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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평생 오해하며 살겠지

(1) 한 여자와 딸에 대하여

by 존치즈버거


To. 친애하는 코튼 킴


“엄마도 부모님 몰래 불량식품 사 먹고 숙제 안 하고 만화책만 보고 그랬다고?” 너는 내가 망나니처럼 날뛰던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지. 그 놀라움에는 충격보다는 전에는 알지 못한 새로운 엄마를 만난 듯 설렘이 가득해. 학교 앞에서 뽑기를 하고 새벽에 산에 올라 최배달을 꿈꾸며 나무와 돌멩이를 손날로 쳐대던 일 등을 흥미롭게 여기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묻고 또 묻는 널 보면 그 시절이 시시하게만 흐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흐뭇해. 지금 네 나이 때 나는 무얼 했는지 어떤 만화를 즐겨 보고 누구와 놀았는지 시시콜콜하게 묻는 네가 전혀 귀찮지 않아. 누가 너만큼 나의 지나간 시절을 궁금해 할 수 있겠어?


때로는 평소 패턴과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할 때 으레 그 동그란 눈을 가만두지 못하고 나를 이리저리 살피는 널 보는 게 재미있어. 나의 흥미로운 관찰자. 많이 실수하고 때로는 엄마를 벗어난 한 인간의 밑바닥을 보이기도 하지만 너에게 여전히 나를 향한 질문이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를 향한 호기심만큼이나 나 또한 엄마 이상의 궁금한 존재로 네 옆에 남고 싶은 바람이야.




부쩍 많이 컸어.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던 모습에서 요즘은 제법 다 자란 아이의 얼굴로 매섭게 말대답을 하기도 하지. 그런 너의 모습마저 귀엽기 그지없지만, 언젠가 정말 쾅 닫힌 방문 사이에 그보다 더 두꺼운 마음의 벽이 생길까 괜스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마음이 교차하는 건 나도 그 시절을 겪어 봤기 때문일 거야. 지금은 용서할 수 있는 나의 실수도 훌쩍 커버리고 나면 고질적인 엄마만의 단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잖아. 나도 노력은 하는데 인간이라는 게 늘 완벽할 수는 없잖니. 지금은 엄마가 네 세상의 모든 것이자 되고 싶은 어른 여자지만, 나도 언젠간 그 왕좌를 다른 훌륭한 여성에게 내어주어야 한다는 걸 알아.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아.”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딸들의 말이 제발 네 입에서만은 나오질 않길 바란다는 점이지. 그만큼 나도 노력해야겠지.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여자라는 사회적 맥락 안에 속해 있는 우리. 어떤 날은 그 맥락 속 동지가 되어 공통의 문제를 논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날은 하나의 일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충돌하는 날도 오겠지. 실망하기도 하고 부딪기도 하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녀 관계를 만들어 내기도 하겠지. 그게 뭐든 잘 이겨내자.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물론 이해라는 건 언제나 나의 관점에서 가능하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생을 서로 오해하며 살겠지만. 이왕이면 이해와 최대한 맞닿아 있는 오해를 하기로 하자.


혹시 올지 모를 모녀간 전쟁에 대비해 오늘은 딸과 엄마가 등장하는 2권의 소설을 추천해볼게. 처음 볼 소설은 아니 에르노라는 이름의 프랑스 작가가 쓴 ⌜한 여자⌟야.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는 그렇게 대중적인 작가는 아닌 것 같아. 나도 그녀의 작품을 근래에 들어 보았으니까.




⌜한 여자⌟는 실제로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여의고 쓴 작품이야.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런 면에서 평전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사회학 서적 같기도 하지. 작가는 어머니가 계신 요양 병원에서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그녀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있었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작가는 힘든 시간을 보내. 그리고 3주가 지났을 무렵, 작가는 어머니의 삶에 대해 쓰기 시작하지. 항상 곁에 있어 너무나 익숙한 어머니, 태어난 그 시점부터 그저 어머니로 존재했던 한 여자의 일생을 딸이자 작가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어.


프랑스의 루앙과 르아브르 사이의 바람 부는 고원에 세워진 도시 이브토에서 어머니는 태어났어. 가난한 집에서 여섯 아이 중 네 번째로 태어났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않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곳에서 어머니도 4분의 3을 살았어. 사립학교를 다니는 여학생들을 조롱하고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 채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머니에게 그런 삶은 당연한 모습이었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 살면서 삶은 궁핍했지. 어머니는 늘 허기에 시달렸어. 학교는 교육을 받아 한 발 더 성장하는 곳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그저 시간을 때우는 곳. 그녀에게 더 중요한 건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꾸리는 것이 이었지. 실제로 어머니는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었어. 다만 그녀의 삶은 거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지. 대규모 공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삼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작가가 아는 지금의 ‘어머니’가 되지. 어머니는 많이 배우지 못하고 자신이 살아온 방식만을 고수했지만, 자신의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길 원했지. 물론 그녀는 기죽지 않았어. 스스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어. 다만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교양이 넘치는 우아한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어머니는 그녀의 공부가 끝난 후에도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 그야말로 한없는 희생.


