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연대기 #13
스무 살, 서울행을 결정하고 자취방을 구했다. 방목형 교육에 따라 강하게 키워진 대로 부동산은 끼지 않았다. 성인이 된 지 고작 두 달 만에 학교 동네로 무작정 찾아가서 집을 찾아다녔다. 혼자 발품을 팔아 구한 집이 나의 첫 번째 자취방이다.
고작 스무 살이었던 나는 기준이 높지 않았다. 싸고 아늑하면 장땡이다는 생각이었나 보다. 5평 남짓의 공간이 왜 그리도 마음에 들던지. 아니 보증금 200에 월세 40의 싼 가격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주 깨끗하지도, 아주 넓지도 않았지만 내 몸 하나 눕힐 곳이 마련된 것에 만족했다.
처음 집에서 나와 혼자 잠을 자는 것이 이상하다고들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바뀐 잠자리는 어땠는지, 작은 방에 혼자 누워있는 기분은 어땠는지와 같은 느낌도 남아 있지 않다. 워낙에 겁도 없고 혼자 잘 살았던 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쩌면 향후 30년은 잊지 못할 듯이 생생한 순간이 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때, 나의 짐과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차로 실어 서울로 왔다. 당연히 아빠(실제로 아빠라고 부르는데 굳이 각 잡으려고 아버지라고 쓰고 싶지 않다)가 아빠 차를 운전해서 올라왔고, 굳이 따라나서지 않아도 되는 엄마와 동생까지 함께 나의 상경에 동참했다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내 첫 자취방을 구경했다 엄마, 아빠, 동생과 나. 총 네 명이 그 자취방에 들어왔을 때, 아주 좁았다. 좁다고 생각 못 했던 자취방이 네 명이 들어와 있으니 꽉꽉 차서 네 명이 함께 누워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당시에는 뿌듯하게 내 첫 방을 소개했다. 가족에게 내가 얼마나 혼자서 방을 잘 구했는지 자랑하고 싶었던 건지, 방이 좁은지도 모른 채로 방 자랑을 했다. 그때 부모님의 얼굴과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하니 내 방에서 자고 갈 것이라 말했던 아빠는 곧장 내 집을 떠나버렸다.
서운하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으니 잘 됐다 싶기도 했다. 좁은데 얼른 내려가 버려라 싶다가도 피곤해서 운전을 잘하려나 걱정되기도 했다. 딱 그뿐이었다. 아빠의 심정이 어떤지는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일곱 번째 자취방에 살 때쯤, 동생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진 우리 집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동생을 통해 들었다.
아빠는 서울에 혼자 좁은 집에 사는 나를 가여워했고, 차마 티는 내지 못했다. 그런 집에 혼자 살게 한 것이 미안하다고 내가 아닌 동생에게 푸념을 했다. 단순히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야 해서 빨리 내 집을 나선 것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아빠는 내 방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박차고 일어난 것이었다. 그 방에 있는 나에게 미안해서 잠시 쉬지도 못하고 다시 장시간 운전을 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정말 좁다는 생각 없이 살았는데, 괜히 부모님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한 것이 마음이 쓰였다. 지금 부모님은 그 집과 그 집에 대한 기억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 자취방에서 30분도 채 있지 못하고 서둘러 나가던 아빠의 모습이, 집을 구석구석 살펴보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난 기억과 좋지 않은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지만, 그때 그 순간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다. 아빠의 마음이 어땠는지 동생을 통해 듣고 나니 더욱. 아빠는 당시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집을 자랑하던 내가 안타까웠을까. 나는 정말 괜찮았는데.
요즘은 원래 했던 방목형 교육방식으로 돌아가 부모님은 내 자취방에 올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생활이 바빠 시간도 없지만, 아빠는 정말 내가 어떤 집을 가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 이후로 굳이 내 자취방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의 살림을 외면하는 것이다. 나는 부모의 형편을 외면하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부모님은 나의 작은 자취방을 애써 외면하며 미안함을 지우려 한다.
좁은 방에서 하루 묵고 가는 것이 나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단 한 번도 내 방에 멋대로 오지도 않는다. 나 역시 엄마 아빠가 불편할까 쉽게 오라고 말하지 못한다. 도대체 좁은 것이 내 방인지 내 마음인지 모르겠다.
내 자취방은 얼른 넓어져야 한다. 서로의 생활을 외면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딸의 생활이 궁금해, 서울 구경도 어슬렁하고 왔다가 딸의 공간을 침범하기도 하는 그런 부모님을 옆에서 보며 나 또한 미안함을 지우기 위해서. 또, 넓어진 방만큼 한 시름 놓을 부모님과 내 속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