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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능력 6. 헌신(Commitment) - WHY?

by 애셋요한

메타능력 6. 헌신(Commitment) - WHY?

- 희생이 아닌 나에 대한 헌신


WHY?

- 나에게 헌신 – 꾸준함

- 분야에 헌신 – 전문성

- 이데올로기에 헌신

*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하는 미래





■ 희생이 아닌 나에 대한 헌신


우리는 헌신(獻身)하는 것을 때로 희생하는 것과 혼동한다.

‘너는 매일 야근하고 주말까지 출근해서 회사에 ‘헌신’하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왜 그렇게 ‘희생’하냐?’

라는 두가지 개념을 섞어서 쓴다.


그리고 요즘같이 트렌드는 한 직장에서 오래 있는 것 보다

다른 직장으로 연봉을 높여서 자주 이동하는 것이 잘

살아가는 방법이지 한 회사에서 헌신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을 한다.


이것은 ‘헌신’이라는 개념을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한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다른 직장으로 높은 연봉을

받아 이동하는 것은 나의 시간과 열정을 꾸준히 투자하는

나에게 헌신, 원하는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늘리는

분야에의 헌신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즉, 헌신은 최선을 다해, 시간과 노력, 진심을 바친다는

이고 새로운 기술과 직업환경을 문외한(門外漢)의 분야가

아닌 나의 전문분야에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용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WHY?


■ 나에게 헌신 – 꾸준함


부모가 자식에게 정성을 다해 매끼 밥을 주는 것은 자식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헌신은 어떤 대가나 인정 남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이 ‘가성비’를 우선하는 시대에서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적당히, 수동적으로 임하거나 보상이나

대가,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빠르게 변할 수

없는 다이어트와 같다.


변화에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자기를

변화시키는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헌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길거리의 연탄재를 함부로 걷어 차지 마라. 너희는 그만큼

뜨거워 본적이 있느냐’

라는 문구는 예전의 공허한 외침이 되었고 자신을 위한 헌신

조차 두려워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변화가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꾸준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꾸준함을 이길 수는 없다. 한 때 영화 역린

(2014)에서 응용된 중용 23장 [49]에는 변화를 위한

헌신의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 其次致曲 曲能有誠(기차치곡 곡능유성)

誠則形 形則著(성즉형 형즉저)

著則明 明則動(저즉명 명즉동)

動則變 變則化(동즉변 변즉화)

唯天下至誠 爲能化(유천하지성 위능화)」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 작은 일에서부터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하게 하고, 남을 감동하게 하면

곧 변하게 되고 변하면 세상이 알게 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것을 꾸준히 정성스럽게 하는 것만이 나를 확실하게

변하게 한다.




■ 분야에 헌신 – 전문성


급변하는 시대에 계속 벌어지는 차이 때문일까?

‘사다리 걷어차기’ [50]처럼 사회적 추격의 가능성을

포기해 버린 세대들은 결정을 미루고 막연한 ‘내 주위에는

없지만 SNS에 존재’하는 성공신화의 가능성만을

쫓고 있다.


피트 데이비스(Pete Davis)는 ‘전념(Dedicated, 2022)’

에서 하나에 전념하는 삶이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준다고

했다. 하나에 헌신하고 몰입해서 얻게 되는 의미 있는

성취는 자아 효능감과 자부심으로 이어져 현대인의 방향성

상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미래사회는 변화와 새로운 것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기존의 것을 편리하게 발전시킨 것이고,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을 근간으로 한다.


즉,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메타키즈의 능력은 한 분야에

헌신함으로써 획득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그 과정의 실패와

극복이 두려움을 없엔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는 것보다 기존의 목표를

확고히 하고 집중하는 것이 더 성공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원리를 이해하고 경험, 요령이 축적되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능숙하게 응용한다.


수동기어로 운전을 하던 사람이 자동기어에 쉽게 적응하이,

깊이는 새로움을 이기는 경우가 많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많은 것을 새로이 도전하는 것보다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최악의 경우 실패하였을 때 남은 것이 많다.


분야에 헌신하는 것,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창의적이지 않고

변화를 거부하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헌신은 변화와

혁신에 열린 자세로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식당을 운영한다면, 요리, 접대, 청소 등

모든 것을 성실하게 혼자서 하는 것은 헌신이 아니다.

오히려 진심으로 업계의 트렌드 이해와 메뉴개발, 효율적인

접대 시스템 발전에 매진하고 나아가 자신을 복제하여 일할

수 있는 인적자원 개발에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분야에 헌신이다.



■ 이데올로기에 헌신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하는 미래>


메타키즈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국가의 개념이 존재할까?

이미 인터넷은 국경 없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제도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많은 것들이 국가의 테두리안에서 통제

된다.

안보와 치안 유지, 사회 정의와 복지 실현, 경제 관리,

환경 보존 등 국가운영 철학은 삶의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치고, 이민과 망명 등의 형태로 본인의 국적을 변경하던가

이중국적, 영주권 등으로 국가를 선택한다.


미국의 NIW 영주권 전형이나 호주의 군인 영주권처럼

일부 국가에서는 인재확보, 방위력 증진, 투자이민을

장려하며 새로운 국민을 영입한다.

미래사회에는 기반산업과 화폐이동, 특허권 등의 경제적인

통제력이 현재 국가운영능력 밖으로 벗어나고 치안문제나

기반시설 등 제도적 이점과 삶의 질에 따라서 국가를 선택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AI와 자동번역기로 언어 장벽이 무너지고, 이동수단의

발전으로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려는 인류의 시도

지금까지 인간을 제약했던 이데올로기, 종교, 무력대립

등의 갈등요소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구와 함께

국가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 것이고 이는 국가체제를

유지하려는 국가자체와의 갈등(이민제한, 조건강화 등)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미 글로벌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글로벌 거버넌스

(세계기구 운영), 세계 시민민주주의의 초국가적 통제

대해서는 이론이 발전되었고 실효성은 떨어지나

국제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미래국가 개념인 네트워크 국가론은 아직까지도

현재의 국가기능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메타키즈는 더 이상 국민국가에서 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국가관에 수렴하는 국적을 선택해서 자기가

원하는 자연, 치안, 복지환경이 맞는 지역에서 살 수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원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인종, 민족, 성(性)

수많은 이념과 사상은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인간존중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되 지금과는 다른 개념의 이데올로기와

국가를 선택할 기준이 필요하다.






[49] 중용(中庸): 공자의 손자 자사가 쓴 유교

사서(四書)의 하나

[50] 장하준(2020),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거론한

'선진국의 후진국 죽이기'[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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