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오빠가 내게 처음 말을 걸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아침부터 세차게 봄비가 내렸다. 나는 그 전에도 여러 번 오빠를 본 적이 있다. 오빠는 우리 집 바로 위층에 살고 있었다. 이사 온 지 몇 달이 다 되어갔지만 떡을 돌리지도 않았고 반상회에는 언제나 벌금으로 참석을 대신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나는 엄마와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종종 엘리베이터에서 오빠를 보았다. 오빠는 엄마를 보면 항상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지만 엄마는 현관문이 닫히면 오빠를 비리비리한 남자애라고 불렀다. 그 말에는 묘한 악감정이 서려있었다. “위층 여자가 밤에 택시에서 내리더라. 서류 가방을 들고 빨간 원피스를 입었는데 지나갈 때 술 냄새가 났어.” 엄마는 귀신 이야기라도 들려주듯 낮고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엄마의 전문분야는 헌신적인 주부였고 남편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 굴지의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아빠, 남편과 자식에게 희생하며 충실하게 가정을 가꾸는 엄마, 말을 잘 듣고 말썽을 일으키는 법이 없는 딸, 신도시의 아파트, 엄마의 여가와 아빠의 서재. 사람들은 우리 집을 부러워했고 실제로 자주 부럽다는 말을 했다. 마음속 말을 모조리 내뱉는 고모들도 엄마에게만은 관대했다. 고모들은 “올케 같은 여자 없다.”며 추켜세우기 일쑤였다. 아빠는 고모들이 엄마를 칭찬할 때마다 눈을 감고 코로 크게 숨을 뱉었다. 그때마다 나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올케가 아들 없는 거 그거 하나 흠이지, 지 남편 단도리하는 거 봐라. 얼마나 야물딱지노. 쟈 사람 만들어 준 게 다 올케 덕 아이가.” 이런 말들이 흘러나올 때쯤이면 아빠는 이미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민수 엄마는 우리 옆 옆집에 살았다. 아파트의 엄마들은 대부분 전업 주부였고 입주 동기라는 단어로 결속력을 다졌다. 낮이면 복도식 아파트의 입구가 환히 열렸다. 그때는 환기하거나 마늘을 까거나 이불을 털기 위해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는 일이 흔했다. 민수 엄마는 문이 열려 있으면 무턱대고 고개부터 들이미는 스타일이었다. 정만큼 말도 많았고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니는 타입이었다. 엄마는 민수 엄마를 종종 귀찮아했지만 일단 집에 들이면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민수 엄마는 우리 엄마를 단짝이라고 불렀지만 정작 엄마는 민수 엄마를 자신의 모임에 초대하지 않았다. 제 엄마를 닮아 넉살이 좋은 민수 오빠가 내 앞에서 장난을 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 떼어놓았다. 그리고 돌아서며 졸부집 자식이라 그런지 본 데 없이 커 저런다고 혼잣말을 했다. 엄마는 민수 엄마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검지로 관자놀이를 살살 굴리며 눈을 감았지만 민수 엄마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이웃에 전해지는 것에는 늘 미소를 띠웠다.
엄마는 집에 있을 때 아침 드라마를 보기도 했고 깔깔 편지라는 이름의 코너가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기도 했지만 아빠가 집에 오면 항상 겨우 들릴 듯 말 듯 할 정도로 티브이를 켜놓았고 그마저도 지루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거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이 잦았다. 아빠는 사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무거운 정적을 깨뜨릴 만큼 천진한 아이가 아니었다. 아빠는 집에 돌아오면 나와 대화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애정이 느껴지기보다 의무적이었다. 자상하고 좋은 아빠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내가 이상한 대답을 해도 아빠는 다정한 미소만 보일 뿐 훈계를 한다거나 교정을 해주지 않았다. 아빠는 고단해 보였고 나는 함부로 말 걸지 않는 것에 익숙해있었다. 사춘기 아들의 방문처럼 아빠의 서재는 언제나 꽉 닫혀 있었고 방문 아래 작은 틈으로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불빛만이 아빠의 존재를 증명했다. 엄정한 경계처럼, 나와 아빠를 구분 짓는 그 빛을 나는 감히 넘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와 보내는 대부분의 일상은 엄마의 기분을 위주로 돌아갔지만 아빠가 집에 오면 엄마는 홈드레스를 차려 입고 티브이에 등장하는 중년 배우들처럼 자세를 꼿꼿하게 유지했다. 엄마는 아빠를 위해 신선한 재료들로 식사를 만들고 목욕물을 받아놓고 몸에 좋은 건강보조제를 준비했지만 거기에는 어떤 애정이라기보다는 수술실의 간호사와 같은 사명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겼고 그 말들 속에는 우리가 가져본 적 없는 행복과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엄마의 말속에서 아빠는 점잖고 예의 바르고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얼굴이 빨개지면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 노력했다. 내가 아직 어려서 알지 못하는, 엄마만이 알 수 있는 어른의 시각이 있다 생각하려고. 어쩌면 엄마와 아빠는 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면 자신들끼리 밖으로 놀러 나가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의 말을 속삭인다고 상상하면서.
