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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Apr 24. 2020

나는 돈이 없어도 부모님은 부자였다면 좋았을 걸

 

 어떤 한 부잣집의 연예인 지망생, 이십대 초반, 지인의 이야기다. 대리석 바닥이 깔린 집에서 살고, 옷을 살 때는 자연스럽게 브랜드가 있는 옷을 사는 그런 사람이란다. 하루는 어떤 이가 그 사람에게 부자면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나 보다. 그러자 그는, 우리 부모님이 부자인거지 내가 부자인 건 아니라고, 자신에게 떨어지는 혜택은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부러웠다. 부모님이 부자라는 사실이 부러웠다. 그도 나도, 같은 이십대 청년을 지나는 시기, 돈이 항상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거나 준비하고 있거나, 경제활동에 뛰어들었다 해도 초년생이기에. 그러나 부모님 이야기라면 다르다.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돈을 꽤나 모은 중장년층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래, 우리 부모님은 돈이 많지 않다. 


 오늘 만난 친구는 내게, 휴대폰 사용비를 스스로 지불하지 않는 나를 꾸짖었다. 왜 내가 사용한 것을 스스로 부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콕 박혀서, 여전히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완벽하게 맞는 말이다.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쓴 휴대폰 비용 하나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더군다나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자식 된 도리가 아니다. 물론 나에게도 핑곗거리는 있다. 나는 아직 학생이고, 용돈을 받으며 생활한다. 사실 나는 그 용돈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인터넷비와 전기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 한 달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약 37만 원이 남는다. 한 달에 37만 원으로 식비 및 생활비를 부담하려니 여간 빡빡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휴대폰 비용을 부담한다면, 받는 용돈의 액수가 늘어날 뿐일 테다. 결국 아빠의 돈이 돌고 돌아 나를 거쳐 통신사로 들어갈 것이다. 

 얼마 전 아빠는 이를 뽑았다. 잇몸이 흔들리기 시작하여 더 이상 쓸 수 없는 치아를 뽑았다. 그 자리를 임플란트로 채워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꽤 많은 치아를 뽑은 탓에 아빠가 웃을 때마다 그 빈자리가 눈에 바로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과 점점 달라지는 아빠의 모습의 간극이 실로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 자리를 얼른 채웠으면 싶은데, 아빠는 돈을 벌어가며 채운다고 말하셨다. 그러니 나는 '내가 돈을 벌었다면 조금이나마 보탰을 텐데 왜 졸업도 못한 채로 아빠에게 기생하고 있나' 반성하게 된다. 

 부모님이 부자라는 사실은 뼈저리게 부러웠다. 내가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해 내 마음마저 텅 빈 듯한 그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부러웠다. 내 꿈이나 목표를 위해 욕심을 부리다, 대학생활을 분수에 맞지 않게 늘여왔다. 그 탓에 아빠는 여전히 버는 족족 나를 도와주시고 있다. 그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나에게 오는 투자를 묵묵히 받는다. 부모님이 부자였으면 좋겠다. 나에게 많은 돈을 투자해도 당신의 사리사욕을 마구 채울 만큼의 그런 부자셨으면 좋겠다. 아니다. 나에게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좋으니 당신의 빈자리만큼은 충분히 채울 만큼의 부자였으면 좋겠다. 


 더욱 나를 갑갑하게 만드는 사실은,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더라도 내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여유가 조금은 생기겠지만 내가, 내 돈을, 부모님을 위해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내 집을 마련하느라, 내 대출을 갚느라, 내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벌어들인 돈을 쓰기 바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부모님의 임플란트 비용도, 새 차를 바꿔줄 목돈도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고작 내가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가 사용한 휴대폰 요금만 지불하는 것이겠지. 무력감이 커진다. 그럼에도 애쓴다. 내 생활비와 휴대폰 요금은 내가 부담해야 하니까. 그거라도 해야 하니까. 내가 나의 부모님을 위해 뭐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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