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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Sep 23. 2020

내 방에서 거실까지, 일상에서 만남까지

자치방 연대기 #12

식사를 나누는 것, 장점이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2년 동안 많은 동거인들이 입주실과 퇴실을 반복했고 그때마다 환영파티를 열고 송년파티를 열었다.


처음 입주하고 약 네 달이 지났을 때 일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서로 차차 친해지던 과정 중에 있었지만 더욱 잘 지내보자는 의미에서 단합대회를 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서로의 마니또를 정하는 깜찍한 이벤트도 개최했었다. 서로가 1만 원 이하의 자그마한 선물을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레 모두가 즐거웠다. 

파티는 일회성으로 연소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누군가가 입주했거나, 할로윈 등의 사소한 기념일을 챙기며 파티를 열었다. 


파티라고 해서 거창한 일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날짜를 미리 정해놓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았던 터라, 그렇게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생길 때면 누구 하나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바빴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미뤄가며 수다에 전념하며 보낸 시간이 수십 시간에 달할 것이다. 

수다를 마무리하고 내 공간으로 돌아가기까지는 고작 거실에서 방까지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공부를 하다가도 거실에서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다가도 방으로 곧장 들어가 책을 읽는다. 여럿이서 나름의 이벤트를 벌이다가도 곧장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이벤트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하루는 그저 반복되는 일에 불과하다. 기상 후 씻고, 먹고, 입고 회사나 학교에 다녀온 후 적당한 집안일을 한다. 식사를 하고 나름의 취미활동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평범하고도 안전한 하루가 반복된다. 


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학급’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속한 반에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다. 매일을 공유하는 그들과 수업을 듣다가도 하루는 체육대회를 했고, 하루는 선생님 얼굴을 넣은 현수막을 걸어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는 스승의 날이었고, 또 하루는 만우절 장난을 치는 날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수업과 일과에 집중하다가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공부를 미루는 일종의 "치팅데이"를 가졌던 것이다. 내가 가진 체육 능력이나 예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장난기를 보이며, 풀어헤친 듯이 마음껏 나를 드러낸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로는 소속한 반이 전공으로 확장되어 매일을 공유하는 사람은 적어진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던 치팅데이가 돌아오는 기간이 점차 길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어떤가. 소속된 범위는 훨씬 더 넓어지고, 소속감을 함께 느낄 이들은 멀어지고, 나를 드러내는 치팅데이를 아주 드물게 맞이한다. 그러니 일상의 외로움은 짙어지고, 무언가에 억압되는 것만 같고, 의무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가끔은 각자의 의무에서 벗어나 나와 내 환경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마음껏 놀고먹던 것에 길들여지며 자라온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특별한 날, 치팅데이, 일종의 이벤트를 자주 가져왔던 것이다. 

다인원과 함께 보내는 치팅데이가 주는 즐거움을 조금씩 잊어간다. 잊는 대신 외로움이랄까, 피곤함이랄까. 무기력한 일상을 느낄 때쯤 취미를 가진다. 예술이나 체육 능력을 펼치기 위해 악기를 배우기도 하고, 러닝 클럽에 가입하기도 할 것이다. 학창 시절 누구나 그랬듯, 함께 즐길 일에 참여하고 나를 풀어헤칠 명분이 필요할 테니. 


나와 내 동거인들은 정신과 다르게 커버린 육체를 감안하여 체육대회를 개최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음식과 게임, 수다를 통해 치팅데이를 가졌다. 정기적으로 가졌던 그 날들로 하여금 외로울 틈이 없었던 것은 물론, 쉽게 의무감을 지우고 웃음을 찾았다. 그러다가도 곧장 방으로 들어가 각자의 일을 해내며 건강한 삶을 이어갔다. 이벤트와 일상 사이의 벽은 그리도 얇았다. 


뿐만이 아니었다. 각자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가장 가까이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한 메이트가 당장 내일 면접이 있었던 날이었다. 면접에 입고 갈 정장을 골라주고, 예상 질문을 물어보며 준비를 도와주었다. 나의 경우에는 당시 대학생 기자로 활동을 했었는데, 작성 중이던 기사에 필요한 인터뷰이를 집에서 구할 수도 있었다. 취재 중이던 일과 가까이에 있는 인맥을 구하기에도 좋은 조건에 있었다.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의 상담원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하우스 메이트가 15명이 넘는다.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2년 동안 동거했던 동거인들 15명, 그들 모두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지만 절반 이상의 인연이 꽤나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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