호수 오빠가 처음 말을 걸어준 날, 엄마는 집에 없었다. 엄마는 미리 아침부터 열쇠를 챙겨 내 가방에 넣어 주었다. 학교가 끝나면 곧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오실 거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그날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얻은 것에 기뻐하며 놀이터로 나가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 저 멀리서 남자아이들이 다가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렸다. 아이들은 나무 막대기로 내 주변에서 그림을 그렸다.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다 내 옆으로 한 아이가 왔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 바로 옆에서 철퍽 물을 튀겼다. 나는 얼음처럼 서서 아이가 발을 구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밀었다. 새로 산 우비의 앞부분에 모래 덩어리가 뭉쳐 있었고 손바닥이 시커멓게 더러워졌다. 내 얼굴이 일그러지자 여러 명의 아이들이 주변에 몰려 같이 발을 굴렀다. 마치 나를 울리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무언가에 찍혔는지 손바닥에서 가늘게 피가 빗금을 그었다. 오빠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때까지도 발을 구르던 아이들 탓에 오빠의 교복에도 흙탕물이 흘러내렸다. “하지 마.” 오빠의 말에 아이들이 코웃음을 쳤다. “왜요? 우리끼리 지금 신나게 놀고 있는데.” 오빠가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일부러 그러는 거 다 알아. 하지 마.” 아이들은 어깨를 들썩했다. “같이 논 거예요, 그냥. 너도 재밌어했잖아.” 오빠가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지그시 말했다. “지금 이 아이 얼굴을 봐. 이게 재미있는 일 같아?” 아이들은 조금 경직된 자세로 피-하고 콧소리를 내며 자리를 떴다. 오빠의 손이 내 어깨 위에 닿았고 “괜찮아?” 하고 물었을 때 비로소 울음이 터졌다.
오빠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타올로 나의 두 손을 닦아주었다. 집 구조는 동일했지만 오빠 집에서는 우리 집과는 다른 냄새가 났다. 어떤 향기 같은 것. 커튼이 쳐져 있었고 기다란 스탠드 불빛만이 공간을 메웠다. 오빠는 우비를 샤워기로 씻어 주고 장화도 씻어 드라이기로 말려주었다. 빨갛게 부어오른 손바닥이 조금 까져있었다. 오빠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날 엄마는 비에 젖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잔뜩 성이 난 사람 같았고 몸에서는 매운 냄새가 났다. 엄마는 연고를 발라 밴드를 덧댄 내 손을 보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왜 조심하지 않았냐는 질책이 이어졌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위로는 충분히 받은 뒤였다. 엄마는 피아노 레슨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눈알을 굴렸고 내가 호수 오빠네 집에 간 것이 마치 모두 그 때문인 것처럼 크게 성을 내며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무지막지한 해고 통보를 했다. 나는 오빠의 집에는 영어로 된 책이 많았고 좋은 향기가 났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날 저녁 아빠와 엄마는 말다툼했다. 아빠는 엄마를 지독하다고 비난하며 소리쳤고 엄마는 장성한 아들을 타이르듯 다 널 위해서라고, 모든 게 다 널 위해서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 이후로도 그렇게 아빠의 여자들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고 일이 종종 있었다.
오빠는 나를 보면 알은체를 했다. 손이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중이 초등학교. 이제 4학년.”
