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능력 3. 창의력(Creativity) -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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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능력 3. 창의력(Creativity) - WHY?
-창의력에 대하여
WHY?
-질문의 중요성
-질문을 안 하는 한국사람
-좋은 질문이란?
■ 창의력에 대하여...
창의력의 중요성은 항상 강조되어 왔다. 창의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 사고력이며, 창의력을 통해서 할 수 있는
행위는 다음과 같다.
창의력에 개념은 계속되지만 창의력의 응용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되어 왔다. 미래 메타키즈에게 강조되는
창의력의 응용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AI에게 질문을 잘 못하면 답을 얻을 수 없다. AI에게 답을
얻기에 좋은 질문은 무엇이고, 질문을 잘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WHY?
■ 질문의 중요성
질문이 없으면 변화가 없다.
일본 자동차 기업인 토요타의 타이치 오노(Taiichi Ohno)
가 제안해 기업 혁신에 성공한 ‘5WHYS’ 기법은 문제
해결을 위해 5번 ‘왜?’라고 묻고 답을 찾다 보면 문제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유대인의 기본 교육 방법인 하브루타(Havruta)도 짝을
지어 주제별로 문답형식의 토론 및 공부법을 강조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관심이 있으면
집중하게 된다. 집중을 하면 깊이 파고들고 파고 들수록
발전하게 된다. 무엇보다 질문을 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화되고 구체화된다는 것은 확신과 추진력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질문은 이해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시험도 출제자가 수험자에게 하는 질문인데, 질문을 통해
능력을 평가하고 실력을 가늠한다.
질문은 나에게 하는 방법으로부터 현자에게 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여 이루어진다. 가까운 이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질문하는 내용과 수준이 높은 곳에서
답을 구하고자 멀리 해외로 유학을 간다.
그런데 대한민국 학생은 질문을 정말 안 한다.
학생만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물어보는 것으로 먹고 사는
기자도 질문을 안 한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
회의 폐막식에서 美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기자에게만
질문권을 배려했을 때 침묵한 것은 전세계에서 화자가
되었다.
심지어 본인이 스위스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교수님이 이 일례를 들며 내가 질문을 잘 안 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했을 때,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독일어로 수업을 따라가는 것에 급급하여 질문을
못했고 그 사전 이후로 상처받은 자존심에 각성(?)하여
하루 한 번 질문하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지켰다)
독일, 스위스, 미국의 대학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의견도
많이 발표하고, 질문도 많이 한다. 때로는 기초적인 질문도
있지만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과 기발한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 수업과 외부강좌 수업을
많이 보았지만 수업시간에 참여점수, 발표점수가 포함되지
않으면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질문을 안 한다는 것은, 교수가 수업을 어렵게 하거나,
너무 잘해서 모두 이해를 하거나, 학생들이 너무 훌륭
하거나,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질문하고 발표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질문을 하지 않으면 깊게 파고들 수
없다는 것이다.
메타키즈가 질문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미래에 필요한
핵심적인 능력 중 창의력의 기초가 없다는 것이다.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또는 AI에게서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소통을 통해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질문하지 않는다면, 시간과 돈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질문을 잘 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학교기관과 기연(奇緣)을 통한 배움을 추구하기에는 습성이
되기까지 너무 늦거나 빈도가 적을 수밖에 없다. 집에서
수시로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 줄 체력과 끈기, 인내력과
다정함이 부모에게 필요하다.
■ 질문을 안 하는 한국사람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까? 개인의 성향일까?
문화적 요인일까?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적 요인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서는
유행에 따라 브랜드와 집단 패션의 양식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미 구축된 비주류의 성향(영역)에 속하는 경우도 많다.
수업시간이나 다른 모임에서 손을 들고 의견을 내 거나
질문을 하는 것을 ‘튀는 행동’으로 간주하는 문화는 유교
문화, 불교문화 탓이라고 할 수 없는 대한민국 특유의
문화인 것 같다.
