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을 성심성의껏 써서 보내자
이공계의 경우 박사 학위를 받고 바로 교수나 연구원이 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다. 포스닥 또는 포닥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어로는 post-doctoral researcher, 줄여서 post-doc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이므로 계약 기간이 있는데, 대체로 1년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연구 경험을 더 쌓고,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많은 경우 1년 안에 할 수 있는 연구가 제한되기 때문에 연장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연구실 선배들을 보니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연구 경험을 더 쌓아야 했다. 당연하게도 박사 후 연구원이 되려면 박사 학위가 필요하므로, 지도 교수님과 언제 박사 학위 심사를 할지 상의했었다. 학생이 먼저 졸업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라, 필자도 굉장히 고심해서 지도 교수님께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지도 교수님께서는 박사 학위 심사 전에 해외 학회에서 자리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말씀해 주셨다.
박사 학위 심사를 준비하는 와중에 어떤 연구자들에게 지원할지 열심히 알아봤다. 좋은 포닥 지도 교수는 당연히 연구를 잘해서 유명한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에게 좋은 연구 주제를 줘서 같이 좋은 논문을 쓸 사람을 고르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미래를 알 방법이 없어 과거의 지표를 갖고 미래를 예측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는 논문 잘 쓰지만, 한국에 덜 알려진 기관의 연구자와 논문은 잘 안 쓰지만, 한국에 굉장히 잘 알려진 기관의 연구자 사이에서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고민은 전적으로 지원자에게 당장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렸다. 논문이 충분하다면 좋은 기관으로 가야겠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논문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돈이 없으면 당신을 고용하지 못한다. Nature Career, Postdoc Jobs 같은 홈페이지도 잘 찾아보자.
가고 싶은 곳을 정리하고 나서 보낼 이메일을 작성했다. 제목에는 post-doc application이라고 분명히 적었고, 재학 중인 대학원 이름도 알아볼지도 몰라서 적었다. 본문에서 받는 사람의 이름은 매우 신경 써서 보냈다. 이전에 보냈던 이메일을 복사해서 붙여 넣다 보면 이름을 실수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그런 경우도 본 적 있고, 그런 경우는 답장이 안 와도 할 말이 없다. 좋은 이메일 지원서는 지원자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고, 논문도 직접 쓸 수 있으며, 지원한 연구 그룹에서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큰돈 들여 뽑았으니 자신의 연구에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스스로 알아서 데이터 뽑고 논문까지 써오는 사람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쓰려면 받는 사람마다 조금씩 바꿔서 써야 하는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성이 느껴지므로 답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메일 보낼 때는 반드시 이력서를 같이 첨부해야 하고, 추천서를 보내줄 사람들도 최소 3명 정도는 확보해서 적어두어야 한다.
이력서라고 하면 아마 대학교나 대학원 지원할 때 썼던 이력서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박사 후 연구원 자리에 지원할 때는 조금 더 긴 이력서, 즉 curriculum vitae (CV)를 제출해야 한다. CV에는 학력뿐만 아니라 출판한 논문이나 발표 실적, 수상 실적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길다. 회사에 지원할 때는 resume라고 불리는 이력서를 제출하는데, 대학 지원할 때 썼던 이력서처럼 길지 않다. 이력서는 분야에 따라서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가급적 속한 분야에서 유명한 교수들의 이력서를 참고해서 작성하자. 일반적으로 (교육, 직업) 이력이나 (논문, 발표) 성과는 시간 역순으로 적는 것이 좋다. 장학금을 받았거나 상을 받은 적 있다면 이력서에 반드시 포함하고, 논문의 숫자가 많다면 대표 논문을 따로 적는 것도 좋겠다.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도구들, 예를 들어서 프로그래밍 언어나 실험 장비가 있다면 적는 것이 좋다. 참고로 서구권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넣지 않는다. 가독성이 매우 중요하며,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굵게 하거나 밑줄을 치자. 오타나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실적들도 한 가지 정해진 스타일로 적어두자.
필자는 이런 준비 과정을 거쳐 하루에 1~2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답변이 안 오면 그다음 사람에게 보냈고, 우호적인 답장이 올 때까지 반복했다. 수십 명의 연구자들에게 한꺼번에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필자는 그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먼저 뽑고 싶다고 연락받으면,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룹을 나누어서 그룹 내에서는 어디서 연락해 오든 먼저 연락해 오는 곳에 가겠다고 생각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대략 10~15곳 정도를 보냈던 것 같다.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는데, 먼저 연락해 준 교수님과 학회에서 만나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했고, 결국 같이 일하게 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