엄마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려 애써 웃으며 호수 오빠에게 신경 써줘 고맙다고 말했다. 오빠는 엄마에게 아직 신원이 불분명한 이방인이었다. 나는 그것이 오빠의 엄마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자신처럼 살길 바랐다. 아이만 놔두고 일을 나갈 거면 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을까, 어려운 퀴즈를 앞에 두고 머리를 굴리는 사람처럼 누가 묻지도 않는데 혼자 심각하게 고민했다. 엄마는 아이들을 텅 빈 백지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칠해주지 않으면 무색무취로 소외되는 가여운 존재들.
엄마가 알아서 먼저 오빠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역시나 말이 많고 알리기 좋아하는 민수 엄마가 있어 가능했다. 민수 엄마는 자기의 아들을 통해 들었다며 호수 오빠가 입학시험에서 전교 1등을 차지했고 월말 평가에서 전과목 모두 백점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학교에서 모든 선생이 호수 오빠를 주시하고 있다는 말도 함께. 그날부터 호수 오빠 또래의 자녀를 가진 엄마들은 호수 오빠에게 관심을 보였고 호수 엄마를 궁금해했지만 오빠의 엄마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늦은 밤 창백한 얼굴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담들이 은밀한 소문처럼 퍼졌다. 호수 엄마는 대충 인사하는 사람이었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만큼 젊어 보인다고 했다. 엄마답지 않다는 말이 불경스러운 이야기라도 되는 냥 아줌마들은 그래도 자식이 똑바르다고 재빨리 입을 모았다. 엄마는 어느 날 오빠네 우편함을 뒤졌다. 월말이 다가와 고지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엄마는 그제야 뭔가 깨달은 사람처럼 “그러면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다. 위층에는 아빠가 없다고 저 여자는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딱한 얼굴로 말하면서.
엄마가 장을 봐온 다음 해물탕을 한 솥 끓였다. 보기에도 우리 가족이 다 먹기엔 벅찼다. 엄마는 작은 냄비에 그것을 소분해 내 손에 들려주었다. “위층에 가서 줘. 너 아직 그 오빠한테 고맙다는 말도 안 했지?” 엄마는 나를 나무라듯 말했다. 벌써 한 달이 지난 일이었다. 엄마가 도끼눈을 뜨고 오빠를 쳐다보지만 않았다면 나는 벌써 오빠에게 고맙다고 말했을 것이다. 떨리는 가슴을 숨기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자주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그 나이 때 남자들은 제 멋대로 구긴 종이 뭉치처럼 어지럽게 무리를 이뤄 다니며 골목에서 공을 찼다. 오빠는 언제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터덜터덜 혼자 걷고 있었다. 오빠가 하교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엄마는 나를 시켜 위층으로 보냈다. 오빠는 거의 매번 초대에 응했다. 오빠는 조근조근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타입이었다. 엄마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법이 없었다. 생각과 달리 유들유들한 구석이 있었고 엄마는 “홀어머니 밑에 자란 아들들이 보통 저렇게 딸 같더라.”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현관문을 활짝 열고 오빠와 식탁에 마주 앉아 김이 모락모락 서린 찐빵과 옥수수를 간식으로 먹었다. 가끔은 소면으로 잔치국수를 말아주기도 했다. 오빠는 젓가락질이 서툴렀다. “혼자 먹어 버릇해 제대로 못 배웠구나.” 엄마는 처음 글자를 배우는 아이를 가르치듯 오빠 등 뒤에서 손을 맞잡고 친절하게 손 모양을 교정시켜 주었다.
아파트의 엄마들은 자기 아이도 호수 오빠와 친해지길 바랐다. 내가 오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민수 엄마는 흘겨보며 “친구들이랑은 안 놀면서 오빠는 또 좋아하나 보네. 어린 게 벌써부터 끼가 많네.”하고 말했다. “어머, 애한테 무슨 그런 농담을…… 호수는 다른 사내애들하고 달라. 우리 나영이를 얼마나 친동생처럼 예뻐한다고. 내가 요새 호수 덕분에 마음 놓고 일을 볼 수 있다니까. 공부 가르쳐줘 같이 놀아줘, 뭐 우리 나영이가 착하고 정신 사납게 까부는 구석이 없으니 걔 입장에서도 편하겠지.”하고 엄마가 응수했다. 엄마는 자기의 바람을 사실처럼 말했다. 정작 다른 아이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 새끼 는 혼자 놀아. 우리랑 상대 안 해.” 엄마들은 난처한 미소를 지은 뒤 복권에 떨어진 사람들처럼 풀 죽은 콧방귀를 뀌어댔다. 엄마는 가끔 복도 난간에 몸을 걸치고 큰 목소리로 오빠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그 집 여자는 무슨 복을 그렇게 타고났다니. 엄마가 애한테 별 관심도 없어 보이던데 걔는 어쩜 그렇게 척척 1등을 하고 상까지 받는다니.” 엄마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푸념하는 사람처럼 턱을 괴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오빠가 반드시 과외 하나쯤은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빠는 혼자 공부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사실을 알자 엄마는 김이 빠진 콜라를 마시듯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오빠는 본래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고 자기 입으로 쑥스럽게 말했다. 암기과목은 몇 번 휙휙 보면 외워지고 수학도 공식만 이해하면 그 후부터는 자연스럽게 대입이 가능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우월한 영역이 있다는 것이 마냥 부러웠다. 그리고 조금 더 후에, 오빠에게는 본래 타고난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을 할 때 오빠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고 말끝을 흐렸다.
