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다 뺐지 말자
필자가 대학원생이던 시절에는 학생 인건비를 공동으로 관리하여 랩비를 조성하는 일이 참 빈번했다. 학생 인건비로 지급되는 돈의 일부를 한 통장으로 몰고, 연구실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필자의 지도교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박사님은 랩장이었을 때 매일 아침 ATM 앞으로 가서 통장 정리를 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인 돈을 연구실 운영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최악의 상황에는 지도 교수가 꿀꺽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대학원생이었던 시절, 대학원생 인권이 높아지면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제는 이른바 인건비 공동관리가 적발되면, 한시적으로 연구책임자의 연구 과제 참여를 제한한다. 최대 10년까지 제한하니, 연구책임자 입장에서는 연구를 그만두라는 이야기라서, 꽤 강한 제재이다. 부당으로 착복한 연구비는 환수되며, 연구개발비 5배 범위에서 제재 부과금이 부과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필자가 처음으로 교수가 되었을 때, 학과 교수님께서 학생 인건비는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기도 했다.
이제는 이와 같은 사례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 완전히 근절되지는 못한 것 같다. 사실 대학원생들이 행정 절차를 완전히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고, 산학협력단이 일을 꼼꼼히 하지 않으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올해만 해도 경북대 교수가 2017년 5월부터 2022년 2월까지 학생 연구원에게 지급된 인건비 가운데 2억 7천여만 원을 가로채 기소되었고, 지난 11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결국 산학협력단 차원에서 막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학교의 경우에는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연락하여 인건비 지급 사실을 확인하는데, 이렇게만 해도 랩비 조성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