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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Jul 24. 2020

근심은 바다를 건너지 못하니

자취방 연대기 #5

 3년도 채 되지 않았던 서울 생활에 이미 지쳐버렸던 나는, 집 계약을 예정보다 빠르게 정리하고 이사를 나왔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해 놓은 상태였고, 비자가 확정 나자마자 무작정 해외로 갈 준비를 시작했다. 도피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망설여질 선택지 앞에서도 주저함 없이 결정했다.


 워킹홀리데이의 목표가 확실해지자, 월세로 나가는 돈조차 아깝다고 여겨져 원룸 집을 정리했다. 해외로 나가기 전까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고향에서도 일을 하느라 큰 휴식을 취하진 못했다.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해외 생활에 대한 계획은 부모님의 의견 반영이 없었기에 자금 마련은 내 몫이었다. 그렇게 돈을 울며 악쓰며 모은 후, 부모님을 마주하고 워킹홀리데이의 계획을 통보했다. 약 3개월 후에 나는 해외에 나가서 잠시 살다 올 것이며, 그동안 학교는 쉴 예정이라고. 걱정은 하셨지만 늘 그랬듯이 반대를 하지도, 본인의 의견을 보태시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를 믿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가까이에 있어서일까. 대 2병을 열렬히 앓으면서도, 서울생활보다는 그나마 나은 3개월을 보내고 드디어 해외로 떠났다. 

 

 뉴질랜드의 대도시인 오클랜드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네 번째 자취방을 구하게 된 것이다. 그 집은 일종의 하숙집이었다. 일명 홈스테이, 방 하나를 빌려 쓰며 그 집의 식구들과 식사자리를 나누었다. 사실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가족도 아닌 사람들에게 나의 귀가 시각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도 내 사생활, 하루의 일정을 공유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아왔으니 그 생활은 나를 옭아매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난이 아니다. 평생을 구속 없이 살던 내가 저녁을 함께 먹을 것인지, 그렇다면 언제 먹을 것인지 등을 보고하는 것, 아주 생소하고도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해외에서 당분간 사는 것조차도 부모님과 어떠한 의논이나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하던 나였으니. 

 스테이 가족들은 불편했지만 생애 처음으로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지낸 것에 꽤나 만족했다. 2층에 위치한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소담스러운 집들과 푸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주 넓은 방이었다. 방에서 뛰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퀸사이즈의 침대를 놓아도 넉넉했다. 넓은 방, 한적한 동네, 2층 주택. 참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딱 한 달의 기간을 채우자마자 다른 집을 구했다. 시내 중심가와 조금 거리가 있다는 점, 버스 정류장이 가깝지 않다는 점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으나, 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나를 아주 옥죄었기 때문이었다.


 오클랜드에서 생활했던 시기는 내 인생의 호시절이었다. 서울에서 살 때와 다름없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고, 주변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괴리도 줄이지 못했다. 다만 그 모든 고민들에서 도망하여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해서 낯선 환경이라고 해서 모두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고민이 아니었구나, 낯선 환경 또한 아니었구나. 그 당시 나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구나.’ 

라고 일기 속에 마음을 담았었다.


 서울이든 고향이든 장소와 관계없이, 인생 전반에 대한 억압에 나를 스스로 가둬놓고는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당분간 세상살이와 거리를 두고 싶었고, 해외로 도피를 한 셈이다. 도망을 쳤지만 쫓기진 않았다. 걱정, 고민, 근심들은 바다를 건너서까지 나를 쫓아오지 못했기에.

 서울, 연고 하나 없는 곳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그리도 힘들게 느껴졌으나, 오클랜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익숙한 곳이라고는 없었고, 낯설기만 했지만 깨끗한 공기와 한적한 동네, 여유로운 사람들, 호의적인 생활방식은 내 안에 갇혀있던 긍정적인 에너지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고된 성장통으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타격받았던 시간들을 말끔하게 복구시킬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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