롤링스톤즈, 듀란듀란, 마돈나 그리고 셰어. 푹신한 헤드폰을 귀에 끼고 음악을 들으며 오빠에게 ‘관능’과 ‘밀도’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배웠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나는 오빠를 따라 수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오빠는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와 공연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도 보여줬다. 팝의 역사와 대중문화에 대한 해석은 엄마에게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영역이었다. 엄마는 그런 것들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었다. 오빠는 자기 방 한 구석 커다란 상자에 숨겨놓았던 자신의 취미 생활을 나와 공유했다. 엄마라면 모조리 폐기처분했을 갖가지 구슬이며 태엽 로봇이며 조립 완구들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우리는 구슬을 실에 꿰어 놀다 아줌마의 옷을 입고 패션쇼를 하고 만화를 보다 빙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아줌마의 옷장에는 세상에서 제일 영롱한 색들만을 뽑아 염색한 것 같은 스카프와 알록달록한 장신구들이 즐비했다. 오빠는 학교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 그곳은 그저 아주 따분하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그 말은 진심같이 느껴져 안심할 수 있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오빠의 엄마를 만난 적도 있었다. 평일 오후였고 아줌마는 중요한 서류를 찾으러 잠시 집에 들렀다. 어질러진 옷가지와 과자 부스러기에는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면서도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줌마는 어른을 대하듯 내게 악수를 청했고 오빠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미끄러지듯 허리선을 타고 내려오는 원피스 자락으로 오빠가 처음 말 걸어 준 날에 맡았던 향수 냄새가 났다. 아줌마는 내게 몇 등을 하냐거나 부모님의 직업 같은 것은 묻지 않았다. 내 눈이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었고 또래보다 키가 크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나가면서 오빠에게 입을 맞춰주었다. 꽉 끌어안았다. “나의 전부.” 나는 쓸쓸하게 그 자리에 서서 오빠와 오빠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애쓰는 흔적 없이 자연스럽게 아줌마의 등 뒤로 감기는 오빠의 두 팔을 보자 처음으로 내가 오빠와 아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위층으로 놀라가는 날이 늘었다. 나는 학습지를 핑계로 오빠의 집에 한달음에 달려갔고 돌아오면 오빠와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다시 학습지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는 그 풀이 과정에 어떤 편법이 개입했는가에 의문을 가지는 대신 연달아 이어지는 빨간 동그라미를 자신이 키운 씨앗의 과실처럼 탐스러워하면서도, 성실한 직원처럼 오빠 집에 출근도장을 찍어대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그래도 남자앤데.” 석연치 않은 표정이 가시지 않았지만 별다른 반대가 없었던 건, 그즈음 엄마에겐 시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혔다. 엄마는 점점 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아침이면 푸석한 피부를 매만지며 멍하니 식탁에 앉아 있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아빠가 출장을 떠났다고 나서서 말하기도 했다. 엄마는 모임도 나가지 않고 민수 엄마의 방문을 매번 거절했다. 상기된 엄마의 얼굴을 보고 민수 엄마는 혹시 둘째가 생긴 것 아니냐며 입꼬리를 올렸다. 엄마는 따라 웃었고 그때 꽉 다문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문이 닫히면 소파에 드러누웠다. 엄마를 위해 무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서성거릴 때면 엄마는 말했다. “나 좀 쉬고 싶다. 호수네라도 가 있어.” 나는 쭈뼛 고개를 끄덕이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런 날이 며칠 계속됐다.
