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에겐 집에서 변기위보다 편한 곳도 드물다
■ 살다 보면
이상하게 '이번엔 진짜 제대로 끝까지 한다!'라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하지만, 어느새 그 일은 책상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나는 쌓여있는 다짐들을 애써 외면하며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계획은 그럴듯했다. 엑셀에 스케줄도 짜고, 필요한 도구도
사고, 주변에도 슬쩍 알린다.
‘아, 이 정도면 벌써 반은 한 거지’ 싶은 기세로 출발하지만...
며칠 뒤, 그 열정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엔
“이걸 왜 시작했더라?” 싶어진다.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 있다.
'똥 누다가 잠든다.'
볼일을 보려고 앉았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냥 그 자리에서 잠드는 상황.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지쳤으면 그랬을까.
애처롭기도 하다. 근데 이게 꼭 진짜 똥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계획, 실행에도 너무 자주 일어난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이번엔 연간 운영계획을 새해 초부터 제대로 실행 해보자!”
“우리 팀만의 자료 공유 시스템을 만들자!”
“매주 수요일에는 런치 미팅을 하자!”
입으로는 열정 넘쳤지만, 막상 실행해보면 하루, 이틀... 그리고 사라짐.
슬쩍 꺼낸 누군가의 “우리 그거 아직 해요?”라는 질문에
서로 눈을 피하며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기억.
그건 딱 똥 누다가 잠든 순간이었다.
육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과 무언가를 '끝까지 함께 해보자'는 다짐 아래 시작했던 수많은 프로젝트. 파 키우기, 장수풍뎅이 기르기,
레고 공룡 시리즈 만들기, 가족 독서 일지, 영어일기 쓰기...
처음엔 아이도, 나도 신나고 의욕이 넘쳤다
사진도 찍고, 같이 준비물도 사고, 나름 진지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아빠, 파가 더이상 안 자라.”
“아빠, 장수풍뎅이 죽었어...”
“레고 부품을 잃어버렸어.”
그럼 우리는 말없이 눈을 마주친다.
“아... 똥 누다가 잠들었구나.”
처음엔 스스로가 실망스럽고, 아이에게도 미안하다.
‘계속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무책임한가?’
‘아이에게 꾸준함을 못 보여주는 건 아닐까?’
그렇게 자책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래도 시작은 했잖아.
그 작은 시작은 아이에게는 꽤나 큰 인상으로 남기도 한다.
“우리 예전에 파 키웠었지?”
“아빠, 그때 만든 레고 티라노 아직 기억나.”
결국 기억 속에 남는 건 그걸 함께 했던 시간 자체다.
일도 마찬가지다. 비록 끝까지 못 갔어도 그 일 덕분에
팀원들이 모였고, 아이디어가 나왔고, 잠깐이라도 활기가
돌았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한 번의 작은 흐름’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흐름은 언젠가 다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늘 뭔가를 끝내야만 잘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흐지부지 사라지며 정리된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이번에도 똥 누다가 잠들었지만...
다음엔 조금 더 오래 눌 수도 있겠지.”
중요한 건 마음먹고 시작 해보는 거고, 아이들과도 무언가 같이 해보는 거다.
레고 하나를 완성하지 못해도 그 과정에서 함께 웃고,
대화하고, 실패도 겪어보는 것.
그게 결국 진짜 육아고, 진짜 삶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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