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연대기 #6
홈스테이에서 나와, 다음으로 구한 집은 도시 중심에 있는 플랫이었다. 플랫은 아파트 형태의 집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쉐어 형식이었다.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서 플랫쉐어는 아주 흔한 일이다. 시티 중심은 상업지구와 여러 문화시설, 주거시설이 한 데 어우러져 있기에 집값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해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한 아파트를 공유한다. 각자 방 하나씩 사용하기도 하고, 한 방을 두 명이서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거실 쉐어라고 부르는, 거실을 방처럼 사용하여 더 싼 값에 시티의 집을 이용하기도 한다.
오클랜드와 같은 대도시에는 나와 같은 이방인들이 많다. 특히 워킹홀리데이로 잠깐 살고 있는, 일명 워홀러들이 많았다. 당연히 한국에서 온 워홀러들도 있었기에 주한 커뮤니티도 개설되어 있다. '코리안 포스트'라는 페이지에서 한국인들의 나눔, 중고시장, 플랫쉐어, 일자리 등의 정보를 구 할 수 있다. 현지 사이트를 통해서도 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나는 과감하게 한인 사이트를 이용했다. 그 첫 이유는 현지 사이트를 통한 연락은 너무 느렸다. 정말 속이 터져버릴 정도로 일주일의 텀을 주고 답을 주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문화 때문이었다. 나는 오클랜드의 집 대부분에 카페트가 깔려 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그 카페트는 시멘트에 고정되어 있어서 청소를 하기도 힘들었고, 그 때문에 집 안 공기가 아주 건조해졌다. 무엇보다 현관이랄 것이 따로 있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집 안으로 드나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문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청소도 할 수 없는 카페트 위로 신발을 신고 들어온다는 사실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인 플랫메이트와 함께 살았고, 서로의 합의 하에 신발은 현관문 앞에서 벗어두기로 했다. 여전히 바닥의 카페트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신발을 신고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다섯 번째 자취방이었다. 한 명의 플랫메이트와 두 방을 각각 나눠서 사용했고, 한 달에 60만 원이 넘어가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다. 넉넉하지 않은 지갑 사정에도 불구하고 방은 꼭 혼자서 써야 하는 고집스런 성격 때문이었다. 내 방은 1평 정도의 아주 좁은 방이었는데, 거실과 주방은 따로 있었기에 답답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내 방의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창에서 외풍이 조금 들긴 했지만, 아침이면 햇살이 가득 들어와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었다. 다른 불편한 점을 굳이 꼽자면 플랫메이트가 남자 친구를 집에 자주 들인다는 점이었다. 처음 입주했을 때 그 친구가 먼저 남자 친구 문제에 대해 양해를 구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정도라면 괜찮겠거니 했다. 그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밥 한 끼가 1박 2일이 되리라는 것은 어쩌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렇지만, 남자 친구를 그만 데리고 오라고 하기엔 아주 큰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내게도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오라는 성격 좋은 그 친구의 호의도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내게 남자 친구가 없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안타까워라..
나에게 꼭 맞춘 집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플랫쉐어 생활을 했다. 그러나 입주 두 달 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생각지도 못 했던 관리비를 발견하게 된 것. 정황은 이러했다. 내 방의 전주인은 관리비 고지서를 어떠한 착오로 인해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관리비가 없다고 착각하고 나에게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었다. 입 주 후 내 연락망을 전기세 관리 회사에 등록하자 몰랐던 관리비, 즉 예상에 없던 돈까지 부담하게 되었던 것이다. 역시.. 가격이 아주 저렴한 것은 아니었지만, 컨디션에 비해 저렴했기 때문에 선택했었다. 그런데 몰랐던 관리비를 발견하다니.예산보다 훨씬 초과된 집세와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했기에 선택지는 하나였다. 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