하필이면 비가 내렸고 어둠이 일찍 찾아왔다. 천둥이 치고 엄마의 입에서는 낮게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서 엄마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조심스럽게 이마에 손을 대자 열이 심하게 났다. 호들갑 떨지 말라는 신경질 섞인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엄마는 계속 뒤척일 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고 초침 소리만 크게 울렸다. 밤새도록 엄마의 신음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빗줄기가 점점 더 매섭게 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살며시 문을 열고 복도에서 조금 망설였다. 민수 엄마의 수다는 엄마를 진정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거침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몇 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꽤 늦은 밤이었고 나는 예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하얀 면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심드렁한 얼굴을 한 오빠의 얼굴이 나타났다. 오빠는 홀로 있었다. 어른에게 지금 나의 상황을 설명해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심되었다. 나는 무턱대고 오빠의 손을 끌고 집으로 갔다. 우리 집에 들어선 오빠는 잠시 머뭇거리다 차갑게 젖은 수건을 엄마의 머리에 얹어주고 귀신같이 구급상자를 찾아내 진통제 몇 알을 건네주었다. 오빠의 손이 지렛대가 되어 엄마의 몸을 일으켰다. 엄마는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약을 삼켰다. 오빠는 아빠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나의 말에 등을 한 번 토닥여주며 집을 둘러보았다. “잠시만.” 그리고 성큼 걸어 서재의 문을 열었다. 나는 안 된다는 말도 하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책상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오빠는 똑같은 이름의 명함이 수 십장 쌓인 작은 상자를 하나 찾아냈다. “이름은 맞는데…….” 나는 그날 처음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나른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울음을 터졌다. 오빠는 손을 잡아주며 내내 등을 쓸어주었다. 그날 밤 아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확신 없이 그랬나? 하며 반문했다. 나는 오빠가 한 일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자랑스럽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탄식을 허공에 내뱉더니 더 말이 없었다. 나는 감사의 표시로 무어라도 나누어 줄 거라 생각하고 저녁까지 기다렸지만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홀로 앉아 몇 번 도리질할 뿐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오빠는 엄마를 향해 늘 그렇듯 깍듯한 인사를 했다. 엄마는 잘못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을 한 번 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눈을 감고 자책하듯 혀를 찼다. 그날 이후부터 엄마는 더 이상 큰 소리로 오빠를 부르지도 않았고 집으로 들러 무언가를 먹고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멀리서 보이면 금방 다른 일을 하는 시늉을 했고 오빠가 등 뒤에서 먼저 인사하면 과장된 말투로 “어, 그래 너구나. 못 봤네.”하고만 말했다. 내가 위층에서 놀다 오면 지령받은 스파이처럼 낮은 목소리로 오빠가 무슨 말 안 하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반응이 매번 당황스러워 우물쭈물거렸다. 뒤돌아 뭐라 하건 사람을 앞에 두고는 예의 차리기 좋아하는 엄마가 오빠에게만은 왜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지 마음 한 편에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엄마가 오빠를 멀리하는 것과 달리 오빠는 부쩍 나를 챙겨주는 것이 느껴졌다. 그 전에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노래를 따라 불렀지만 오빠는 엄마와는 조금 더 다른 의미로 내게 조심스럽게 대했다. 자주 기분이나 학교생활에 관해 물었고 아침에 아빠 나가실 때 인사했냐는 정도로만 질문하며 그 부재를 확인하기도 했다. 가끔은 먼저 와서 나를 찾았다. 그때마다 엄마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엄마와 아빠는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처럼 심하게 흔들리는 날도 있었지만 안간힘을 다하는 엄마 덕에 추락은 막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오빠는 수학과 과학경시대회에 나가 금상과 은상을 타고 학교 앞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걸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엄마의 불편한 기색도 차츰 지워져 갔다. 여름방학이 오자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그 시간만큼 우리 사이에도 많은 비밀들이 쌓여 갔다.
