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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평생 오해하며 살겠지

(2) 한 여자와 딸에 대하여

by 존치즈버거

‘나에게 딸이 있다니……. 내가 엄마라니!’ 네가 등교하고 혼자 남은 집에서 가끔 이렇게 중얼거려. 내 30대를 모두 너와 보내고 있으면서도 이 삶이 나의 것이 아닌 듯 생소한 얼굴로 이렇게 되뇌지. 어릴 때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삶. 가정을 꾸리겠다는 것도 계획에 없었지만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은 더 해 본 적이 없어. 아이가 있는 삶을 좋아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한 생명을 책임질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어. 가뜩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떠날 수도 없는데 자식을 낳으면 그 사랑의 무게 때문에 한 자리에 붙박이는 게 아닐까 두려움도 있었지. 너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그럼에도 솟아나는 기대와 흥분으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롤러코스터를 탔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주관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혹시라도 나에게 불행이 찾아와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면 어쩌지, 나 먹는 것도 귀찮아서 굶기 일쑤인데 애 밥은 제대로 챙기기나 할까나.


어찌어찌 다 되더라. 종일 울어대는 널 달래며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놀아주고 품에 안아 주다 보니 걱정 따위 할 시간도 없더라. 돌이 지날 무렵에는 우울하고 슬픈 기분만 느껴도 좋으니 내 감정을 온전히 느낄 여유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였어. 나의 젊음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다가도 뒤돌아보면 모든 날이 무탈하게 지났어. 그것만으로도 감사해.




한데 웃기는 게 나는 부모가 되니 우리의 부모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이상한 면을 더 많이 생각하게 돼.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우리 부모님의 행동이나 내가 보고 들었던 이웃의 부모님들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범했는지. 그러니까 부모라는 자아를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마음은 자식들의 입장에 추가 쏠린다는 거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안에는 아직도 독립시키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는 것 같아. 나이 먹어도 여전히 그 아이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엄마는 다른 엄마들이랑 좀 다른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자주 너에게서 듣는가 보다. 사실 그건 내가 쿨해서가 아니라 마음속 어린아이 때문일지도 몰라. 너와 함께 웃고 뛰어놀며 그 아이의 결핍을 해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 나는 언제 어른이 되나 싶기도 하다. 너를 키우며 나도 함께 커나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뒷짐을 지고 어른의 잔소리를 흉내 내는 나를 보는 날이 있을 거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괜히 조심하라 몇 번이나 당부하고 넉살 좋아 아무 하고나 수다를 떨고 있으면 착하게 생긴 사람도 나쁜 사람일 수 있다 악마처럼 속삭이고. 내가 잔소리 길어지면 흰자 보이는 네 눈알을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나네. 맞아, 내가 아무리 독특한 구석이 있더라도 엄마는 엄마야. 그게 다 널 위한 걱정이라는 말을 하면 또 너는 ‘뉘에 뉘에’ 얄밉게 대꾸하겠지. 그런데 어쩌겠어. 네가 다칠까 아플까 혹여라도 상처 받을까 걱정이 되는데. 물론 나도 그런 소리들에 진저리를 치며 성장했지만.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거야. 부모님의 잔소리 근원에는 사실 너를 통제하려는 마음보다 너의 존엄성이 다칠까 걱정하는 조바심이 있다는 걸. 네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방종을 일삼으면 그 또한 너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누군가 고의로 너의 인격을 짓밟는 건 정말 차원이 다른 문제거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딸의 마음과 엄마의 노파심이 만나면 반드시 한 번은 서로 으르렁 거리게 되지. 그럼 이번에는 우리에게 다가올 대립에 대비하여, 누구보다 확고한 가치관을 지닌 딸과 그런 딸을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앞에서도 말했지? 제목은 ⌜딸에 대하여⌟ .

소설은 이렇게 시작해. 장성한 딸, 나이가 찼음에도 정규직이 아닌 대학 시간 강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결혼도 못한 딸이 대뜸 돈을 빌려달라고 엄마를 찾아와. 평소에 연락도 잘 안 하고 어느 순간을 집을 휑 나가버린 딸이. 엄마도 그렇게 풍족한 편은 아니야. 예전엔 교사였지만 수많은 직업을 거쳐 현재는 요양병원 보호사로 일을 하고 있지. 엄마는 딸의 제안을 거절해. 그리고 딸은 무턱대고 집으로 찾아와 얹혀살기 시작하지. 혼자도 아닌 자신의 연인을 데리고. 엄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딸의 연인은 남자도 아닌 여자야. 엄마의 속에선 천불이 날 수밖에 없지. 엄마는 평생을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삶을 살았거든. 남편의 죽음 이후 엄마 그 자신의 삶도 고단하기 그지없는데 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아.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에 살면서 스스로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투쟁을 벌이는 딸을 이해할 수 없어.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는 일이라 여겨진대도 엄마는 자신의 자식만큼은 그러지 않길 바라지. 다른 사람의 불이익을 위해 보증금까지 날리며 시위를 펼치는 것도 속이 타들어가는데 여자와 사랑을 하는 딸이라니! 하지만 딸의 연인은 딸보다 자상하고 세심하게 그녀를 보살펴. 딸이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지. 그래서 엄마는 혼란스러워. 무작정 내칠 수도 없어.


