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지금 로딩 중
지금 나는 회색 원을 끊임없이 그리고 있다. 몇 분짜리 일지 모를 내 삶의 길을 닦으려고. 그리고 그 위를 막힘없이 걸어가려고.
둘, 방황을 위한 방황 -16
셋, 두 번의 여름맞이 -17
넷, 회전목마 -18
다섯, 플랜비를 세우며 -19
PROLOGUE
중학생 때부터였다. 일기를 모아 왔다. 중학교 1학년 때, 점점 잊어가는 것이 많다고 느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인식을 못했던 건지, 기억이 많지 않아 정말 다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기억 못 한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그래서 학교에서 받은 두꺼운 공책을 폈다. 그리고 한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나는 일기를 쓰려고 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록했고, 나쁜 일이 있으면 기록하지 않았다. 나에게 일기는 글을 위한 것도, 다이어리를 꾸미기 위한 것도 아니다. 나의 기억을 위한 것이었다. 좋은 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소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그래서 나쁜 일은 기록하지 않았다. 빨리 잊을수록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오래된 나쁜 일들은 간혹 왜곡이 되어 더욱 나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분명 희미해진다. 책을 접었다 폈다 반복해서 주름이 하얘진 것처럼 기억도 하얗게 사라진다. 그래도 나쁜 생각들은 적어두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은 잊혀져도 되지만 내 생각들은 우울한 것이어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그런 생각들은 글로 표현하면 잠깐이나마 속 시원해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말한 것만 같은 착각을 받아서이다. 성장통을 유난스럽게 겪으면서 아직도 뼈가 부러지지 않은 이유는 일기라도 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사실 내 일기는 거의 월(月)기에 가깝다. 한 달에 한, 두 번 쓸 때도 있으니까. 혹은 시(時)기일 지도 모른다. 그 날 느끼는 바가 많으면 하루에 넉 장을 쓰기도 한다. 시(詩)를 썼다가, 일기를 썼다가 스케줄을 기록했다가 하는 식이다. 월기면 어떻고 시기이면 어떤가. 내 일기장은 어차피 기억창고이다. 모아놓으니 그럴듯한 웨어하우스가 되었다. 이제 그 창고를 개방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