“기도하자.” 나는 물끄러미 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는 거실 장스탠드의 불을 켜고 따뜻한 코코아를 만들어 주었다. 스탠드 갓이 만드는 빛의 웅덩이 아래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아빠가 엄마의 목을 조르는 것을 나는 정확히 보았다. 싸움은 갑자기 일어난 것 같았다. 누가 보아도 상관없다는 듯 안방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반듯이 누운 엄마 위에 짐승처럼 올라탄 아빠가 엄마의 목을 두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두 눈을 아무리 비벼도 여전했다. 엄마의 신음은 좁은 굴을 가까스로 통과한 길고양이의 울음과 닮아있었다. 얼음장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자 아빠가 황급히 다가와 내 양 어깨를 붙잡았다. “꿈이야. 너 지금 꿈을 꿨어.”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아빠는 이미 출근을 하고 없었다. 엄마는 목에 짧은 스카프를 두르고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엄마랑 있자. 아무 데도 가지 마.” 하지만 나는 엄마가 낮잠을 잘 때 조용히 위층으로 왔다. “오빠 교회도 다녀?” 오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렇지만 간절히 기도를 하면 그게 어떤 신이든 상관없이 닿지 않을까? 정말 간절히 기도하면?” 나는 엷게 웃었다. 퉁퉁 부은 눈가를 손바닥으로 비비자 진물이 묻은 듯 손이 끈적였다. “나는 기도할 줄 몰라. 오빠가 해 봐.” 오빠는 두 손을 맞잡았다. 눈을 감았다. 입술에 힘을 주고 요리조리 움직이더니 입을 열었다. “엄마가 아빠를 미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서 다시 아빠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 나도 따라 기도했다. “내가 엄마를 미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오빠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가 미워?” “응.” “왜?”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모든 색깔을 섞으면 결국 검은색이 되듯이 내가 엄마에게 지닌 감정들도 그랬다. 미워, 이 한 마디만 하고 나면 목구멍에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올라오듯 자꾸 아려와 다른 말을 더 할 수 없었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빠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기도했다. “우리 엄마도 나영이 엄마도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힘들어서 그럴 거야. 힘드니까 자꾸 마음과 다른 말과 행동이 나오는 거야. 엄마가 행복해지면 너도 엄마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내가 혼자 있을 때도 기도해줄게.”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의 손이 내 손 위에 겹쳐졌다. 나는 무거운 짐을 덜어내듯 불빛 아래 차곡차곡 고백을 쌓아나갔다. 오빠는 고백이라는 말로 가장한 나의 두려움과 불안을 가만히 들어주고 가끔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쩌면 오빠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비밀을 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란 눈의 검은 머리를 가진, 나보다 한 살 어린 오빠의 동생 루시. 새하얀 목덜미를 가지고 쉬는 시간에도 공부에 열중하는 남오. 나는 오빠를 통해 이복동생이라는 단어를 배웠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었다.
복도에서는 더운 바람이 불었다. 나는 사뿐 뛰면서 오빠와 떨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오빠는 장난스럽게 내 머리를 흩뜨렸고 내 어깨를 잡고 폴짝거렸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즐거웠고 내가 알 수 없는 나의 남은 생들도 이런 식으로 견딜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들었다. 그때의 아이다운 웃음이 기억난다. 대충 본 시험 성적을 확인하듯 우리 집 문 앞에 서니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았다. 오빠는 내 손을 한 번 잡아주었다. 뻥 뚫린 복도에 침묵이 웅얼거렸다. 벌써 밤이었다. 나는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문은 잠겨있었다. 오빠가 초인종을 눌렀다. 구걸하기 위해 남의 집 문을 두드리듯 갑자기 가슴이 콩닥거렸다. 이윽고 엄마가 나왔다. 어두운 얼굴이 조금 환해지는 것 같다가 다시 무표정해졌다. 엄마의 목에 있는 스카프는 낮에 본 그대로였다. 오빠는 엄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인사를 했다. 기어코 그 눈 아래를 쳐다보지 않았다. 오빠가 예의를 갖추기 위해 경직된 시선과 애쓴 미소로 엄마를 바라보는 사이 엄마의 얼굴은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져 갔다. 엄마가 남들의 마음을 읽듯이 내 마음을 잘 읽어주었다면 지금 우리는 조금 더 가까운 사이로 남을 수 있었을까? 엄마는 내 손을 잡아끌어 훔치듯 현관 안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오빠에게 아무런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문은 세차게 닫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내 심장은 점점 크게 엉성한 리듬으로 박동을 이어갔다. 엄마는 한동안 말없이 가죽소파 위에 몸을 비비며 긁는 소리를 냈다. “호수한테 무슨 이야기 했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답을 얻어내려는 단호한 말투였다.
