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원작 소설인 <엑스(The Ax)>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메인 주제를 짐작할 수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상실하고 '어쩔 수가 없었다고' 되뇌는 등장인물들과, 독자에게도 '당신이라면 어쩔 수가 있었냐고' 물어보는 주제 일 것이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어떠한 연출과 미술로 그것을 표현했을지 기대하게 된다.
극 중 주인공인 유만수(이병헌 역)는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이자, 제지 산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제지회사에 다시 취직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려 한다.
이 제지 산업, 즉 '종이'를 선택한 건 자본주의 속 인간성을 표현하기에 다중적 의미로서 적절한 아이템이다.
종이는 무언가의 메시지를 담는 중대한 메신저 역할을 하지만, 그 발화자에 따라 종이가 갖게 되는 위상은 천차만별이다.
후대에게 길이 남는 역사적 유물부터,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헬스장 전단지들이 그러한 예시이다.
그중에서도 전단지는 '메신저'의 지위까지 잃은 자본주의 속 종이의 종착점이다.
전단지는 극악의 확률 속에서 단 몇 명의 독자를 찾아 떠돈다.
하지만 그 전단지가 길거리에 널브러져 의미 없는 쓰레기가 되기까지,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형성되고 자본주의가 굴러간다.
전단지를 제작하기로 결심한 가게 주인은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의뢰를 하고, 인쇄업체와 견적을 조율한 끝에 전단지를 제작한다.
완성된 전단지는 주로 노년의 파트타이머분들에게 전달되어, 길거리에 뿌려진다.
즉, 최종 결과물인 전단지 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는 극히 미비하지만, 전단지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통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남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속 진정 필요한 물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전단지가 어떠한 가치도 갖고 있지 않다면, 전단지를 구겨서 버리는 인간은 지탄받아 마땅한가?
자본주의를 떠나, 사람이 물리적 유기체로서의 가치는 전단지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이 갖고 있는 물리적 성격이 아니라,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따라 존재의 가치가 결정된다.
즉, 타인들이 나를 물리적 유기체 메신저를 넘어 인격적 의미로서 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유기체 덩어리가 전달하는 물리적 메시지로 인해 타인이 받아들이는 가치 및 의미이다.
사랑하는 내 가족은 온 마음으로 날 지지한다.
예고편 중 심리상담모임으로 보이는 모임 속에서 주인공 유만수를 포함한 참여자들이 되뇌는 말이다.
전단지와 인간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나를 접하는 타인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면 쓰레기로 전락한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모두 고단하다.
단순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너무 많아지고,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다른 메시지를 없애버려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다 죽여버려"
이러한 의미에서 고독사는 자본주의가 선사할 수 있는 최종의 죽음이다.
어떠한 메시지로도 전달되지 못한 채, 메신저로서 낡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홀로 외로이 죽는 사람이 있을것인가?
있다면 그 등장인물이 자본주의의 최하단일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메시지가 가장 최후에 살아남아 자본주의 속 전단지를 넘는 의미와 가치가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