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만 남은 4월을 보내며
어느덧 한 달의 마지막 날이다.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단 것을 느낄 때마다 반성을 하게 된다. 나의 행동을 되짚어보고, 나의 게으름을 반성한다. 매번 같은 달의 반복, 매번 같은 반성의 반복이다. 하루의 끝이 그러하듯 달의 끝자락에서도 아쉬움만이 남는다.
과연 만족스러운 마지막이란 것이 있을까? 후련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아쉬움 없이 만족스럽기만 한 그런 끝이 있긴 한 것일까. 돌아보면 좋았다고 퉁치듯 포장하는 후련함이 아니라, 이제 끝을 맞이할 때도 되었다고, 마무리를 잘 해냈다고 생각되는 만족 말이다.
아쉬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던 마지막의 경험, 떠올려보면 몇 번 있는 것도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시원했다. 고등학교 시절이 크게 즐겁지 않았던 터라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뒀을 때도 참으로 후련했다. 돈 때문에 억지로 나가던 일터였으니 아쉬운 마음이라고는 티끌조차 없었다. 그러니 그 마지막에 만족감 또한 없었다. 항상 마이너스였던 생활을 끝맺음으로써 비로소 0이 된 듯했다. 그러니 결국 나는, 만족스러운 마지막을 겪어본 적이 없다.
모든 마지막은 힘이 든다. 처음부터 함께 하지 않았대도, 오랜 시간 함께 한 것이 아니라 해도, 심지어 내 것이 아니라 해도, 힘이 든다. 남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 이별하는 모습,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이 그에 해당된다. 그러니 나의 마지막, 내가 가진 것을 놓아주는 일은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이다. 좋았다고 여긴 단 한 가지만 있다 하더라도, 그 한 가지가 아쉬워 모든 것을 놓기 어렵다.
또한 이별한 것과 다시 만날 확률은 0%에 가깝다. 특히 사람과의 마지막은 더욱. 한 사람과의 마지막을 겪고 나면 누구든 변하기 마련이다. 이별을 통한 성장을 할 수도 있고, 깨달음을 얻고 성격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 테니. 때문에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만나더라도 조금씩 달라져버린 나와 상대는 또 다른,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것이다. 변한 모습으로 다시 만난 상대와는, 예전과 같은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시간과의 마지막은 어떤가. 주위에서 좋을 때라는 그 청춘의 시간. 그 시간을 보내려니, 마치 1분 1초도 헛되게 보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그 생각이 시간을 향한 집착을 만든다. 하루의 끝에서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가?' 하고 반성을 거듭한다. 어떻게든 나의 행동을 한 분침마다 끼워 넣으려 한다. 시계 속의 한 칸 한 칸을 쓸고 닦으려 애쓴다. 하지만 나의 이상과 현실은 크게 다르다.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고, 여유롭게 지내며 까무룩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매일은 항상 아쉽기만 하다. 그 시간들 모두 다시는 오지 않을 시절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아쉽기만 하다.
몇 번 되지 않는 마지막을 보내고 보니, 가장 힘들고 슬픈 이별은 시간과의 것이더라. 나의 시간이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든. 좋았던 시간의 마지막을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 시간 속의 나와, 당신과, 소중한 일들이 다시는 나에게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조금만 불확실하면 좋았을 그 확신이 더욱 내 마지막을 슬프게 만든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또 꿋꿋하게 그 시간들과의 이별을 씩씩하게 해낸다. 결국 그렇게 매 시간 분초와 이별한다. 매일의 나, 나의 시간, 나의 시절과의 마지막을 보낸다. 누구에게나 힘이 들 그 마지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