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연대기 #11
2년을 7명의 동거인들과 함께 살았다. 내가 지냈던 자취방 중에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다. 분명 단점이 존재하지만 그만큼 장점이 있기에 장기 투숙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장점은 한 집 안에 식사시간이 많다는 것이었다.
함께 사는 사람이 많다 보니 심심할 일이 없다. 조금 적적하다 느껴지면 거실에 나와 여러 명이서 수다를 떤다. 대화가 길어져 새벽이 지나도록 떠들기도 했을 정도로 하우스 메이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사실 내가 처음 입주했을 때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너무 멀지는 않더라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사는 동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여럿이서 살던 곳이었다. 그러나 내가 입주할 당시, 동시에 입주한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자연스레 모두 친구가 되었다. 더군다나 나는 해외에서 쉐어 생활을 아주 잘 지내다가 입주한 상태였기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는 법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또한 함께 입주한 몇몇도 해외에서 학교생활을 하며 기숙사 생활을 오래 해왔고, 교환학생을 통해 쉐어의 경험이 있었기에 동시에 친분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메이트들과 어색함을 진작에 떨쳤던 터라 함께 밥을 먹는 일도 잦았다. 식사시간에 한 테이블에 앉으면 서로 나눠먹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누어 먹다 보니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것도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혼자 시켜먹기엔 부담스러운 가격과 양의 음식을 여럿이서 먹음으로써 하우스쉐어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오래 살면 살수록 정이 깊어져 밥을 나눠 먹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는데, 본가에서 택배로 보내준 음식이 있으면 함께 언박싱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전라도가 고향인 한 하우스메이트가 전라도 갓김치나 고기 등을 받는 날에 그 음식을 같이 먹는다. 충청도가 고향인 한 하우스메이트가 받은 각종 반찬들이나 생선 같은 것에다 각자의 음식을 조금씩 보태서 한 상을 차리곤 했다.
같은 시각에 먹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음식을 식탁에 두면, 지나가던 아무개가 집어 먹기도 했다. 일종의 음식 공유시스템이다. 여행지에서 사온 특산물,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견과류, 너무 많아서 혼자 먹지 못해 남긴 피자 등 다양하다. 식탁에 있으면 누구든 먹는 것이다. 그걸 먹었다고 해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식탁에 있는 순간, 그것은 아무나 먹어서 없애버리란 뜻이었다.
음식을 나누지 않더라도, 언급했듯, 제각기의 식사 시간이 있었다. 한 집 안에, 한 테이블에서 몇 번이고 식사 타임이 있었던 것. 그 여러 번의 식사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첫 식사 타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두 번째에 참여한다. 스리슬쩍 끼어들어 밥 숟가락 하나 얻기도 한다. 두 번째 식사 타임을 놓쳐도 세 번째가 있을 확률이 크다. 늦게 퇴근한 동거인이나, 갑작스레 야식을 먹는 동거인. 다양한 이유와 식욕으로, 주방의 공동식탁이 텅텅 비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음식을 나누고 식사 시간을 공유하는 것, 자취생활에서 가장 결여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일정에 식사시간을 맞추다 보면, 편한 시간대에 끼니를 끼워 맞추게 된다. 그러다 보면 누구와 무엇을 먹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언제 어떻게 먹게 될 것인가를 고민한다.
특히 나는 요리에 흥미도 적성도 없어 더욱 식사시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식당에서 사 먹고, 굳이 누군가와 먹을 필요도 없어 동네에 한 식당에 터덜터덜 들어가 한 끼를 때우는 식이었다. 비단 나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해도, 생활이 바쁘고 혼자 살다 보면 ‘식사를 해결’하게 되기 마련이다.
함께 사는 사람이 많아서 감수해야 할 문제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이 많았다. 덕분에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식사 시간을 보내’고, ‘함께 식사를 하’는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동거인이 많을수록 그 성질이 짙어질 것이다. 옆방에 사는 사람이 집에 없다면 그 옆방에 사는 사람과 먹을 수 있고, 그 사람이 없다면 그의 룸메이트와 먹으면 된다. 누구 하나쯤은, 내가 식사할 시간에, 식사를 할 예정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