비밀과 고백은 상대의 상처를 해독하는 다정한 약이 되기도 했지만, 자신의 모욕을 씻기 위해 타인을 모욕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그것은 그저 상대의 약점으로 소모될 뿐이었다. 이성을 잃은 엄마를 앞에 두고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요구에 최대한 따르는 일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영락없는 엄마의 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받아들이기 위해 늘 담담하게 굴었다. 감정과 사실과 나를 분리하기. 그럴 때면 내 몸이 영혼의 집이 된 듯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감정에 질감을 부여한 뒤 그것을 구겨 발아래로 굴리는 상상을 했다. 길가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처럼, 구겨진 내 영혼의 일부도 어딘가로 툭 굴러갈 것 만 같았다.
정리해고 1순위라고 오빠가 지나가듯 말하는 것을 들었었다. 호수 엄마는 그날도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아슬아슬하게 걷는 호수 엄마를 붙잡고 다짜고짜 ‘당신 아들내미’라는 단어부터 들이밀었다. 나는 복도 끝에 비상계단 쪽에 붙어 숨을 죽이고 대화를 엿들었다. “죄송한데요, 제가 오늘 너무 피곤해서요. 내일 다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호수 엄마의 발음이 조금 어눌했다. 엄마는 아줌마의 피곤함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다시 용건을 말했다. 호수 엄마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몇 번의 실랑이 같은 대화가 오갔다. 호수 엄마의 얼굴에는 난처함과 피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으이그. 애 엄마가 이 모양이니 아들이 그러지. 엄마가 집에서 정신머리 붙들고 있었어 봐, 애가 그러나. 아들이 공부만 잘하면 뭐해? 인성이 돼야지, 인성이.”
엄마의 말에 아줌마가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두 손으로 넘기더니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늘 누군가를 욕했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사람을 모욕 주는 경우는 없었다. 엄마는 호수 오빠의 엄마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사람처럼 막무가내였다.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자기 아들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나 봐?”
“아래층 사시는 분 맞죠? 나영이 어머니. 저희 애가 밤에 뛰기라도 했어요? 음악을 크게 틀었나요? 아니면 어떤 실수라도 한 건 가요? 그랬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일단 죄송해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다짜고짜 말씀하시면…….”
“호모새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엄마가 조금 더 완곡한 표현으로, 조금 더 예의 바른 태도로 그 말을 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엄마를 경멸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빠의 여자들에게 하듯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면서.
“네 아들 호모라고. 남자 좋아하는 호모새끼. 아직 중학교도 안 간 우리 애를 붙잡고 네 아들이 그렇게 지껄였다더라.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이건 아니지. 우리 애가 그 더러운 말을 듣고 어떻게 살 수 있겠어. 세상에 그렇게 더러운 소리가 어디 있어? 어떻게 책임 질 거야? 순진한 애 꾀어서 과자니 뭐니 주면서 우리 애 데리고 네 아들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고?”
엄마의 말이 복도를 타고 낮게 울려 퍼졌다. 나는 구겨 신은 운동화가 벗겨지는지도 모르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뒤에서 엄마를 안은 손이 떨렸다. 복도에 난 창으로 고개를 내미는 사람들이 보였다. 엄마가 내 팔을 풀듯 몸을 한 번 세차게 흔들고 다시 한번 그 말을 하려는 찰나 호수 오빠의 아줌마가 스르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샥샥. 소문을 빨아먹는 이웃의 창문 소리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잠시만요.” 한 손을 쫙 펴서 엄마 앞에 갖다 대고 잠시만요, 잠시만요, 그러다가 아줌마는 무릎을 꿇었다. 잠시만요. 그렇게 유예된 시간을 비집고 오빠가 문을 열었을 때 오빠의 엄마는 내 키와 비슷한 눈높이에 머물러 있었다.
“가자, 엄마 일어나, 어서, 들어가자, 어서.” 오빠는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자신의 시야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시선을 회피함으로써 두 눈으로 툭 나를 밀치고 아줌마의 어깨 죽지에 손을 집어넣고 안간힘을 썼다.
