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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Jul 21. 2020

스스로 어른이, 혼자 살아요.

자취방 연대기 #3

 6개월의 짧은 하우스 쉐어를 끝내고 다음으로 들어간 집은 오피스텔의 작은 원룸이었다. 이 집은 쉐어하우스에서 인연이 있던 사람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일명 전전세, 전월세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집을 계약했다. 이는 세입자와 집주인 간의 신뢰를 바탕이 되어야만 진행될 수 있다. 이미 집주인과 계약이 되어있는 세입자와 다시 계약을 해서, 임시로 그 집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세로 집을 계약해놓은 세입자에게 월세를 값싸게 지불하기로 하고 덜컥 계약을 했다. 


 덕분에 신축 오피스텔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이미 서로 간의 신뢰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보증금도 100만 원에 불과했다. 보증금 100, 월세 46만 원으로 신축 오피스텔을 쓸 수 있는 것은 분명 호재이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식의 계약은 참 무모했던 일이다. 어느 정도의 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지만, 일종의 이중계약인 셈이고 집주인이 발뺌해버리면 계약이 공중분해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말 겁이라고는 없었다. 집을 알아볼 때도 복비를 지불하고 싶지 않아 직접 알아보고 다녔고, 부모님이 바쁘셨기에 혼자 찾아보는 것이 더 마음 편했다. 이사를 할 때도 혼자 짐을 옮기거나 지인의 차 이용 부탁을 하며, 그렇게 서울살이를 혹독하게, 혼자 버텨냈던 것 같다.

 사실 나에게 ‘혼자’는 참 쉬운 일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없이 하는 일을 자주 해왔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목욕탕 가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의 뜻에 따라 6살 때부터 혼자 목욕탕을 다녔다. 머리가 크고 나서는, 엄마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목욕탕이 싫어져 가지 않지만 말이다. 7살 때는 혼자 방을 썼던 기억이 난다. 나의 방과 나의 침대를 갖기 원했던 유별난 꼬마였다. 이상하리만치, 어릴 때부터 ‘내 것’을 가지길 원했다. 내 방, 내 침대, 내 책상을 가지고 내가 그것들을 관리하고 사용하기를 원했다. 물건에는 제 자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물건은 소유주가 있으며, 그 소유주의 허락 없이 물건이 이동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누군가 그것들에 침범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내게 '참으로 유별나다'라고 꾸짖었다. 어린아이가 ‘내 물건’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는 일이 흔하지 않을 테니. 엄마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서운했을 일이라는 것을, 성인이 된 후에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 유별나다는 말로 나에게 서운함을 표현했었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질게 나의 것을 가지길 원했던 내가 독립 후에 부모님의 의견 반영을 칼같이 끊어내는 것이 당연했을지 모른다. 독립적인 공간을 선택하는 것, 오롯이 혼자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현명하지 못한 선택도 있었고, 세 번째 자취방처럼 무모한 결정도 있었다. 당연히 동반되는 손해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그런 손해나 과정에 대해 묻지 않았다. 딸이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크게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부모님이 한 번도 와보지 않고 계약이 만료되었던 집도 있다. 현재 1년이 넘게 살고 있는 집에도 부모님은 와본 적도, 방문 계획도 없다. 유별났던 나를 배려했던 것일까, 나를 믿었던 연유였을까. 그들의 속 깊은 뜻은 알지 못한다.  


 결국 철저한 방목형 교육법으로 길러진 나는 스스로 어른이가 되었다. 조금은 혹독하게 서울 생활을 시작했지만, 전혀 불편하거나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자유를 내게 쥐어준 것에 고맙기만 하다. 그만큼 자유를 얻은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살 집을 스스로 선택하고, 알아보고, 이사를 하고, 적응하는 것, 스무 살 그 처음부터 해왔기에 어쩌면 더욱 빠르게 서울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물론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없었다면 진작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살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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