소설 초반엔 ‘엄마’ 임에도 그녀의 딸처럼 엄마에게 반감을 품었어. 나는 아무래도 딸과 비슷한 또래이니 세대차이 때문도 있겠지만 다 큰 딸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겠다는데 자꾸만 사회가 요구하는 강압적 질서에 편입되라고 재촉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딸을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게 그렇게 힘든 걸까?' 그러다 멍이 들어온 딸을 걱정하는 부분에서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됐어. 멍투성이로 살까 봐 엄마는 걱정했던 거야. 어린 시절 기대를 품을 만큼 똑똑한 딸이 나이가 들어서는 자꾸만 보편적 질서에서 한참이나 멀어져 있으니까. 자기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소수자의 삶을 사는 동안 얼마나 자주 부딪히고 멍이 들겠어. 몸이 다치면 병원이라도 가지 마음에 드는 멍은 보이지 않아 곪아 버리기 일쑤니까. 딸은 짜증을 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푸르댕댕한 딸의 얼굴이 엄마에게 아무것이 아닐 수가 없지. 제가 놀다 남아버린 작은 상처도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오래오래 들여다보게 되거든. 다들 그렇게 사니 나도 그렇게 산다 싶어 몰랐던 거지 사실 엄마도 부조리 앞에서 멍이 들어가고 있지. 그녀가 요양병원에서 돌보는 환자 ‘젠’을 대하는 주변의 태도에 엄마는 신경이 쓰여. 나는 남이고 그저 내 할 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사람들은 어쩜 이리 야박한지, 엄마는 겨우 고개를 돌리지만 그래도 뒤 돌아보는 사람이야.


소설을 덮고 나서 나도 모르게 웃게 되더라. 엄마는 여전히 딸을 이해하지 못해. 하지만 딸과 그 연인을 보듬어 새로운 가족을 이루지. 딸도 엄마한테 사근사근하지 않지만 예전처럼 무심하게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아. 얼굴을 붉혀도 어쨌거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충실히 자기만의 삶을 살면서. 후반부에 엄마가 ‘젠’을 위해 맞서고 해고당한 뒤 ‘젠’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토록 딸과 엄마가 닮았는지 놀라웠어. 딸의 투지와 정의감은 엄마에게서부터 온 게 틀림없었던 거야. 다만 각자 삶의 내용이 달랐을 뿐. 본질은 같았지. 그 엄마에 그 딸. 두 사람은 지옥처럼 싸워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화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삼각형의 점이 되어 서로를 지탱할 거라 믿어. 엄마도 언젠가 딸과 그 연인의 사랑이 가진 특이점이 아닌 그 안에 깃든 사랑이라는 본질을 깨닫게 되겠지. 사실 이해를 한다 해도 오해하는 게 사람이잖아. 이해는 가장 오만한 단어일지 몰라. 다만 중요한 것은 이해를 위한 노력 그 자체겠지. 모두들 그렇게 제자리를 지키며 손 놓지 않은 그 자체로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어. 앞으로 다가오는 어려움은 맞잡은 손으로 함께 이겨낼 테니.





우리에게는 어떤 갈등이 올까? 지금은 닳을까 없어질까 서로를 부둥켜안고 사랑을 말하지만 언젠가는 내 품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되겠지. 좋은 건 좋은 대로 나쁜 건 가차 없이 버리면서 너를 다듬어 나가겠지. 겸허한 마음으로 너의 성장을 지켜보겠지만 그래도 나의 말이 네 안에 많이 남아있으면 좋겠어. 이것도 욕심이라 여겨질 만큼 전혀 다른 사람으로 큰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삶의 철학이 변모해도 사랑이라는 가치는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너에게 건네는 말도 언젠가는 구시대적 가치관이 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본질 같은 것, 사랑만큼은 아낌없이 주고 또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사랑이 퇴색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널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삶은 정말 부단히도 배우고 가꿔나가야 함을 너를 통해 또 배워.




From. 너의 일이라면 세상 부지런해지는 게으름뱅이 엄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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