작가는 자신과 성장배경이 전혀 다른 어머니와 충돌하며 커왔어. 어머니는 딸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자란 방식으로 딸을 대해. 막말을 퍼붓고 때리기도 하고. 장성한 작가는 자신과 비슷한 조건이지만 중산층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해. 전혀 다른 삶의 패턴, 어머니는 작가의 삶에서 잠시 퇴장했다가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고 얼마 뒤 다시 어머니와 마주하지. 그것도 매일. 어머니가 작가의 집에 얹혀살게 되거든. 자신의 몫을 행하기 위해 어머니는 열정적으로 살림을 해. 한없는 헌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그 이후의 치매. 어머니의 발병과 더불어 작가 또한 지치고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해. 그리고 요양병원에 간 어머니. 작가는 어머니를 자신이 돌보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나 여력이 없지. 그렇게 몇 해가 가고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미화하지도, 그저 가엽고 안타깝게만 그리지도 않아. 자신이 보고 들은 어머니에 대해 최대한 침착하고 담담한 어투로 서술하고 있지. 딸이기에 드문드문 연민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작가는 어머니라는 여자의 삶을 최대한 존중하며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가 자신을 다루는 방식에 끊임없이 대항하면서도 어머니와 똑 닮은 자기 자신을 미치도록 부끄러워. 어머니가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배워 어머니보다 몇 미터는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에도, 자신이 이제껏 먹고 입고 공부한 것이 모두 어머니가 번 돈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혼란스럽지. 책은 먼 과거의 프랑스에 살고 있는 모녀의 이야기를 쓰지만 그 속에 깃든 감정과 이야기는 나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의 것이었어. 그것이 탁월한 작가들의 위대함이겠지.




그녀의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하며 비로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지. 작가인 딸을 통해서. 이 점이 참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더라. 항상 그 자리에 어머니로 존재했기에 별 다른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여자. 난폭하지만 자식을 위해 모조리 헌신한 여자. 작가조차 이런 식으로 뭉뚱그려 표현했던 자신의 어머니.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를 위해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아마도 그녀를 주체로 만들며 진실에 가닿는 노력이었겠지. 그 어머니 생의 최고의 헌사가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해. 온통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가진 나에 대한 모든 지식을 모조리 쏟아붓고 거리를 둔 채 멀리 떨어져 나의 생을 조망한다라. 비록 작가의 어머니는 생명이 다 했지만 딸의 손에서 다시 새 생명과 이름을 얻었지. 어머니가 아닌 한 명의 여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통한 영생만큼 더 생생한 부활이 있을까?


작가의 기억과 회상을 통해 어머니 자신이 절대 대중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치부들이 드러나기도 했겠지만, 작가의 말처럼 어머니의 모난 부분을 개인의 특색이 아닌 그 당시 신분과 상황과 연결하려는 노력으로 인해 어머니는 오히려 우리에게 이해받을 수 있게 되었어.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자신의 무언가를 말할 때 말을 고르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처럼 작가 또한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어머니 그 자체를 우리에게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기구한 사연이나 어머니를 목놓아 부르는 작가의 애절한 목소리 없이도 이 책은 충분히 어머니라는 불변의 향수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지.




훗날 내가 없어진 자리에 남은 네가 어떤 모습으로 나를 그려낼지 궁금해. 나는 너에게 어떤 여자이고 어떤 엄마이며 또한 어떤 인간으로 그려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한없이 포기하고 싶은 마음들을 다독이고 있어. 설령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끝을 맞이 한대도, 적어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자신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으로 나를 기억해준다면 충분한 것 같아. 지금처럼 항시 붙어사는 동안에는 잔소리도 많이 하고 허둥지둥 대고 잘 놀라고 주말이면 맥주를 홀짝이는 엄마로만 기억될지도 모르지만.


사랑과 이해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감싸며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자. 나의 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도 나는 너라는 인간이 참 좋아. 내가 가지지 못한 살가움, 타인을 향한 배려, 사람을 웃게 만드는 능청, 누군가의 지적에도 웃어넘길 줄 아는 아량이 너에겐 있어. 너에게도 너만이 아는 나의 장점이 있겠지? 그 좋음을 많이 보고 서로에게 매일 키스해주자, 지금처럼, 언제나.


그럼 다음으로는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읽어 볼까? 이건 ⌜한 여자⌟와 반대로 딸을 이해하려는 어머니의 시선이 담긴 작품이야. 내 몸으로 낳아 내 손으로 기르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딸이 나와 이토록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한탄하는 어머니가 등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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