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잠을 자던 우유가 갑자기 침대에서 방방 뛰며 짖는다! 새벽 출근인데 기상 알람을 놓친 줄 알고 깜짝 놀라서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가만, 귀를 기울이니 마당에 있는 망고가 울고 있다. 4일째 밤도 순탄치가 않구나...... 잠옷 바람으로 급히 밖으로 나간다.
현관봉과 부러진 나뭇가지에 줄이 칭칭 감긴 채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망고. 땅에서 높이가 고작 10센티도 안 되는 짧은 가지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다니. 망고가 울면 집안에 있는 우유가 울고, 둘이서 합창을 하니 앞집 개들도 덩달이 난리다. 달 밝은 밤에 그야말로 온 동네 개들의 하울링 쇼다. '이러다 동네에서 쫓겨나겠어......'
우선 망고를 진정시켜야 한다. 밤새 이슬을 맞았는지 녀석의 몸이 축축하다. 줄이 꼬일 것을 예상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한탄하며 부러진 가지가 덜한 쪽으로 죽기 살기로 개집을 옮긴다. 그리고 공구함에서 톱을 꺼낸다. 삭삭, 삭삭, 새벽 4시 반 암흑 속에서 톱질을 하는...... 나의 모습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후로도 망고는 부러진 가지나 대나무 순에 자주 줄이 감겼다. 잘라도, 잘라도 끝나지 않는 분노의 톱질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가지에 칭칭 감긴 망고
망고를 만나고 나의 하루는...... 망고의 울음으로 번진 동네 개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새벽녘에 솟아오른 가지를 자르거나 줄이 꼬이지 않게 주변을 정비하며 아침해를 맞는다. 수도승 저리 가라, 아침형 인간으로 탈바꿈한 나. 우유가 밖으로 나와 용변을 보는 짧은 시간, 저도 데리고 가라며 망고가 고함을 지른다.
아직은 두 마리를 동시에 산책시킬 기술과 능력이 없어서 우유를 집안에 넣고, 망고와 산책을 시작한다. 망고의 뒤편에서 저는 다리를 관찰하며 한 시간가량 질질 끌려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망고를 마당에 묶는다. 기진맥진하여 마당에 널브러져 있으면 이번에는 우유가 집안에서 깽깽거린다. 아침 산책이 모자랐을 우유, 저도 데리고 나가라는 거다. 망고보다 앞서 급한 용변은 해결했으니 산책을 건너뛸까 싶다가도 우유에게 소홀하지 말자고 했던 다짐을 떠올린다. 망고를 데려오자고 결정했을 때 우유에게 주는 사랑을 반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두 배로 늘이자고 스스로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두 마리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산책이 가능할까...... 고민도 잠시, 아침에만 세 번의 산책이 끝나고 출근을 서두른다.
퇴근을 해서 집에 오면 아침 일정을 똑같이 반복한 후에 망고를 살 찌울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하루는 삶은 닭을, 다음날은 북엇국을 번갈아 끓여 먹인다. 그렇게 온몸에 진이 빠져서 나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려다가 숟가락 들 힘조차 없어서 전자레인지에 컵밥을 데운다.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미역국컵밥을 먹으니 구멍이 숭숭 뚫린 몸속이 우선은 메워지는 기분이 든다. 하루에 총 여섯 번의 산책을 하는 동안에 나는 망고의 발 상태가 나아지는 것에 기뻐하고, 목줄을 가슴줄로 교체하자고 계획하며, 들개에게는 부족할 지금의 산책 횟수를 더 늘이자고 의지를 다진다.
삶은 닭과 북엇국
피곤은 눈덩이처럼 뭉쳐져 내 몸을 내리누르고. 나는 과연 이 생명과 바르게 나아가고 있는가,라는 고민으로 인터넷을 뒤지며 도움이 될 만한 영상과 글을 찾아다닌다. 강아지를 입양한 이야기를 기록한 어느 블로그에서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지 마세요. 포기하게 하세요.'라는 글을 발견하고 머리가 꽝, 하고 부서진다. 그래, 나부터 포기하자. 더 이상은 없을 한가한 저녁을 포기하고, 오래 준비한 식사를 포기하자. 자기 계발을 포기하고, 멍 때리는 시간조차 포기하자.
늦은 밤, 1초 만에 잠이 들 것 같은 상태에서 망고의 울부짖음이 또 시작된다. 산책으로 하루하루 가벼워지는 내 몸뚱어리는 그 소리에 자동으로 반응하며 밖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나간다. 길에는 망고와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직 녀석과 나의 몫인 것이다.
해도, 해도 모자란 산책
제집이란 것을 모르고 오늘 새벽에도 밖에서 밤을 새워 온몸이 이슬 범벅인 망고. "포기해! 자유를 버려. 굶주림도 버리고 고독도 버려. 그리고 너도 나를 얻어!" 호되게 외쳐 본다. 나는 전보다 세져야 한다.
다음 날 새벽에도 역시나 우유의 신호를 듣고 깬다. 망고를 구출하라는 건지, 망고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는 건지 우유의 저의는 파악할 수는 없지만 밖으로 나가 보니 이슬에 젖어서 풀밭에 있을 망고가...... 제 집 안에 한 발을 넣고 있다! '집'이란 것을 녀석이 처음 안 것이다. 벽과 천장이 있는, 제 몸을 누일 집에 처음으로 몸을 넣고 있는 그때...... 전날 밤 야단쳤던 마음이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뭉개진다. 그 느낌이 벅차올라서 망고의 이름을 부르며 속으로 긴긴 편지를 썼다.
망고야.
'엄마가 출근할 때 네가 계속 울어서 속상해. 종일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다녔을 네게는 지금의 산책이 턱없이 부족하겠지. 나는 고작 하루 두 번인 너와의 산책으로 살이 빠져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아마도 오름에 오르면 날개 없이도 날아버릴 거야. 참, 근무할 때 프런트 앞 통유리창에 노란색 옷을 입은 고객이 지나가기만 해도 난 아직도 너인 줄 알아, 너는 여기 내 곁에 있는데 말이지. 목줄이라는 거,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거, 집이라는 거 모두 적응하기 힘든 거 알아. 하지만 길에서 맞고 굶으면서 다친 발로 혼자 음식을 구하며 사는 것보다는 낫잖아.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산책이 가능하도록 내가 노력할 테니까 우리 조금만 힘내자. 근무하는 시간에는 제발 잔디밭에 얌전히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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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지난날 네게 먹이려고 샀던 18킬로짜리 사료가 지금은 다리미판 위에 소분되어 올려져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최소한 네가 그 사료를 다 먹어치울 때까지 견딜 거야. 아무 토도 달지 않을 거고...... 금방 지치지 않겠다는 소리야. 그때쯤이면 망고는 헌 털을 벗고 새 옷을 입겠지. 지금보다 멀리 산책을 다녀올 테고, 우유에게도 이빨을 드러내지 않을 거야. 그리고 살이 더 빠져서 뼈다귀가 되어 있을 나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잔근육들이 자라난 기초체력 튼튼한 인간이 될 거고. 그런 꿈같은 날을 기대하면서 살아볼래. 그래서 나는 지난날을 포기하기로 했어. 넌 어때, 망고야? 우리 같이 포기하자. 그리고 서로를 얻자.'
그때 망고가 나머지 앞발을 집안으로 넣었다. 나는 내가 버린 것들로 인해 그렇게 한 발짝씩 녀석을 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