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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소환

by 존치즈버거


천장에 단단히 넥타이를 고정시킨 그는 보이스카웃 시절 배운 매듭 묶기 방법을 이용해 올가미를 만들었다. 의자 위에 올라 까치발로 넥타이 구멍에 자신의 목을 넣고 잠시 숨을 골랐다. 한때는 가족이 오순도순 살았던 집안에는 냉기만이 감돌았다. 남자는 물끄러미 바로 앞 거울 속 자신을 응시했다.


“아쿠아쿠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스스로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죽기로 결심한 마당에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외우려는 그 자신이 어느 때보다 한심했다. 그러면서도 리딩방과 유튜브, 롤렉스를 차고 페라리를 몰던 사기꾼에게 혹해 주택담보대출로 주식에 전 재산을 꼬라박고 그도 모자라 손실 회복을 다짐하며 횡령했던 지난날의 과오가 있는 자신이 죽기 직전에 주문 한 번 외워 본다고 뭐 얼마나 더 명예가 실추될 것인가 생각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끝낼 판인데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는, 얼마 전 종토방에서 본 악마 소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평소 암기력이 모자란 그였음에도 이상하게 멍청한 그 주문만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본 대로 천천히 주문을 읊으며 손가락으로 세모와 네모 그리고 원형을 연달아 만들었다.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아이디 폭행몬스터의 글을 기억하며.


몇 분인가 주문을 외웠을까 갑자기 땅이 우지끈 갈라지며 거대한 연기가 집안을 메웠다.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상황을 파악하려는데 검은 슈트를 입은 거대한 형상 하나가 그 앞으로 다가왔다. 꽃샘추위를 실어 나르듯 날카롭고 거친 바람을 내뿜으며.


“그대가 나를 불렀는가?”


남자는 침을 꿀떡 삼켰다.


“네, 맞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다는 글을 봤을 때 그 또한 비웃지 않은 게 아니다. 세상 미친 소리는 다 있다고 한심하게 여겼으면서도 어쩐지 종토방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이 그의 길티 플레저가 되어버렸다. 그 글에는 글쓴이를 조롱하는 수많은 악플이 달려있었음에도 글을 쓴 사람만은 진지하게 모든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 자신이 경험자라는 간증을 남긴 터였다.


‘혹여라도 정말 그런 일이 생기길 바라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막다른 곳에 다다랐을 때 이 방법을 써보십시오. 비록 악마가 영혼을 저당 잡기는 하지만 빚보다는 할까요.’


악마가 조용히 남자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으윽, 으윽하는 신음과 함께 그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허공에 펼쳐졌다. 스캔을 마친 악마가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예사롭지 않은 욕망을 가졌군.”


남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악마를 바라보았다.


“준비되었나 가여운 영혼이여!”


“네.”


죽기로 결심했으면서도 막상 악마를 보자 이 모든 게 죽기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깟 영혼 좀 저당 잡히면 어떠나 어차피 이대로 살아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사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내를 잘 구슬려 그녀 소유의 아파트만 정리하면 될 일. 악을 써대며 남자의 머리채를 쥐어뜯겠지만 가족이라는 게 무엇이냐. 하지만 밀린 세금과 빚을 정리하면 그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0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횡령에 대한 의심의 화살이 그에게 쏠리는 지금 모든 것이 탄로 나면 재기는커녕 감옥에서 일생을 마감해야 할지 몰랐다.


악마는 허리춤에 감추었던 거대한 두 손을 그의 앞에 꺼낸 뒤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마어마한 섬광이 그를 감쌌다.


‘그래,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새 인생을 사는 거야! 이왕이면 시간을 좀 돌려 달래서 놓친 종목들을 쓸어 담아야지.’


“엥?”


순식간에 사라진 빛. 치명적인 냉기가 갑자기 사그라들었다. 그가 눈을 뜨자 악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런, 이런. 안타깝게 됐군. 아무래도 자네의 영혼은 내게 팔 수가 없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없어.”


“뭐가요?”


“영혼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다 영혼이 있지 않나요? 저 아직 살아있는데.”


“그렇긴 한데 자네는 이미 다 써버렸군.”


“제가요?”


남자는 빠르게 과거를 반추했다. 도무지 영혼을 어디에 썼다는 걸까? 와이프를 사랑하긴 했지만 영혼을 바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 밖에 다른 여자들도 좋은 추억이 있긴 했지만 딱히 영혼을 내어줄 정도로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영혼을 바쳐서 자신이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있었나 고민하던 중 불현듯 그를 스치고 간 생각.


“설마?”


그의 머릿속을 이미 읽어 내린 악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요?”


“그래.”


“세상에. 그건 그냥 비유 아니었나요? 영혼까지 끌어 모아 아파트를 산다는 거. 아니, 악마님, 아니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겨우 아파트 하나에 제 영혼이 다 소진됐다고요? 다른 방법은 없나요?”


남자는 생애 가장 망연자실한 얼굴로 악마를 바라보았다.


“그럼 난 가보겠네.”


남자는 넥타이에 목이 걸린 채로 악마를 향해 손을 휙휙 뻗었다.


“제발, 말씀해주세요. 오신 김에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잖아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악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가 디딘 의자의 다리를 톡 쳤다. 악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그의 다리가 허공에서 나부꼈다. 마치 세상사 아무 욕심도 없는 가뿐한 방랑자의 춤사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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