야만 한다. 아침에 카페 사장이 철물점에서 급히 사온 쇠줄을 꺼내 들자 찰랑찰랑 쇳소리가 난다. 거친 소리에 기진맥진했던 망고가 다시 긴장의 끈을 채우고 경계 태세를 취한다.



목걸이를 움켜쥔 손에 줄을 갖다 대는 루바, 터질 듯한 긴장감이 돈다. 긴장은 의지와 관계없는 일을 일으킨다. 누군가가 다치고 이 아이와의 미래가 첫날부터 망가진다면...... 갑자기 앞날이 막막하다. 1년을 알고 지낸 녀석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는 돌처럼 서 있다. 이토록 모자란 내가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게다가 루바는 망고와 알고 지낸 과거가 없고, 주체적으로 개를 길러본 역사도 없다. 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상황에 엮인 저 남자가 갑자기 애처롭다. 그것도 잠시, 역시 나의 루바가 해낸다! 드디어 줄이 채워지고 망고는 체념한 듯 마당에 엎어진다.



둘의 안도하는 숨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인기척을 느낀 우유가 집안에서 짖어댄다. 루바가 우유를 안고 밖으로 나와서 망고 앞에 우유를 세운다. 루바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의식의 흐름을 놓아버린 우유, 형제의 첫 대면식이다. "우유야 인사해라, 망고라고 네 동생이다! 망고도 인사해라, 네 형이다!"



내겐 너무 큰 동생입니다,라는 눈빛으로 네 발을 동시에 버둥대는 우유. "망고야. 형 먹는 거 아니다~", 루바의 경고가 우유를 진정시킨 걸까, 루바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우유가 언제 떨었냐는 듯 망고에게 왕왕하며 방정을 떤다. 그 모습에 헛웃음이 터져 버린 우리 두 사람. 긴 하루가 막바지에 이른다.



내겐 너무 큰 동생, 망고
형제의 대면식






          저녁 7시, 선언니네 창고에 집합했다. 지금까지 나의 고민과 결심에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테이블이 무너질 것처럼 한 상 가득하다. 선언니가 목포에서 공수한 낙지 여섯 마리를 끓는 물에 한꺼번에 빠뜨린다. 나와 루바는 주재료가 풍성한 연포탕에 넋을 놓는데. 이때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개집 구했어! 내일 아저씨 트럭에 실어서 마당에 놓을게." 왜 이러세요들 정말...... 두루두루 울컥하는 밤이다. 그사이 폴라로이드와 필름카메라를 꺼내어 사진 이벤트까지 해주시는 필오빠. 허름한 창고 안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주점으로 변신한다. 나 혼자였던 섬이 어느 날 사람들로 복닥거린다. 하나같이 용감한 나의 사람들 덕에 순간 속이 뜨거워지고 힘이 팔딱 솟는다. "분발하자!" 취,기 어린 파이팅도 외쳐본다.



선언니와 필오빠, 그리고 나의 루바



망고와의 첫날. 소란한 하루의 끝에 평화로운 밤이 와주었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다. 삶은 매 순간 모두에게, 모든 것이, 처음이다. 나란 인간은 언제나 허둥대고 실수가 많다. 그럼에도...... 너와 가족이 되어보려 해,라며 꼬인 혀로 망고에게 속삭인다. 미동도 없는 녀석, 오기가 생긴다. 잔디밭에 누운 녀석의 옆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 밤...... 녀석의 귀를 계속 간지러 주었다. "시커먼 밤을 수없이 혼자 보냈겠지. 오늘 밤은 삼달리의 별이 알알이 내려와 잠든 너를 덮어줄 거야. 굿 나잇, 망고!" 






          다음 날. 긴급 속보 없는 조용한 아침이 오...... 올 줄 알았다. 잔디밭에 뎅그러니 널브러진 개줄, 그 끝에 있어야 할 개가 없다. 망고가 사라졌다! (환장하겠다~)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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