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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n 27. 2023

펑펑 울다가 너의 눈이 되었을 때

[들개와 노견] 1부 9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펑펑 울다


          어떻게 마친 산책인데 망고를 나무에 묶자마자 이번에는 집주인 트럭이 후진으로 들어온다. 오늘 갖다 주기로 한 망고 집이 도착한 것이다!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 것인가. 하지만 예상보다 듬직한 외관을 보니 갑자기 흥이 난다. 자체 어닝(차양)도 장착되어 있다며 수동 조작으로 몸소 시범을 보이는 주인 아저씨. 망고를 키우는 것을 허락한 것도 모자라서 제 차에 실어 집까지 구해주시니 주인 부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데 트럭 짐칸에서 혼자 끙끙대며 개집을 내리는 아저씨 옆에서 주인 아줌마의 훈수가 시작된다. 이렇게 들어라, 저렇게 내려라~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통에 중간에서 나는 안절부절못하는데. 때마침 퇴근길에 들러준 선언니네, 어린것(나)이 어째 잘하고 있나 순찰 차 들른 것이다.



필오빠는 주인아저씨를 도와서 망고 집을 옮기고, 선언니는 오늘 아침 새로 채운 망고의 목줄을 봐준다. 루바처럼 선언니와 필오빠 역시 망고와는 초면이다. 길개와 길고양이 케어 전문가인 선언니(회사에 떠도는 아이들을 치료하고 먹여살린다)는 역시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바로 망고의 목줄을 만지작댄다. 대체 녀석은 얼마나 마른 걸까...... 아직도 목줄이 헐거운 것 같다며 더 작은 것으로 가져오라는 선언니(다행히 전날 철물점에서 크기별로 구입해 왔다). 기존 목줄이 채워진 상태에서 새것을 먼저 채울까 고민하는 사이 선언니가 거침없이 기존의 목줄을 풀고 새것을 든다. 순간, 뒷걸음치는 녀석. 녀석이 멀어지고 나도 한 걸음 물러난다.



아...... 더 이상의 이별은 없을 줄 알았는데. 개집을 옮기던 필오빠가 “주인이 되어서 네가 도망가면 어쩌냐"라며 나를 나무란다. '그게 아닌데...... 무작정 다가가면 달아나니까 일 보 물러난 거야.' 억울해서 죽을 것 같지만 상황 수습이 우선이다. 건물 뒤쪽으로 달아나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사방이 다 뚫렸다. 이대로 녀석을 놓치면 끝장이다.  


 

땅거미가 내리고 다시 시작되는 하루



기싸움 끝에 선언니가 어렵게 목줄을 채운다. 앞마당 쪽으로 이끌자 또 얼어버리는 망고. 제 딴에도 이제 성이 나는지 입질을 한다. 사람을 물어서 사고가 날까 봐 긴장 백배인 채로 나는 한낱 돌이 되어 또 생각한다. 낯선 사람들이 있는 한 녀석을 움직이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나와 녀석 둘이서 해결할 일이다. 필오빠와 선언니에게 돌아가달라고 부탁한다. 남은 일은 내가 해결하겠다고.






두 사람이 돌아가고 나는 펑펑 울었다. 혼자서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친 내가 한심하고, 망고 일이 주인집과 선언니네까지 소란으로 번진 것 같아서 속상했다. 그리고 선언니 덕에 깨친 사실 하나. 형편없는 행색을 한 망고에게 주저 없이 다가가 때묻은 맨살을 만지던 선언니의 모습에 내가 녀석을 무서워하기보다 더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이라는 게 이렇게 형편이 없다. 건물 뒤에서 1시간째 주저앉은 망고를 본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춥고 허기진 건 녀석도 마찬가지. 나는 흙바닥에 엎어진 녀석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빗물에 젖은 채로 오들오들 떤다. '내가 주인이다. 무서워도 더러워도, 하자.' 뒤에서 망고의 허리를 힘차게 안는다.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망고가 마침내 앞마당에 착지한다!



남은 간식을 몽땅 털어서 차린 밥상을 망고에게 올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한 달이 지난 것 같은데 이제 밤 9시라니. 망고를 만나고 하루가 큰 원이 된 것 같다. 돌고 돌아도 다시 시작되는 하루. 그때 루바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막고 있던 눈물이 터진다. 잘했다고 말한다. 오늘 하루 무조건 잘했다고 내게 말해준다. 내 편은 숨소리로도 나를 일으킨다.



남은 간식을 몽땅 털어서 차린 밥상



나는 훗날 망고에게 일어날 기적을 믿는다. '사랑받는' 존재의 생은 반드시 격변하여 피와 살과 웃음으로 살아난다. 지난날 버티었던 고된 날들이 평화로운 여생으로 반전하는 녀석의 미래를 꼭 만나고 싶다. 이 아이가 살고자 한 오늘이 켜켜이 쌓여서 마법 같은 생이 되고, 그 생이 가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나는 오늘 하루도 힘겨웠을 망고를 위해 기도한다.



"그럼 오늘 온 집이 미래에는 '망고생가'가 되겠네” 전화 속 루바의 명랑한 목소리에 거룩한 기도가 팡 터진다. 크게 웃느라 흐르는 눈물이 벌어진 입속을 타고 들어간다. "그래, 망고생가(忘苦生家)라고 하자. 잊을 망, 괴로울 고. 이 집은 망고가 지난날의 괴로움을 잊고 새로 태어난 집이야." 후세에 널리 알려질 이 장소를 힘써 보존하겠다고 루바와 약속한다.






          펑펑 울다가 깬 다음날 아침, 망고(귀하신 몸)에게 문안인사를 여쭙고 망고생가 안을 쓸었다. 주변의 잡초를 뽑으니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그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난다. 청소를 끝내고 망고가 바라보는 시선과 똑같아지려고 바닥으로 몸을 한껏 낮추었다.



그날 아침, 펑펑 울다가 의 눈이 되었을 때...... 파도와 야자수와 구름이 잔디 위에서 싱싱하게 빛나고 있었다. 망고의 등에 살짝 내 팔을 둘렀다. "넌 이곳에 갇힌 게 아니야, 나에게 안긴 거지." 망고가 보는 세상이 아름다워서 그만 눈물이 그쳤다.



망고가 보는 세상
미래의 망고생가(忘苦生家)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작가의 새 글은 <구독&좋아요&댓글> '3종 세트'로 태어납니다. :)가 너의 눈이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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