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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May 15. 2020

청소는 가장 효율적인 노동

청소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병적으로 매일 쓸고 닦지는 않는다. 그저 쉬는 날이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날이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청소에 임한다. 물티슈를 꺼내 들어 방바닥을 휘젓고 다닌다. 갑자기 방의 구조를 바꾸며 먼지를 닦아 내기도 하고, 옷가지들을 잘 접어 넣기도 한다.     


내가 청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 대비 아웃풋, 노력에 비려하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요즘 같은 때에 이렇게 효율적인 일이 또 있을까? 닦는 만큼 깨끗해지고 치우는 만큼 깔끔해진다. 내가 한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일, 참으로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되었을 때, ‘내 집’이 생겼다는 착각이 조금 더 나로 하여금 깔끔을 떨게 했다. 하지만 그러한 동기는 금방 소모되기 마련이다. 내가 청소를 정말로 좋아하게 된 이유는 노력이 결과와 비례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노력이 결과에 비례하지 않다는 사실은 아주 유아기부터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행동을 해도 나보다 칭찬받는 형제가 있을 것이고, 반장 선거에 나가서 같은 시간만큼 연설을 하더라도 외모가 눈에 띄거나, 반에 햄버거를 자주 돌리거나, 힘이 센 아이가 뽑히곤 했다. 그렇게 우리의 도처에 노력의 효용이 높지 않은 실례가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깨닫지 못한다.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교과서도 열심히 해서 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분명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모두 투자했는데 그만큼의 결과가 내 것이 되지 않았을 때, 어릴 적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남들 모르게 펑펑 울곤 했다. 어렸고, 처음이었고, 또 나는 자존심도 센 아이였으니 집 밖의 공원에서나 학교 화장실 칸 안에서 곧잘 울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가지고자 했던 목표를 위해 투자했던 시간들이 공중으로 분해되는 그 느낌, 어리숙했던 나는 인정할 수 없었나 보다.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독립을 한 후에는 노력이 사라지는 몇 번의 경험 후였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부모님과 책과 모든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던 그 말은, 판타지구나! 하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리고 나에게 집이 생겼다.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임시 거처는 온전히 나의 공간, 나의 소관이었다. 그리고 청소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물론 앞에도 언급했지만 좋아한다고 뭐 그렇게 매일 쓸고 닦는 것은 아니다. 그저 슬슬 청소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소 들뜬다. 특히 화장실 청소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 솔질 몇 번이면 놀라울 정도로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을 마구 뿌리며 하는 청소이기 때문에, 많은 힘이 들지도 않는다. 같은 이유로 설거지도 즐긴다. 그릇이 하나둘씩 깨끗해질 때마다 드는 쾌감이 있다. 


집안일은 꽤나 성가신 것이다. 특히 자격증을 준비한다거나, 아주 바쁜 일을 담당하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시간이 부족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청소는 꼭 틈틈이 해주어야 한다. 요리는 하지 않고, 정성스러운 밥은 절대 차려먹지 않는 한이 있어도 설거지는 쌓이지 않게 한다. 그것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만 같다. 청소는 투자한 에너지와 시간을 절대 배신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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