“어유, 어유 참 나. 어유.” 엄마의 입에서는 끔찍한 탄성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의 뒤에 있는 내 팔을 낚아채듯 잡아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나 부끄러운 줄 아니? 얼마나 수치심을 느꼈을지 알아?” 나는 그때까지도 그것이 엄마 자신에 대한 말이었는지 호수 오빠에게 대한 말이었는지 분간하지 못했다. “널 위해서.”라는 엄마의 말을 부정할 만큼 내 주관의 힘이 세지 못한 시절이었다. 이후로 조금씩, 엄마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며 내 어린 시절도 천천히 산산조각 났다. 그렇게 우리는 작별했다.
민수 엄마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1년 뒤였다. 동네와는 상관없는 서울의 한의원이었다. 민수 엄마가 소개해 준 곳이니 언젠가 한 번쯤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해 엄마도 늘 조심스럽게 병원을 둘러보곤 했었다. 진료실에서 나오던 민수 엄마가 우리를 보더니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엄마는 바로 앞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잘 지냈냐 새로운 동네는 어떠냐 같은 일상적인 안부들이 오갔다. 어색하게 밖으로 빠져나와 길 한 복판에 서성거렸다. 민수 엄마는 군침을 다시더니 말했다.
“자기네 위층 살던 남자애, 호수 기억나지? 거기 자기네 이사 가고 난리도 아니었어. 세상에, 남자 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호수를 아파트 단지에서 그냥 사정없이 패는데……”
그렇게 말하고 민수 엄마는 다시 입을 다셨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몰라. 진짜 식겁했다니까.”
“애들 싸움이야 흔한 일이지.”
“아휴, 그게 그냥 치고받고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니까. 호수가 좋아하는 애가 그 반에 있다고 소문이 났나 봐. 애들 사이에서. 짓궂은 애들 몇이 그 집 문에다 페인트로 왜 호모라고 낙서하고 그랬잖아.”
엄마가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아줌마가 말은 계속됐다.
“그 중학교에도 소문이 아주 파다했나 봐. 호수가 공부도 잘하고 주목을 좀 받고 그랬잖아. 아무튼 남자 애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도적떼들처럼 모여 와서는 호수를 발로 주먹으로 때리고 난리도 아니었어. 나중에는 경찰까지 오고 그랬어.”
엄마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요즘 애들 정말 겁도 없네.”
“하여간 그러고 걔가 자퇴를 했어. 그때 선생 몇 명이 말리긴 했는데 그 내용이 내용인지라 차마 붙잡지는 않았나 봐. 그러고 걔는 아마 지 아빠가 있는 미국에 갔다지? 그런데 정말 히트는 뭔지 알아? 걔 엄마는 아직도 우리 아파트에 살아. 혼자서.”
민수 엄마는 더 많은 소식을 말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어디 가서 차라도 한 잔 하겠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약재가 든 봉투를 들어 올려 보이며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나중에 한 번 놀러 와.”
하지만 엄마는 주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서투른 운전 실력 탓에 몸을 바짝 핸들에 기대고 침묵을 유지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거칠게 앞으로 끼어든 차를 보며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돌렸다. “하여간 민수 엄마 그 여자는 남 일에 관심이 너무 많아. 천박하게.” 나는 택시 뒷자리에 앉은 심야의 승객처럼 눈을 감고 오빠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유학을 결정하고 나서 엄마에게 제일 먼저 들은 말은 “거창하게 인사하지 말자. 떠나보내는 것 같으니까.”였다. 엄마의 말은 진심 같았다. 나는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밀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과 나의 행동이 그것을 설명해 줄 테니까. 그즈음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아빠는 부쩍 엄마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가끔 아빠의 식사를 거르거나 약을 하나씩 빠뜨린다거나 허우적거리는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이제 신음과 불안은 아빠의 것이 되었다. 엄마의 자부심도 점점 시들어갔지만, 쇠약해진 아빠를 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럴 때면 고개를 돌렸다. 외면하고 멀어질수록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이제 그 어떤 기도도 꿈꾸지 않는다. 내 죄를 사하는 것은 내가 될 수 없으니까. 누군가의 일상을 무너뜨려도 나의 일상은 변함없이 제대로 굴러갔다. 그 사실만으로도 고통은 충분했다. 사랑과 믿음 없이도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졌어. 나는 가끔 무기력한 몸을 뉘어 허공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깨끗한 우리의 진심만을 골라 기도를 들어준 신을 원망하면서. 하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더 이상 엄마를 미워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호수 오빠를 볼 수 없다는 체념보다 더 깊이 내 가슴을 망가뜨려 놓았다.