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 연대기 #2
첫 자취방 이후 집을 구할 때 반드시 확인하는 조건. 입지가 좋을 것, 독립된 공간이 확보될 것, 집주인이 내 공간에 개입할 여지가 없을 것.
적은 예산에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려니 집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 조건들에 부합하는 집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구할 수 있었다. 학교 근처의 집들은 대부분 저렴하지 않았다. 학생들 수에 비해 기숙사 규모는 작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집주인은 자신이 가진 방의 값을 저렴하게 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반지하를 선택하는 대신, 하우스 쉐어를 택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아파트의 방 한 칸을 사용할 수 있었다. 보증금 100에 월세 35라는 저렴한 값이었지만 엘리베이터와 번호 키와 개별난방시스템이 있는 아파트였다.
그렇게 옮겨간 내 두 번째 자취방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아파트 계약 자체가 만료되는 바람에 6개월밖에 살지 못했지만. 처음 해보는 낯선 이들과의 동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집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허용되는 공간이 넓어진 것에 만족했다. 아파트였기에 보안이 철저하다는 점도 좋았다. 혼자 작은 원룸에서 살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쾌적하고 넓은 집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물론 당연히도, 같이 사는 사람들로 인한 불편함이 있었다. 화장실을 같이 쓰는 하우스 메이트가 너무 오래 씻는다는 점, 씻고 머리카락 정리를 하지 않았다는 점, 그들과 마주치기 싫어 방에서만 생활했다는 점 등. 화장실을 다소 더럽게 사용하는 그 하우스 메이트 덕에 화장실 청소를 꽤나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순간, 물때가 끼게 되는데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손해도 기꺼이 감수했던 어린 나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더러움의 수준에 다다르면 칫솔로 물때를 제거하곤 했다. 쓰던 칫솔의 솔이 뽑힐 정도로 분노의 솔질을 하고 나면 정말 놀랍도록 깨끗해지는 욕실을 보고 화를 씻어내곤 했다.
당시에는 손해를 기꺼이 감수했다. 동거인들이 저질러 놓은 더러움을 아무 생각 없이 처리하고는 했다. 그런 사실에 화도 났지만 나의 편의를 위해 불편을 감수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의 손해였다.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치이다 보니, 내 것이 소중해졌다. 누군가는 나를 경쟁의 상대로 바라보고 있고, 또 누군가는 나의 성격을 이용해 자신만의 편의를 찾는다. 그런 상황을 보고 있자면, 내가 소위 말해 호구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정신이 바짝 든다. 사실 나는 내가 편하기 위해 한 행동일 뿐인데, 본의 아니게 남에게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남'이 괘씸해서 오히려 내가 불편 속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렇게 못된 마음을 먹으면서도 내 것을 챙기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어떻게 보면 사회화의 과정이다. 타인에 대한 의심이 짙어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기보다는 나의 이익과 손해를 따져본 후에 행동하며, 나의 입지나 관계의 우월성을 차지하기 위해 나의 편의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진다. 내가 언제 이렇게나 이해타산적인 사람이 되었나, 왜 더 이상 타인과 순수한 만남을 가지기 어렵나 반성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들 이렇게 살아가잖아. 씁쓸해도 함께 살아가려면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