특히,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에는 그렇게 손을 들고 발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점점 초등학교 고학년이
지날수록 질문이 적어지고 위축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의 교육문화에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군대는 더 심하겠지만)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서열이 있는 조직은 상급자가 원하는
‘이미 답이 정해진’ 계획과 보고서가 준비되어 있고 회의는
요식행위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또한 한국의 사회적 문제
이다.
심지어 학회나 세미나에서도 사전에 질문을 받거나 모범
답안을 만들어서 시간을 단축한다는 사유로 ‘짜고 치는’
학회와 토론회가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교육기관에서는 (지금은 많이 줄이고는 있지만)
너무도 많고 빠르게 지식을 주입한다. 나의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에서 초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2살 어린
쌍둥이 동생 한국에서 배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수학이나 과학 과목 외에 독서하고 토론하는 내용,
나라의 역사, 지리, 문화를 배우고 조사하는 방법은 우리
나라에서는 없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는 평가를 통하여 수치로 나오는
성과주의의 체계와 참여와 토론보다는 일방적인 주제에
대해 알려주고 암기하는 폐쇄적인 형태를 띄고 있어 굳이
아이들이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중학교 이후로는 배워야 할 내용이 너무나 많아서
질문을 할 시간조차 없다.
그런 교육체계를 거쳐서 대학에 오더라도 교수가 원하는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경청해야 하고 질문을 하면
배워야 할 진도나, 이미 알고 있는 학우들에게 피해를 줄
거 같다는 이유로 질문을 회피한다.
질문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질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다른 나라의 발전과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시스템을 답습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와 발전을 위해서는 한단계 도약을 위한 노력이 필요
하다. 그것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문화다.
우리는 유교문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유교에는
사제간의 문답을 통해 자신을 알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교육방식이 기본이었다.
그 기본에는 상호간의 존중이 기초가 되었다.
나는 미리 알았을 뿐 가르치는 것이 아닌 지식을 공유하는
입장으로 언제든지 나도 옳지 못할 수 있다는 겸손(謙遜)과
타인의 시각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는 겸양(謙讓)은
자유로운 질문과 토론을 위한 환경과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의 자세를 강조한다.
이것은 불교와 유대교 등 대부분의 종교적 학습 방법이다.
우리는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를 지나간 역사와
전통을 왜곡하여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세상사는 방법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 누구나 알고
있다. 질문하는 것은 사회적 해(害)가 아닌 발전을 위한
이(利)로움이다.
■ 좋은 질문이란?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핵심을 찾아 내거나, 질문을 한
사람이 듣기 원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좋은 질문은 ‘최초의 질문’이다.
누군가 생각하지 못한 최초의 질문은 그 문제를 이해하고
고심했음에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나오게 된다.
때로는 과감하고, 황당하고, 또는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이 오히려 사고의 틀을 깨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요즘에는 교육계에서도 질문중심 학습환경을 조성하고,
질문의 정도를 측정하는 인공지능 질문 평가 시스템도
있다.[29]
지금까지 ‘질문’ 자체의 질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미래기술과 접목시켜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질문은 ‘가정’을 설정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AI가 데이터 분석 기술은 주어진 데이터를 기초로 현상을
분석하고 결과를 제시하지만 가정의 설정은 인간이
제시하지 않으면 결과를 산출하는데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라는 가정 설정을 통해 발휘되는 인간의 창의력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의 능력이고 가정을 현실화
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
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좋은 질문은 공공선에 기초한 질문이다.
인류는 AI에게 인류의 발전을 기대하면서도 한편 인간의
존엄성이 역전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지구 어느 한 곳에서 전체 인류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도 가능해지면서 인간이 인간을 불신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문의 방향성을 인류애적 관점으로,
윤리적으로, 또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기술발전은 미래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고
AI윤리분야에서도 연구가 활발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가정설정의 기초와 AI와의 작업은
인류애를 기초로 한 인간의 존엄성과 공공의 이익을 헤치지
않는 범위로 제도적으로 보완되고 제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메타키즈도 미래사회의 변화와 기조에 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28]계보경, 김재옥(2013). 블룸의 디지털 텍사노미.
연구자료 RM 2013-6. p.4
[29] Smile (Stands for Stanford mobile inquiry
based leaning enviro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