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해야 Johaeya Jun 26. 2023

산책으로 너를 가두다니

[들개와 노견] 1부 8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동물보호센터에서 데려온 지 하루 만에 망고를 잃다. 마당에 녀석은 없고 주인 잃은 개줄만 남았다. 지난밤 풍악을 너무 일찍 울렸나. 숙취가 채 가시기도 전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녀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녀석이 돌아올까 아니면 내가 녀석을 찾을 수 있을까, 임시보호 기간 중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 난 처벌을 받게 되는 건가, 수갑을 차고 제주교도소에 수감될지도 몰라, 그럼 우유는 어떡하지, 늘그막에 하루 사이 동생과 엄마를 잃은 슬픈 팔자의 개가 되겠지...... 눈앞이 깜깜하다. 녀석의 흔적을 살피며 마당을 돌아다니던 순간! 마당 끄트머리에 누런 것이 보인다.



야자수에 반만 가려진 녀석의 엉덩이다! 식겁이 이런 것이구나, 최대한 아무 일도 없는 듯 집안에 있는 루바를 부른다. 조용히 그러나 절박한 톤으로. “망고가 줄을 풀었어.” 집밖으로 나갔다는 소리로 알고 마당으로 나온 루바가 잠이 덜 깨서 비틀거린다. 그러다 한곳에 머문 루바의 시선, 역시 망고의 엉덩이가 맞다! 야자수를 향해 녀석을 불러본다. 그러자 녀석이 몸을 일으키며 잔디밭을 어슬렁대기 시작한다.



최대한 마당 안쪽으로 녀석을 몬다. 사람 속도 모르고 한가롭게 기지개까지 켜는 야속한 녀석. 이때다, 루바가 무심한 척 다가가서 망고의 목덜미에 줄을 채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줄까지 풀고 녀석은 왜 달아나지 않은 걸까, 어제까지 기겁하던 줄을 들이대는데 오늘은 왜 얌전한 거야.......’ 아침 댓바람부터 둘이서 한 바가지로 쏟아낸 땀이 겸연쩍게 식는다.



목줄은 풀고 가출은 안 하신 망고






          특명, 망고를 포위하라! 녀석에게 처음인 것들을 익숙하게 만들자. 생애 첫 드라이브, 생애 첫 목줄, 생애 첫 집...... 그중에 가장 낯설 생애 첫 '가족'을 질리도록 들이대자. 마당에 텐트를 치고 종일 망고를 맴돈다. 우유는 초소병처럼 동생을 감싸고, 나와 루바는 텐트에 드러누워 휴일 아침을 다시 세팅한다.



어리둥절한 망고가 안정을 찾는 기미를 보이자 루바가 텐트 밖으로 나가 망고에게 생애 첫 애견 간식을 친히 올린다.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가는 제 간식을 보고 텐트로 복귀한 우유는 울상인데. “너 좀 먹는구나?" 당황한 나와 루바. ‘형에게 감사하고, 살만 쪄다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루바가 망고의 밥그릇을 각종 간식 토핑으로 장식한다. 일명 무지개 밥상에 망고가 즉시 달려들어 얼굴을 파묻는다.



특명, 망고를 포위하라!






제집으로 떠나는 루바가 신신당부를 한다. “우유야, 망고 잘 지켜. 망고는, 우유 먹지 말고.” 알겠다고 안심을 시키는데도 발길이 무거운 루바. “망고 절대 잃어버리지 마아~!” 파도 소리보다 더 큰 루바의 목소리가 온 동네에 출렁인다.



루바가 떠나고 잠시 조용했던 마당이 들썩인다. 망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제자리 뛰기를 하며 갖은소리로 짖어대는 망고. 이것은 바로...... 똥(이 마려운) 신호다! 밖에서 볼일을 해결하던 녀석이니 급하면 마당에서 어련히 하겠지 했는데, 그래서 치울 각오도 단단히 마쳤는데, 그렇다면...... 나 지금 산책 가야 하? 침착하게 나에게 물어본다. 혼자서 첫 산책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화장실로 돌진하는 일촉즉발의 배탈 환자처럼 녀석의 비명이 갈수록 처절하다.



일단 나무에 묶인 줄을 풀고 녀석을 밖으로 이끈다. 그 이후의 상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소변을 일분 동안 두 차례 보는 개를 처음 영접했으며, 우유 것의 열 배가 넘는 양의 대변을 세 차례 보았고, 순간 최고 속도 40킬로(기분상이다)로 동네 여기저기를 녀석에게 질질 끌려다녔다.



기분상 순간 최고 속도 40킬로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앞 도로였다. 장갑을 끼지 않은 탓에 쇠목줄을 만진 손바닥에서 불이 다. 맨손으로 부채질을 하느라 내 손바닥은 허공에서 춤을 추는데 녀석은 더 뛰고 싶은 건지 제멋대로 방향을 튼다. 더이상 녀석이 가고 싶은 대로 끌려다닐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줄을 잡아당기며 집으로 가자고 하니 그대로 주저앉아버리는 녀석, 불편한 다리로 쏘다녔으니 지칠 만도 하겠지. 그동안 가고 싶은 곳을 발길 닿는 대로 누볐을 녀석이다. 이 산책이 녀석에게는 자유가 아니라 구속이겠구나 싶다. 내가 산책으로 너를 가두다니...... 마음이 헛헛하다.



망고를 가두어 버린 첫 산책






날이 저물자 서늘한 밤바람이 분다.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한자리에 오들오들 떨고 서 있다가 한참 만에 녀석에게 말했다. “망고야. 엄마 추워.” 그러자 거짓말처럼 녀석이 집을 향해 움직였다.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작가의 새 글은 <구독&좋아요&댓글> '3종 세트'로 태어납니다. :)

이전 07화 삼달리별이 알알이 내려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